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문제의 책임

조회 수 3985 추천 수 0 2013.08.06 23:47:25
일전에 어떤 분과 이야기 하는 중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롭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목회자인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그분이 아주 사실적으로 말했다고 보면 된다.  
내가 물었다.
생각도 깊도 신앙도 진지한 분들이
왜 수준 이하의 교회에 붙어 있는 거죠?
본인들도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그런 방식의 신앙생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이 훼손되는 게 분명한데 말입니다.
내가 일반 신자였다고 한다면
벌써 다른 교회로 옮겼을 겁니다.
그분의 대답은 이렇다.
신자들이 그런 교회에 남아 있는 것은
아주 단순한데 있다.
주일을 지켰다는 안도감이 그것이다.
마음이 불편하지만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해 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교회를 지키는 것이고,
목사에게 반하는 행동은 불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보면 순수한 신앙이고
정확하게 보면 맹신에 불과하다. 

지금 나는 신자들이 기회주의자들처럼 
쉽게 교회를 옮기는 것이 좋다거나
좋은 교회와 나쁜 교회가
선을 귿듯이 확실하게 구분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어떤 교회고 문제 없는 교회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수준은 있어야 한다.
그것마저 없는 교회가 수두룩하다. 
신자들은 거기서 자학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런데도 붙어 있다는 것은 
심신이 주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거나 
그런 교회구조에서 얻는 것이,
즉 일종의 떡고물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문제는 목회자와 평신도 양자에게
똑같은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
목회자로서 책임 회피일까?

[레벨:11]허재훈

2013.08.07 10:33:27

목사님 평신도가 교회를 옮기는 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 보면  주일학교 어린 제자도 생기고 자신이 전도하여 데리고 온 사람도 있으며 그들과 가족처럼 지내게 됩니다. 설교말씀을 들으며 이게 아닌데 하며 무거운 마음이 들어도 교회를 바꾸는 것이 그들을 버리고 나만 좋은 말씀 찾아 떠나는 듯한 죄책감이 들게 됩니다. 멀리 이사하게 되면 그나마 남아있는 자들의 마음이 덜 아프겠지만 좁은 지역안에서 교회를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렵지요. 저도 이사하지 않았다면 슬퍼하며 무거운 마음 가지고 인터넷으로 샘터교회 말씀 읽으며 교회제자들과 성경공부하면서 쭉 같은 교회 다녔을것 같습니다. 많은 한국 교회 평신도의 딜레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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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24:30

ㅎㅎ 지호아빠 님은 핑계 낌에 이사를 온 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자-알 했습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개교회적으로 독립성이 강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많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없다는 게 아이러니처럼 보이는군요.
지호아빠는 이제 이런 고민에서 해방되었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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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1]유목민

2013.08.07 12:26:57

몇 년 전에 제 친구 집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제 친구의 대답은 "뿌린게 얼만데."
상고 졸업하고 군대 다녀와 인천에 첫발을 내 디딜 때부터 애경사 다 찾아 다녔는데
이제  자녀들 혼인 시킬 때인데, 지금 이 나이에 어디가서 다시 사람이 사귀고 적응하냐?
임 목사 네가 우리 옆집에 교회 세운다고 해서 못간다.
제 대답은 "그것 때문에 진리를 외면한다면 넌 가여운 영혼이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올 가을이면 장로가 된다는군요.
아도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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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27:54

"뿌린 게 얼만데...."
촌철살인이군요.
그리고 장로가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거구요.
다는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가 상당히 강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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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여름비

2013.08.07 14:16:41

얼마전 어떤 친구가  구조주의란 말을 쓰길래 구조주의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잘 이해가 되질 않는 거에요. 친구 말의 결론은 구조주의를 말하는 자들에 의하면 인간에겐 주체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말인지 대충은 알아듣겠는데 왜 하필 구조주의란 용어를 쓰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용어를 쓰는데는 이유가 있지 않느냐,, 결국 저는 궁금증만 일어 구조주의를 쉽게 설명해놓았다는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아주 조금 더 이해했을 뿐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는 기분이었는데 오늘 아침 목사님의 이 글을 읽고 이것저것 생각하는던 중, 바로 그 '구조주의'를 이해한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구조망 안에 놓인 현대인은 주체가 사라져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구조로 비롯된 자신의 고착된 행동안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호아빠 님, 유목민 님의 댓글에 공감하며 일부러라도 애써 둔감하게 행동해야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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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29:24

