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유골

  • 2017-04-04
  • 조회 수 886

4월4일, 화 유골 지난 설교 본문인 에스겔 37장에는 유골 무더기 환상이 나온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런 광경을 언젠가 직접 봤던지, 아니면 그걸 본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전쟁 중에는 적군 전사자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평시에도 사형당한 중범죄자들 중에 연고가 없거나, 전염병으로 죽은 이들의 사체는 사람들 접근이 힘든 곳에 모아두지 않았겠는가. 에스겔은 그런 무더기 유골을 머리에 그리면서 유대인들의 현재 영적 상태와 실존을 묘사한 것이다. 겉으로 살아 있으나 실제로는 죽은 거나 진배없다는...

주간일지, 4월2일, 대구샘터교회

  • 2017-04-03
  • 조회 수 1039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4월2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1) 새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April come she will’이 생각나는군요. 4월에 그녀가 와서 함께 머물다가 8월에 죽고 9월에는 기억만 남는다는 노래입니다. 가사보다도 멜로디가 괜찮습니다. 노래를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YD-DIggB2k> 금년 교회력으로 4월은 셋째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마침 세월호 참사 3주년과 같은 날입니다. 설교 본문은 골 3:1-4절이고, 제목은 ‘생명의 은폐와 탈은폐’...

생명의 빛

  • 2017-04-01
  • 조회 수 1175

4월1일, 토 생명의 빛 요 9장의 시각장애인 치유에 얽힌 이야기의 주제는 생명의 빛이다. 빛이 없었던 시각장애인은 빛을 얻게 되었고, 스스로 빛을 안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생명의 빛을 모르는 이들로 평가되었다. 당시 초기 기독교가 유대교를 대하는 관점과 부합되는 평가다. 예수를 생명의 빛으로 경험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빛은 요한복음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1장에서 요한복음 기자는 빛이 세상에 왔는데 이 빛을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빛은 물론 예수다. 예수를 빛이라는 메...

예수와 심판

  • 2017-03-31
  • 조회 수 838

3월31일, 금 예수와 심판 지난 설교 본문인 요 9:39절에서 예수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고 말했다. 이게 실제로 예수의 말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워딩은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은 대충 사이비 이단 교주나 전문적인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도 확실한 것처럼 말한다. 심판하러 왔다는 말은 예수가 직접 한 말이라기보다는 제자들의 신앙 고백이 그렇게 표현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세상 심판자로 고백했다는 말은 그들이 예...

율법과 죄

  • 2017-03-30
  • 조회 수 1025

3월30일, 목 율법과 죄 율법은 고대 유대 사회에서 절대적인 규범이었다.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율법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이다. 당시 유대 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다. 소위 정교일치 체제였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는 율법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바울은 원래 율법주의자였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고 가말리엘 문하생이었다. 그는 부활의 예수를 경험한 뒤에 율법주의자들과의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율법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

'본다고 하니...'

  • 2017-03-29
  • 조회 수 1066

3월29일, 수 ‘본다고 하니...’ 시각장애인을 고친 예수를 바리새인들을 불편하게 여겼다. 예수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치료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옳고 그름을 ‘본다’고 하니 오히려 죄가 있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안다는 뜻이고, 죄가 있다는 말은 못 본다는 말이다. 사람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제한적이다.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식하는 것은 주어진 범주 안의 것이다. 일단 시각과 청각을 보라. 너무 먼 것은 못 보고, 너무 작은 것도 못 본다. 코끼리 털 한 자락에 ...

재앙과 죄

  • 2017-03-28
  • 조회 수 1117

3월28일, 화 재앙과 죄 지난 설교 성경 본문인 요 9장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다. 제자들은 ‘누구의 죄냐?’ 하고 물었다. 설교에서 설명했듯이 이건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자네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 말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원인을 죄로 보았다. 그것의 정점은 창세기의 타락 설화에 나온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죽음이다. 성서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재앙과 죽음이 인간 운명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더 깊은 차원...

