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29)

조회 수 1279 추천 수 0 2015.03.23 09:19:24

 

29) 323()

 

<본문읽기>

119:9-16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16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43:8-13

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9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고후 3:4-11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집중 묵상구절>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묵상>

오늘의 구약 본문인 사 43:8-13절에 나오는 문장들은 힘이 넘친다. 특히 11절이 압권이다. ‘가 반복된다. 여기서 는 여호와, 즉 주(). 모든 이들의 주인 에게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그냥 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출 3:14절에도 나온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끌어내라는 소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보낸 이가 누군지 밝히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 앞에서 대답할 말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당신이 이름이 뭔지, 즉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달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 구절에는 각주가 달려 있다. 히브리어로 나는 나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를 루터는 이렇게 번역했다. “Ich werde sein, der ich sein werde.” 루터 번역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존재하게 될 그 자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 돌아온 답변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와 인식의 범주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흔히 나타나는 오류는 하나님을 규정하려는 것이다. 교회에서 그런 방식으로 배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전해들은 것을 나열해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자비가 넘친다. 하나님은 창조주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 축복하신다. 기도에 응답하신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주신다.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신다. 세상을 정의롭게 통치하신다. 이런 걸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는 옳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다. 그것 자체로 명백한 것도 있지만 보충설명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런 규정들을 아무리 많이 나열해도 하나님이 그 안에 담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다. 하나님도 이름이 아니다. 하나님에게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이름을 붙이면 이미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든지 부를 수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고대 유대인들의 한 분파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원어 발음에 더 어울리게 하려면 야웨가 맞는데, 불렀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통해서 그들이 생각한 것은 라는 것이다. 루터는 사 43:11절에 나오는 여호와를 Herr로 번역했다. 그 문장을 정확하게 인용하면 이렇다. “Ich, ich bin der Herr.” 이걸 다시 우리말로 직역하면 , 바로 나는 그 주().”가 된다. 참고적으로 고대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부른 이들도 있다. 신학에서는 이 두 분파가 기록한 문서를 가리켜 그 이니셜을 따서 각각 J 문서, E 문서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주()라는 말은 그에게 절대적인 주권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다. 이런 관계는 두 가지 비유로 종종 표현된다. 하나는 목자와 양이고, 다른 하나는 토기장이와 질그릇이다. 두 가지 비유 모두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양은 목자를 향해서 왜 험한 길로 가는지, 이 길로 가면 풀이 없을 거 같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질그릇은 토기장이에게 왜 자기를 귀한 그릇으로 만들지 않았는지 따질 수 없다. 이런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폄훼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의 결속을 통해서 끌어올리려는 데에 있다. 이런 신앙의 바탕에서만 나 곧 나는 여호와라.’라는 말씀은 이해된다.

 

이어서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는 문장에서 이를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장은 구원의 배타성을 가리킨다. 이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이 영혼을 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를 구원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쓴다. 물불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행위를 보라. 자기 구원이다. 돈은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탁발 수도승이 아니라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구원을 얻어 보려는 생각과 의지가 문제다. 돈만이 아니라 자기를 완성해보려고 기울이는 모든 노력들은 자기 구원이다.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것이다. 가장 숭고한 노력의 하나인 극단적 휴머니즘을 보라. 테레사 수녀의 행위처럼 숭고한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휴머니즘을 무가치하다는 게 아니다. 단순히 교리적인 주장만도 아니다. 구원의 실체를 가리킨다. 테레사 수녀 역시 자기의 행위로 영적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구원자라는 말은 구원이 궁극적으로 비밀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구원을 규정하거나 범주화하거나 재단할 수 없다. 이건 하나님의 전권이다. 이걸 구원 허무주의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구원의 절대성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가리킨다. 우리 앞에 드러나야만 그제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구원의 절대성 말이다. 이런 구원의 절대성이 아니라면 우리가 도대체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차원에서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외쳤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선포는 곧 예수에게 해당된다. 예수 외에 구원자가 없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다.

 

<기도>

주님, 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구원 사건을 전해 듣고 깨닫고 믿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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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사막교부

2015.03.24 00:23:40

하나님을 제 멋대로 규정하고 또한 남의 구원을 자기 인식대로 판단하는 일이 많은 시대지요.

소위 하나님 전문가가 너무 많아 교회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한 없이 작아지렵니다.

캄캄한 흑암 속에 계신 하나님이신걸요.


(사43:11이 출43:11로 오타가 된 것 같습니다. 이 부분/ “Ich, ich bin der He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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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3.24 10:01:56

'소위 하나님 전문가...' ㅎㅎ

그렇네요.

뭔가 아는 것처럼 떠드는 약장사가

사실 약 자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지요.

무와 어둠을 향한 거룩한 욕망,

이게 존재와 빛 경험이 아닐는지요.

오타 바로 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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