앗, 구조주의를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하시다니
여름비 님은 개념에 대한 이해와 해명에 뛰어나십니다.
오늘 좋은 거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레벨:8]하늘소망

2013.08.07 15:15:08

저는오랫동안 다니던 교회를 지금은 다니지않고 있어요 인간적인 유대감 의리 정.. 이런것들을 쉽게 끊는게 어렵고 배신하는것 같은 느낌 때문에요.. 지금은 가까이에 마땅한 교회가 없어서 다니지않고 있어요 가끔 교회사람들이 보고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교회갔다오면 답답한 마음과 다시 집에오면 공허감.. 죄송스럽지만 내 영혼이 먼저 살아야겠다 싶어서 지금은 나가지 않습니다.. 소속의욕구 때문인지 뭔지 그래놓고도 끊임없이 갈등하는 저를 보게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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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31:36

로마가톨릭 교회는 아무리 오래 다닌 성당이라고 해도
이사를 가면 성당을 옮겨야 합니다.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런 건 가톨릭의 좋은 점 같네요.
살고 계신 부근에도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있을 테니,
천천히 찾아보세요.
교회를 쉴 수 있지만 
그 기간은 가능한 짧은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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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13.08.07 16:25:45

7월에 근무하고 있는 지역방송사에서 음성 꽃동네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2주연속 방송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곳은 아무런 동요도 없습니다.
그곳의 있는 계신 분들은 덮어 두려고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체 교단안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쪽도 만만치 않네요.

방송 나간후, 충주검찰청에서 조사가 들어가고, 음성군민들이 항의 서명을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한때의 스치는 바람에 불과하네요

교회의 자정능력.
아니 모든 종교의 자정능력이 항상 현실과 괴리가 있을까요?
그것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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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36:59

음성꽃동네 오 신부님이 얼마전 교황을 알현하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고발 프로그램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그분들이 목적을 위해서 수단의 정당성을 무시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인데요.
가톨릭은 웬만하면 자체 정화가 되는데,
꽃동네만은 치외법권인지도 모르겠네요.

[레벨:18]天命

2013.08.07 17:30:19

 
+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이광웅·시인, 1940-1992)
 

(중략)

수백만 년 인류의 역사도 새발의 피
수유(須臾)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의 생애를 1년― 365일로 친다면
이 지상에 군림하기 시작한 인류의 역사는
섣달그믐 밤 23시 59분 59초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질학자들은 말한다

 
(임보·시인,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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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39:11

가슴을 뜨겁게 하는 시,
잘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원초적 영성에 더 가까이 가시는
천명님의 그 구도적 열정이 보기에 좋습니다.

[레벨:14]Lucia

2013.08.07 23:10:05

 수준이하의 교회들이 수두룩이다 하셨는데 이민자들은
더 불쌍합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상황인데 어딜 가야 하냐구요...
이렇게들 말합니다. '가긴 어딜 가  교회는 다 똑같은데..."
목사에게 반하는 행동은 불신앙이다.. 그래서 못 옮기는 무지한백성들 많을겁니다.
이민자들은 교회덕을 보는 경우가 많아서 자리를 지켜야만 미안하지 않겠지요^^
수평이동이 눈에 보이구요. 몰려 다니는거지요
목사님들에게 더 문제가 있는거 아닐까요?
성토하는 자리가 아닌데 죄송합니다.
저는 다비아를 통해서 채웁니다.

[레벨:2]주님선교

2013.08.08 14:39:51

저는 선교사라서 미주 교회들을 방문할 기회가 많아서.... 정말 안 스럽습니다.  대책도 없구요.
다만, 인터넷을 떠 돌면서 설교말씀을 따로 듣는 분들만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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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53:30

미주 한인교회의 상황도 말이 아닌가 보군요.
인테넷을 떠도는 신자들이라고 하면
현대판 노마드(유목민)이군요.