주간일지, 3월26일, 대구샘터교회 file [2]

  • 2017-03-27
  • 조회 수 1105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3월26일, 사순절 넷째 주일 1) 오늘(3월26일)은 3월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금년의 ‘4분의 1’이 지난 셈입니다. 정말 세월이 빠르게 갑니다. 요즘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이야기입니다. 이름만 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거기에 많이 나옵니다. 로마가 ‘팍스 로마나’의 시대를 열기까지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은 다 늙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서로 죽이는 전쟁을 벌인다는 건 그 상...

종말의 선취

  • 2017-03-25
  • 조회 수 1340

3월25일, 토 종말의 선취 내 설교가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설교자가 뭔가를 명확하게 알고 설교하면 어렵게 들리지 않는다. 내 설교가 어렵다는 말은 내가 뭔가를 명확하게 아는 게 아니라는 증거다. 이런 문제가 죽기 전에 해결될지 모르겠다. 가능한 설교를 쉽게 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게 잘 안 된다. 지난 설교에도 그런 대목이 있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려면 역사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활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이 앞당겨져서 유일회적으로 일어난 생명 사건이다.’ 이런 말...

예수의 목마름

  • 2017-03-24
  • 조회 수 2331

3월24일, 금 예수의 목마름 지난 설교 중에 제3독서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짚었다. 이 여자는 목이 말랐다.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러 온다는 것은 사람의 눈을 피한다는 의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사람들은 다 두려워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즐겁게 어울릴 수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오히려 고독한 상황에서야 예수를 만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의 생수를 경험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생수를 주겠다고 약속한 예수는 십자가에 달렸...

국가주의를 넘어

  • 2017-03-23
  • 조회 수 1062

3월23일, 목 국가주의를 넘어 지난 설교에서 팍스 로마나와 팍스 크리스티를 대립적으로 설명했다. 그것의 구체적인 예로 예수 십자가를 들었다. 팍스 로마나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삼십대 초반의 유대인 한 남자를 반역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처형했다. 이 사건이 기독교의 단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역사에 등장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에게는 반역으로 몰릴만한 일들이 없었다. 로마에 세금을 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내지 말라.’ 하지 않고 ‘...

팍스 로마나

  • 2017-03-22
  • 조회 수 1904

3월22일, 수 팍스 로마나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를 기초 놓은 이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다. 그는 로마를 명실상부하게 제정(帝政)으로 확립한 사람이다. 형식적으로는 공화정(共和政)이었지만 말이다. 제정은 황제가 후계자를 정하는 정치제도이고, 공화정은 선거로 통치자를 뽑는 정치제도다. 아우구스투스는 옥타비아누스가 나중에 받은 칭호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의 충성을 받아낼 정도로 정치력을 탁월하게 발휘했다. 지금의 모든 정치인들의 목표는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사람이 되는 ...

암브로시우스 [2]

  • 2017-03-21
  • 조회 수 1280

3월21일, 화 암브로시우스 지난 설교 앞 대목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잠시 소개했다. ‘팍스 로마나’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내일 보충하기로 하고, 오늘은 14권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새롭게 얻어들은 이야기를 하겠다. 어거스틴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은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340-397)다. 그는 원래 밀라노 집정관이었다. 집정관은 오늘날 시장에 해당된다. 당시 밀라노에서는 예수의 본질이 하나님의 본질과 다르다(이질론-헤테로우시오스)고 주장한 아리우스파와 동일하다(동질론-...

