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6일
몸의 속량
지난주일 설교 본문은 롬 8:22-27절이었다. 23절에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의 몸은 단순히 육체로서의 몸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인간의 총체성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이런 표현들이 신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총체성이 있다면 부분도 있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부분과 총체의 관계에 대한 질문도 필요하다. 어려운 문제다. 말은 총체성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건지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그 총체성은 종말에 드러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잠정적인 것만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우리가 완전히 속량 받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삶의 조건을 향유해도 어딘가는 늘 비어있다. 이 세상에서는 결국 우리의 총체성이 충족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몸의 속량은 몸의 부활과 비슷한 말이다. 우리가 부활체가 된다는 것은 온전한 자기가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나의 총체성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총체성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인가? 물론이다. 지금의 나는 아직 ‘나’가 아니다. 앞의 나는 지금의 나이고, 뒤의 ‘나’는 종말에 입게 될 속량 받은 나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바꾸면 하나님과의 일치가 된 나이다. 그런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가 된다는 말인가? 씨앗에서 꽃을 상상할 수 없듯이 지금의 나는 속량 받은 나를 상상할 수 없다. 씨앗이 없으면 꽃이 있을 수 없듯이 지금의 나가 없으면 속량 받은 나도 없다. 우리는 몸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묵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모래언덕처럼 바람에 날려 사라져가고
나도 세상 가운데서 곧 사라져갈 것인데...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어릴 때는 고사하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이렇게 다른데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종말에 드러나게 될 총체성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정말 암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곳에 가도 그 공허함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구원의 날에 정말 전 어떤 존재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