[레벨:14]Lucia

2013.08.09 03:30:20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혹시 브라질에 다녀 가셨어요?
오시면 연락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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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42:38

'가긴 어딜가 교회는 다 똑같은데..."
정곡을 팍 찌르는 멘트군요.
똑같지 않은 교회는
찾아보면 또 많습니다.
그런 교회를 실제로는 원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다비아가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profile

[레벨:15]국민이

2013.08.08 07:48:40

교회를 떠나는 것이 능사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문제가 있으면 작은실천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작은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늘 성경에 비추어 보고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생기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질문도 하고 문제제기를 합니다.
그런 세월이 벌써6년째입니다. 작은 실천이 큰변화를 불러오더군요.물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대구성서아카데미가 저에게는 큰힘이 되었습니다. 정목사님의 설교비평과 설교를 우리교회게시판에 퍼나르기도 하고 정목사님이 설교비평하며 추천해 주신분들의 설교도 퍼나르기도 하며 지속적으로 해오다 보니 지금은 많은 분들이 동참도 하시고 교회의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도 갖더군요.(교회게시판이 없어져서 따로 카페를 만들어서 운영중입니다.)

이런 작은 실천을 통하여 수준이하의 교회를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교회로 기도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길이긴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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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6:50:28

내부에서의 변화 모색도 필요합니다.
근데 그게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고,
또 큰 효과가 없기도 하고,
또 생각하지 못한 상처들을 남길 염려가 많다는 거지요.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투쟁 과정에서
본인의 영성이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저 목사가 뭔가 설교를 잘못한 게 있나 없나 하고 살피면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는 어려운 거지요.
그 모든 불이익을 감당하면서까지
교회 내부에서 싸우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고, 아까운 거지요.
힘 내세요.

[레벨:8]流水不爭先

2013.08.08 11: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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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의 변(辯)

목사님께서는 목사님의 글 「한국교회 문제의 책임」중 "생각도 깊도(고) 신앙도 진지한 분들이 왜 수준 이하의 교회에 붙어 있는가" 라는 내용에 대하여 평소 아시는 분으로부터 몇몇 대답을 들으시고 한국교회의 문제가 평신도들의 맹신, 심신이 주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함, 교회구조에서 얻어지는 떡고물과 같은 이유 때문에 교회를 안 떠남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하여 문제의 책임을 평신도와 양분하시려는 바. 이의를 제기합니다.

목사님 맹신, 심신이 주체적으로 건강치 못함, 떡고물 생각 등 목사님 보시기에 한국교회의 문제가 되는 이런 요소들이 평신도에게 나타나는 것이 교회 내부의 문제일까요? 외부의 문제일까요? 도대체 평신도들은 어떻게 맹신자가 되고 심신이 주체적으로 건강치 못한 신자가 되었을까요? 더 나아가 떡고물까지 기웃거리게 되었을까요? 이런것들이 평신도의 개인 문제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과연 평신도들의 이런 현상과 목회자의 가르침은 무관할까요? 교회의 가르침이 정상적이었는데 받아들이는 평신도가 잘못 받아들인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오늘날 평신도들의 모든 문제는 개교회 목사님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목회자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평신도들이 생각도 얕아지고 신앙도 진지하지 않음으로서 본인들 교회가 수준이상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안 떠났고 그 결과로 수준이하의 교회도 수준이상의 교회로 비쳐지는 현실에 이른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왜 수준이하의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본인들 교회를 수준 이하라 이야기하는데 본인들은 못 느끼는 걸까요?

목사님, 요즈음이나 되니까 인터넷의 발달로 이곳 다비아처럼 신기한(?) 곳이 있는 줄 알았지 우리나라 교회 현실에 평신도들이 다른 교회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매스미디어를 제외하고 현장에서 다른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 것은 부흥회 뿐입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하신 분들은 일년삼백육십오일 애오라지 본인들 담임목사님의 설교만 듣습니다. 심지어 목회현장에서 많은 목사님들은 다른 교회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 것 조차 금기시 합니다.(아마 제 생각에는 비교당할까 염려되셔서 그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교회 목사님 설교가 어떻다라는 말은 입밖에도 내면 안됩니다. 기독교관련 서적도 담임목사님의 추천에 의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개교회의 신자들은 개교회 목사님 말씀만 듣도록 교육 ․ 학습되어지고 제자훈련되어지고, 세뇌(?)당합니다. 때로는 겁도 나고(겁을 주니까) 목사님의 요즈음 표현을 빌리자면 “길들여집니다”