주간일지, 3월19일 file [6]

  • 2017-03-20
  • 조회 수 1340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3월19일, 사순절 셋째 주일 1) 대구샘터교회 예배 순서 중에서 ‘성시교독’은 ‘새로운 예배시편 번역’을 따릅니다. 이 번역은 우리나라 전통 가락에 익숙한 4.4조로 되어 있습니다. 시위할 때 외치는 구호도 4.4조입니다. ‘ㅇㅇㅇ는 물러가라.’는 식입니다. 이번 주일 성시교독은 시 95편이었습니다. 이것도 교회력 성서일과를 따른 것입니다. 두 번역을 비교해볼까요. 앞 구절만 인용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찬송가 뒤편의 성시교독 39번(시 95편)의 앞 구절은 이렇습니다. 사회자- 오라 우리...

영생에 대해 [2]

  • 2017-03-18
  • 조회 수 1164

3월18일, 토 영생에 대해 요 3:15,16절에는 ‘영생’이라는 단어가 연달아 나온다. 여기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는 곳곳에 영생이나 생명이라는 단어가 다른 공관복음에 비해서 많이 나온다. 요 6:51절에 예수라는 떡을 먹으면 영생할 것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11:26절에도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도대체 영생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생각해서,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상상해보자. 견디기 힘들 것이다. 삶이 무한정 연장된다면 살아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은 죽음을 전제할 ...

예수 사랑

  • 2017-03-17
  • 조회 수 999

3월17일, 금 예수 사랑 어제 묵상의 마지막 질문은 ‘예수와의 일치가 실제로 가능한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그 답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십자가의 예수는 모든 버림받은 사람을 대표한다. 거기서부터 부활 생명이 시작되었다. 판넨베르크의 표현처럼 예수 십자가 이후 십자가와 같은 운명에 떨어진 어느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게 되었다. 이걸 실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구...

구원 지향적 삶 [4]

  • 2017-03-16
  • 조회 수 1124

3월16일, 목 구원 지향적 삶 지난 설교 제목은 ‘심판과 구원’이었다. 이에 해당되는 핵심 구절은 요 3:17절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심판과 구원을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대하게 할 염려가 있다. 어떤 이는 심판받고 어떤 이는 구원받는다고 말이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니다. 이런 표현이 애매하게 들리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 누구도 심판과 구원을 결정할 수 ...

거듭남 [6]

  • 2017-03-15
  • 조회 수 1839

3월15일, 수 거듭남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했다. 거듭난다는 게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으니 이해하기도 어렵고 오해의 소지도 많다. 기독교의 신흥 종파들이 ‘죄 사람과 거듭남의 비밀’을 핵심적으로 주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통 기독교인들도 이것을 막연하게만 생각할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 구절은 가능한 그것 자체에 머물지 말고 전체 기독교 교리와 연관해서 생각해야 한다. 거듭난다는 말과 가장 가까운 기독교 교리는 회심이다. ...

니고데모 [2]

  • 2017-03-14
  • 조회 수 1967

3월14일, 화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설교에서도 짚었지만 이와 비슷한 배경의 인물이 공관복음에는 재물이 많은 어떤 사람(막 10장), 부자 청년(마 19:22), 또는 부자 관리(눅 18:18)로 나온다.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들이 부자로서 예수에게 와서 구원과 영생에 관해 질문했다가 결국은 재물이 문제가 되어서 실망하고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의 니고데모는 부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으니 사회 지도층 인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공관복음에 등장...

주간일지, 3월12일, 대구샘터교회 file [4]

  • 2017-03-13
  • 조회 수 1148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3월12일, 사순절 둘째 주일 1) 주보 표지에 저의 집 마당에 있는 항아리가 나왔습니다. 제목은 ‘봄 햇살, 대나무, 흙, 항아리’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해줍니다. 그림을 한번 보십시오. 봄 햇살- 사진을 봄 햇살이 꽉 채우고 있습니다. 허리가 불뚝한 항아리를 햇살이 애무하듯이 감싸고 있네요. 차가웠던 겨울 햇살과 달리 봄 햇살은 우리 영혼을 들뜨게 합니다. 가끔은 들뜨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대나무- 대나무로 인해서 탁했던 겨울 풍경을 그나마 생기 있게 느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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