3월24일, 금
예수의 목마름
지난 설교 중에 제3독서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짚었다. 이 여자는 목이 말랐다.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러 온다는 것은 사람의 눈을 피한다는 의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사람들은 다 두려워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즐겁게 어울릴 수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오히려 고독한 상황에서야 예수를 만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의 생수를 경험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생수를 주겠다고 약속한 예수는 십자가에 달렸을 때 ‘목마르다.’고 외쳤다. 역설이다. 그의 목마름은 물론 생리적인 현상일 것이다. 종일 심문당하고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질 당하고,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채 몇 시간을 보냈으니 목마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궁극적으로 예수의 목마름은 생리적인 목마름 ‘너머’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을지 모른다는 절망이 바로 목마름의 근원이다. 그런 절망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갈망을 전제한다. 갈망이 없으면 절망도 없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갈망이 아니겠는가. 그런 갈망이 부정당했을 때 사람은 ‘목마르다.’ 그런 절체절명의 목마름에 떨어졌던 예수는 참된 생명인 부활의 첫 열매로 변화되었다. 바로 그를 통해서 우리는 사마리아 여자처럼 영원한 생수를 공급받는다. 구원은 깊이를 잴 수 없을 정도의 저 어두운 목마름을 통과해야만 시작되는 게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