냄비안의 개구리를 찬물부터 시작해서 가열하면 결국에는 냄비안에서 삶아져서 사망하는데 밖으로 뛰어나오지 못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오로지 맹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교회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모든 것은 담임목사님의 권위와 연관됩니다. 주님의 종이라는 단어에 의해서 한국교회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앙공동체안에서 신앙전문가인 목사님의 의견은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목사님의 의견이 언제나 옳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개교회 목사님들에 의거 평신도들은 개교회목사님의 복제품이 되어 갑니다. 전하는 자의 신앙수준을 듣는자가 넘지못한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닙니다. 목사님이 무지하면 듣는 자도 무지하게 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처럼 결국은 둘 다 웅덩이로 빠지겠지요
이 경우 인도하는 소경과 끌려가는 소경 중 누가 더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평신도는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예, 없습니다. 평신도들은 설교한 적도 없고, 가르친적도 없고, 주장한적도 없고 양들이 목자만 쫓아가듯이 담임목사님의 말씀에 순종 및 복종만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교회라면 그 책임은 목사님들에게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저희교회에 너무 너무 가난하여서 온전한십일조(?)를 못드리는 집사님이 계십니다. 하루는 교회 사모님이 찾아오셔서 가난을 벗어나려면 십일조를 드려야 된다고 하시면서 본인이 새벽기도를 드리면 이상하게 집사님 가정이 생각나며 이어서 십일조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심방하였노라 하셨답니다.
재물 관련하여 목사님들이 흔히 외치시는 말씀이 십일조입니다. 가난할수록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라는 것입니다. 말라기서에 의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고, 드리면 드릴수록 부자가 된다고 불을 토하듯이 전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면서....
가난한자에게 떡을 주지는 못할망정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행사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못 드리는 자는 도둑놈으로 전락하여 괴롭고 전하시는 목사님은 부자되는 길이 있는데 평신도가 순종을 안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안타까워서 괴롭고...참으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주일예배도 모자라 심방까지 하면서 외칩니다. 부~자되세요 십일조 드리고...
예배의 기쁨과 평강은 온데간데 없고 죄의식과 호령만 난무하는 예배입니다.

정용섭목사님
목사님과 어느분과의 대화 중에 나오는 몇몇 이유처럼 맹신, 심신이 주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평신도가 교회를 안 떠나는 것, 맞습니다. 당연히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심신이 주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후천적 이유 즉. 한국교회의 가르침으로 심신이 주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건강치 못한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한국교단내에서 목사님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평신도 중간에 위치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평신도는 학습되어져 갈 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한국교회 문제의 책임은 99% 목회자와 1% 평신도에게 있습니다. 각각 절반씩 보시는 것은 목회자의 책임회피, 맞습니다. 책임회피입니다. 평신도에게 전가하지 마십시요
목사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멘트조로 말씀드리자면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글쓰기를 마치면서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어쩌다 주님의 교회가 수준 운운하는 상태가 되었는가? 제가 아는 네덜란드 젊은 청년이 저희집 서울에 머물면서 서울에 교회가 많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교회가 어디 있냐는 질문에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유럽의 교회는 한눈에 봐도 교회잖아요. 동일한 상가 1층, 2층에 교회가 있고, 6m 소방도로 건너편에 교회가 있고... 판넨베르크목사님 말씀처럼 예수님 이땅에 오시고 기독교가 가장 잘못한 것이 “분열이었다”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제가 다비아를 들락거린 것이 5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의 낮설음이 점차로 옅어지는 것을 보면 저도 이곳에 길들여지는가 봅니다. 출근하면 나도 모르게 이곳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목사님 특강도 열심히 참석하여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곳 사이트를 많이 전파했지만 메아리가 없는 것을 보면 다비아는 확실히 이 시대의 영적 노숙자집단인가 봅니다. 그러나 목사님 말씀처럼 이천년전 당시 비주류였던 바울의 외침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듯이 다비아의 생명력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목사님의 열정이, 목사님의 바램이, 목사님의 말씀이 이 땅에 남겨짐으로 인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자 칠천이 이땅에 영원토록 존재하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지키실 것입니다. 늘상 감사드립니다. 강건하십시요. 
  

