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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일
주님의 옷자락
이사야는 주님(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다고 말한다(사 6:1). 당연히 하나님께는 옷을 입을 몸도 없고, 옷자락도 없다. 옷자락이라는 표현은 이 세상의 어떤 사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나마 설명해보려는 문학적 수사다.
고대사회에서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하층민들은 몸을 가리려는 목적으로 옷을 입었지만 고위층은 신분을 드러내려고 옷을 입었다. 왕과 왕비들은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치렁대는 옷을 입었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다는 말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신분이 높다는 뜻이다. 그는 존엄한 분이라고 말이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무엇을 보고 하나님의 옷자락을 연상할 것일까? 특별히 무엇을 보았다기보다는 평소에 왕의 옷차림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런 표현은 당시의 일반적인 글쓰기인가? 이사야도 글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 나온 책은 물론이고 근동의 여러 나라에서 나온 책들도 읽었을 것이다. 그런 문헌에서 그는 하나님의 옷자락이라는 표현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언제 이 하나님의 옷자락을 경험하는가? 즉 그의 지극한 존엄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지극한 존엄..감히 인간으로써는 가늠도 못할 지고의 어떤 것이겠지요 목사님?
우리 인식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저는 기독교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그 하나님을 뵈었던 사건들..모세도 이사야도 에스겔 베드로 바울등
모두 그 지극히 존엄하신 하나님을 뵈었을 때의 반응들
'화로다 나여','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지극히 존엄한 하나님을 뵈었을 때 자신의 실존을 알고는 죽을 것 같은 공포?그리고 경외?
그러한 경험들일까요?
그렇지만 궁금한 것은 내가 그 지극한 존엄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질문하고 고민하지만
우리가 찾거나 원한다고 경험할 수 있는것인지요?ㅠ
질적으로 다르신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다고 되지 않는것이 늘 혼란입니다.
예배가 그런 경험의 때일텐데..지금 기존에 드려지는 교회들의 예배는 감각적이고
수동적이고 형식적일 때가 많아 늘 고민이고 답답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성서해석을 통해 성서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결국은 내가 터득해서 깨달아지는 것일텐데 그것 또한 타종교의 진리를 찾기 위한
수행과도 같은 형식이라 생각되어서요.
결국 제 의문은 하나님에 의해서일까, 나의 의해서일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