2013.08.08. 가을의 문턱에서 김유동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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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8 17:03:49

"부~자 되세요. 십일조 드리고..."
오늘의 요절입니다.
저 정도로 노골적으로 말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면
아무리 정통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 걸었어도
내용적으로는 사이비 이단입니다.
김유동 님 같은 분도
다비아가 처음에 낯설었습니까?
예상 외군요.
처음부터 확 땅기는 사이트로 느꼈을 것 같은데요. ㅎㅎ
지금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밑바닥을 친 건지 모릅니다.
막장까지 내려온 거지요.
이제 천천히 올라갈 일만 남아 있습니다.
그 순간(카이로스)이 가까이 오고 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폭염에서도 가을 내다보며 살아야겠지요.
추신: 교회 책임은 목사에게 99% 있는 거 맞습니다.
profile

[레벨:23]모래알

2013.08.09 00:30:03

정 목사님~~~
그냥 한 번 불러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3.08.09 09:52:20

예~~~
저도 그냥 대답 한번 하고
물러갑니다.
사진찍기의 경지가 날로 높아지시더군요.

[레벨:4]벅수

2013.08.09 01:19:58

저의 경험에서 나온 저의 의견은 50:50 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고 비슷한 문제라 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의 정치 현상과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민주화의 열망등으로 인하여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고나자, 사람들이 그를 욕을 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당시를 유추하여 보면 각자의 욕심에 부응하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윤택하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른 면으로 불편하기 시작하였읍니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불편함이란 위에서 누가 말한대로 구조에서 왔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의 의견으로는 상당수의 한국사람들의 모델은 이명박이지 않을까? 합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법망을 피하여) 부자가 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이들에게 나눔, 평등 그리고 정의를 가끔 생각은 하지만 불편하기 그지 없읍니다.
위에서 어떤 분이 말씀하신 대로 지금까는 내가 한것이 얼만데? 내 것을 내놔야 해!  
그래서 그들에게 전혀 불편함을 주지 않는 이명박씨이나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뽑았읍니다.

교회도 똑같다고 봅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사랑이나 공의를 생각은 하지만 
교회에서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위로, 평안함 그리고 축복입니다.(다비아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목사님이 와도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조한다면 한계에 부딪칠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빨리 망해야 된다고 봅니다.
망하면 사람들이 교회에서 지금 추구하는 세상의 위로, 평안함 그리고 축복을 추구할 수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그로 인해 그런 분들의 대부분이 교회를 떠나고 
성경에서 말하는 위로, 평안함 그리고 축복을 추구하는 분들이 교인들의 다수가 되지 않을까 봅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다시 살 수있다고 봅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3.08.09 09:58:55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이면에 불과합니다.
일등을 향한 전력 질주,
목표지상주의, 압축성장, 거품경제, 
과소비, 피로사회, 낮은 행복지수...
지금은 개량으로는 고쳐지기 힘들 거 같구요.
벅수님이 말한 대로 망하는 게 최선의 길인 것 같군요.
한국교회가 망해도 하나님은 망하지 않으니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지요.
기다려봅시다.

[레벨:7]물가의나무

2013.09.01 13:26:34

김유동님의 글 전적으로 공감하는 99%중 하나입니다.ㅜㅜ
주님의 은총이~~~

[레벨:12]삶의 과제

2013.08.09 08:35:35

'세뇌당한다', '길들여진다'는 것을 알면 벗어나려는 의식 혹은 무의식적이 발동하지만(?) 
'익숙해진다' 라고 하면 그 편안함에(?)  더욱 전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낯섬에 대한 두려움......
이걸 해결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궁극의 낯선 세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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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09 10:01:10

그렇네요.
사람들은 길들여진다는 말보다는
익숙해진다는 표현에 안주하는가 봅니다.
그게 바로 죽음은 아닐는지요.
늘 새롭게 자기를 드러내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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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매실주 file [3]

  • 2013-06-19
  • 조회 수 4035

며칠 전 매실주를 담갔다. 진작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 뭐 하는 일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더 늦으면 곤란할 거 같아서 마트에 들린 김에 한보따리 매실을 샀다. 보통은 청매실로 담군다고 하지만 약간 익은 걸로 하는 게 향이 더 난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익은 매실로 담갔다. 익은 매실이 더 싸다는 것도 이런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매실 담구기는 워낙 간단했다. 물로 씻어 말리는 게 다였다. 다음에는 매실 1킬로에 소주1리터 비율로 병에 넣으면 끝이다. 보통은 30도 짜리 소주를 사용하는데, 이번에 들린 마트에는 과일주 용으로...

하나님 나라(37) - 종말론적 윤리-

  • 2010-06-19
  • 조회 수 4034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근거한 예수의 교훈이 오늘 우리의 윤리적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이 대답은 윤리의 근거라는 철학적 문제가 비록 암묵적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종말론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정확히 논증해야만 한다. 이 논증이 가능하다면 그리스도인이 그 당시에 만인 구원을 대망하다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불행한 일은 아닐 것이다. 시간표는 정정되겠지만 그 관점은 거부될 수 없다. 물론 예수의 윤리적 교훈을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세대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교...

5월9일 하나님의 나라 (6) [1]

  • 2006-05-09
  • 조회 수 4023

2006년 5월9일 하나님의 나라 (6)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존재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비극이며 불행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간혹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를 언급하지만 실제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되돌아보고 해석하고 선포하는 설교자들이 있나요? 하...

앵글 작업, 4월11일(목) file [5]

  • 2013-04-11
  • 조회 수 4022

아파트에 살다가 일반 주택으로 이사를 오니 물건들을 정리하는 게 만만치 않다. 베란다가 없어서 물건을 둘 데가 크게 부족하다. 다용도실과 세탁실에 약간의 공간이 남아 있어서 거기에 선반을 만들어 세우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알아보니 앵글 선반으로 하는 게 가격 면에서 적당했다. 앵글 선반 회사도 많았다. 대개는 규격 제품을 파는데, 에이스 앵글만은 고객의 주문대로 앵글과 선반을 절단해서 보내주었다. 가로, 세로, 높이, 앵글 색상, 나무 선판 종류를 견적 포맷에 써 넣으면 정확한 단가가 나온다. 놀랍다. 내...

생명(요 1:4), 요한복음 묵상(6) [4]

  • 2013-04-25
  • 조회 수 4019

요한복음에는 ‘생명’(조에)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그 단어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익숙하다. 익숙하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모를 수 있다. 현대인들이 생명에 대해서 생각이나 하는가? 뻐한 거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로고스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말한다. 로고스와 생명의 관계를 아는 게 요한복음의 핵심이다. 이걸 아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목사들도 대개는 모를 것이다. 모르면서도 설교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신자들이...

6월30일- 예수가 오신 이유? (4)

  • 2006-06-30
  • 조회 수 4014

2006년 6월30일 예수가 오신 이유? (4)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1:38) “예수가 오신 이유?”라는 제목의 묵상은 오늘이 끝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나눌 수 있는 생각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접으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이와 관련해서 생각할 거리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디서’ 오셨는가에 관해서 생각해봐야겠지요. 그리고 그는 도대체 어디로 다시 돌아가신 걸까요? 예수님이 오심으로 율법이 새롭게 해석되었다는 사...

6월16일- 해 질 때 [3]

  • 2006-06-16
  • 조회 수 4014

2006년 6월16일 해 질 때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막 1:32) 시몬의 장모는 이제 온전한 정신을 차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는지는 볼을 보듯 분명합니다. 이 동네 저 동네 이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겠지요. 사람들은 병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가 “저물어 해 질 때”라고 합니다. 야간 조명이 거의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해가 진다는 건 낮에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접어야 할 때입니다. 낮과 밤의 경계인 바로 그 ...

하나님 나라(28)- 교회비판자들 [3]

  • 2010-06-05
  • 조회 수 4013

계몽주의에 의해서 시작된 기독교의 권위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와 대결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비판자들이나 옹호자들은 종종 교회의 권위주의 형태를 교회의 실체로 오해한다.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이외의 모든 권위로부터 해방된다. 인간은 모든 것을 판단할 자유가 있다. 이것은 삶의 정치적 형태만이 아니라 교회 조직과 교리들에도 허용된다. 자유라는 은사와 특권은 교회의 선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교리적 결정들, 그리고 성서 문서들, 더 나가서 예수 자신의 ...

6월14일- 예수의 손

  • 2006-06-14
  • 조회 수 4005

2006년 6월14일 예수의 손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막 1:31) 복음서의 정보에 따른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장가 든 이는 시몬 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편지에는 이와 약간 다른 정보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 9:5) 이 구절에 의하면 아내가 있는 사도들이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결혼한 상태였는지 아니면 훗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꾸리면서 결혼한 ...

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1]

  • 2006-06-11
  • 조회 수 4005

2006년 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막 1:29)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야고보 형제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앞서 17,18절에서 시몬 형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나섰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위해서 세속적인 세계를 버리는 일종의 출가(出家)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인 진리를 선택한 사람들은 출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구도는 자신의 온 영혼을 투자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

일상에 대해(8) -손톱 깎기- [11]

  • 2011-01-12
  • 조회 수 4002

늦둥이 막내딸은 지금 대학교 1학년이오. 한창 세상 물정을 배울 나이요. 가능한대로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도록 맡겨두고 있소. 학기 중에는 격주로, 방학 중에는 매주 금요일에 집에 왔다가 주일 오후에 다시 학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오. 언제부터인가 그 아이가 손톱을 기르고 있소. 손톱에 여러 가지 색깔을 칠하오. 매니큐어를 바르는가 보오. 학생이 손톱 치장을 뭐하러 하니, 하고 물으면 멋있잖아요, 하고 대답하오. 그게 멋있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냥 내버려 두고 있소. 큰 딸은 그런 일이 없...

한국교회 문제의 책임 [28]

  • 2013-08-06
  • 조회 수 3985

일전에 어떤 분과 이야기 하는 중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롭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목회자인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그분이 아주 사실적으로 말했다고 보면 된다. 내가 물었다. 생각도 깊도 신앙도 진지한 분들이 왜 수준 이하의 교회에 붙어 있는 거죠? 본인들도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그런 방식의 신앙생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이 훼손되는 게 분명한데 말입니다. 내가 일반 신자였다고 한다면 벌써 다른 교회로 옮겼을 겁니다. 그분의 대답은 이렇다. 신자들...

가랑이 찢기

  • 2014-01-11
  • 조회 수 3983

1월11일(토) 가랑이 찢기 오늘은 이른 아침 6시40분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 9시20분 쯤 돌아왔다. 차를 오래 타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함께 먹고 말씀을 전하면서 지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웬일인지 피곤하지도 않다. 다만 내일 설교가 좀 걱정이다. 오늘 일정이 오래 전에 예정되었기에 설교 준비를 미리 해놓기는 했지만 그게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다. 특히 이번 주일의 설교 본문이 좀 까다롭다. 까다롭다기보다는 너무 단순해서 설교하기가 어렵다. 예수님...

죄의식과 죄론, 4월5일(금) [13] [1]

  • 2013-04-05
  • 조회 수 3982

판넨베르크의 <인간학>(박일영 역, 분도출판사)은 일단 책두께에 겁이 난다. 깨알처럼 인쇄된 독일어 원서로는 540쪽, 번역서로는 715쪽이다. 원제는 Anthropologie이고 부제는 Anthropologie in theologischer Perspektive이다. 영신 대학원 학생들과 번역서로 읽고 있다. 오래 전에 한번 읽은 책인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많을 걸 배운다. 아마 이런 배움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3장의 마지막 패러그래프는 아래와 같다. 기독교 역사에서 마저 죄의식과 죄론이 양립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게 중요하다. 특히 설교자...

어지러움에 대해서 [5]

  • 2010-03-13
  • 조회 수 3982

그대는 간혹 어지럽다고 느끼는 적이 없으시오? 빈혈이 있는 사람이나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은 당연히 어지럼증을 느낄 거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심한 운동을 하고 난 후라든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몇 끼니를 굶었을 경우에 순간적으로라도 어지러움을 느낄 거요. 롤러코스터(궤도열차)를 타보셨소? 나는 그럴 기회가 없었소. 화면으로만 봐도 어지러울 것 같소. 그런데 말이오. 지금 우리가 얹혀살고 있는 지구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를 생각하면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소이다. 지구는 하루에 한번 ...

비오는 날 [6]

  • 2010-02-10
  • 조회 수 3979

비오는 날 그대, 무엇 하오? 요즘 며칠 동안 비가 오오. 늦은 겨울비요. 이제 추위가 끝났나보오. 비오는 날은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만드오.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은 대개 비오는 날과 연관해서 사연이 많소. 각자 따로 우산을 갖고 나왔지만 함께 붙어서 걸을 때는 한 개로 충분하니,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애틋하겠소. 초등학교 시절도 비오는 날은 낭만적이오. 가사가 정확한지 모르겠구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우산, 파란우산, 찢어진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오가던 시절이 그립고 그리...

교회에 나가는 이유(1) [1]

  • 2010-06-24
  • 조회 수 3959

그대는 왜 교회에 나가시오? 다짜고짜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좀 언짢으실지 모르겠소만 우리는 우리의 행위 전반에 대해서 늘 질문해야 한다오. 그런 질문이 어디 한두 가지겠소. 예컨대 이렇소. 그대는 왜 결혼했소? 그대는 왜 돈을 버는 거요? 그대는 왜 사는 거요? 왜 화를 내는 거요? 왜 기뻐하는 거요? 모든 것이 질문의 대상이오. 일단 우리의 관심은 교회와 신앙생활이니 여기에 한정해서 질문해 봅시다. 그대는 왜 교회에 나가시오?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오. 맞소. 우리는 예배를 드리려고 ...

하늘과 땅의 권세

  • 2017-06-16
  • 조회 수 3957

6월16일, 금 하늘과 땅의 권세 마태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미팅에서 몇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 첫 말씀은 아래와 같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런 표현이 오늘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당시에는 크게 오해살만하다. 사이비 교주들이나 이런 말을 떠벌인다. ‘하늘과 땅의 권세’는 창조주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사람에게 붙일 수 없다. 장군에게도 안 되고 왕에게도 안 된다. 제사장에게도 안 되고, 율법학자에게도 안 된다. 당시 사...

행복한 신앙생활 [4]

  • 2014-01-19
  • 조회 수 3957

1월19일(주일) 행복한 신앙생활 적지 않는 수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일단 부담이 크다. 성수주일과 헌금에 대한 부담은 일상적이다. 교회 안에서 모임도 너무 많다. 자기가 알아서 적당하게 하면 된다고 할지 모르나 전체 분위기가 그걸 용납하지 않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가야만 한다. 신자들끼리 불편하게 여기거나 심지어는 원수처럼 싸우기도 한다. 제자교육으로 이름을 떨친 ‘사랑의 교회’마저 담임 목사 파와 반대 파가 볼썽사납게 싸우는 ...

계단 오르 내리기 file [9]

  • 2013-06-20
  • 조회 수 3946

원당리에 새로 진 집은 이층이다. 이층은 내 서재다. 거기서 책 읽고, 다비아 글 쓰고, 강의 준비도 하고, 기독교 잡지에 연재할 원고도 쓰고, 주보 초안 짜고, 설교 준비하고, 유튜브 음악도 듣는다. 내 모든 삶의 공간이다. 그리고 잠도 잔다. 하루에도 아래층으로 난 계단을 수없이 오르 내린다. 몇 번인지 카운트 해보지 않았지만 대략 스무번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래 사진은 오르는 계단이다. 전체가 열여덟 계단이다. 아직 서재가 다 정리되지 않아서 책들이 계단에 쌓여 있다. 언제 다 정리될는지... 올라갈 때는 편하지만 내려...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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