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34)

조회 수 1283 추천 수 0 2015.03.28 09:49:27

 

34) 328()

 

<본문읽기>

118:1-2, 19-29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3:10-16

10-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 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가 살 곳이 있으리니 그의 양 떼를 눕게 할 것이라 13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떼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0:32-34, 46-52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집중 묵상구절>

10:33,34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묵상>

우리말 성경에 막 10:32-34절은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시다.’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죽음과 부활이 여러 번에 걸쳐서 주신 말씀인데도 제자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당하고 종교재판과 사법재판을 받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예수가 신성모독과 사회소요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상황에서도 제자들은 혼란스러워했을 뿐이다. 그들이 그런 사태를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상황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예수의 운명이 결정되는 그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은 제 삼자로 머물렀을 뿐이다. 십자가 현장에는 오히려 여자들이 가까이 있었다.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안치한 이도 제자들이 아니라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인물이다. 제자들이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의 예고를 허투루 들었다는 증거들이다. 예수의 예고에 이어서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영광 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면에 않게 하여 달라.’고 요구한 것을 보면 한참 철이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틀 전의 묵상에서도 한 번 짚었지만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예수가 단순히 랍비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모함을 당한다거나 모욕을 당할 수 있다. 그런 일들은 이스라엘 역사에 비일비재했다. 예수는 메시아였다. 메시아에게 고난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전()이해에 묶여 있는 그들에게 고난과 죽음은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일은 지금도 반복된다.

 

부활에 대한 예고도 마찬가지다.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문장은 실제 부활을 말한다기보다는 종교적 격언 정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예수가 부활을 확신했다면 십자가 죽음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살아날 것을 뻔히 알면서 죽는다는 것은 관객들이 죽었다고 착각할 정도의 상황에 떨어졌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마술사들의 태도와 다를 게 없다. 십자가의 죽음을 가능하면 피하게 해달라는 예수의 기도도 역시 예수가 부활을 확신했다는 사실과 배치된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혼란스러운 일들이 일어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는 데에 있다. 승리자로 오실 메시아가 왜 고난을 당해야만 했는가? 복음서 기자들을 비롯해서 신약성서 기자들은 그 대답을 구약 선지자들의 전통에서 찾았다. 14:65절에서 그대로 실행된 위 묵상 구절의 내용은 사 50:6절의 인용이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역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사야의 이 본문은 그 유명한 고난의 종에 속한다. 이런 종류의 글이 이사야에 몇 번에 걸쳐서 나온다. 이사야는 자신의 처지를 바탕에 둔 채 하나님의 사람이 당하는 고난을 신학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고난의 종이라는 구약 성경에 근거해서 이제 제자들은 예수의 고난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과감하게 선포할 수 있었다.

 

이건 메시아사상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다. 버림받음의 증거였던 고난과 십자가가 구원의 증거가 된 것이다. 역설이다. 모두가 피하던 것이 모두가 원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런 말이 추상적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는 여전히 죄와 죽음에서 해방 받지 못했는데, 무엇을 근거로 해방 받았다고 주장하는가, 하고 반론을 펼칠 수도 있다. 우리의 대답은 무엇인가?

 

가장 간단한 대답을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여기서 관건이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제 고난과 죽음이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내가 고난당하는 그 자리에 예수가 함께 하며, 내가 죽는 그 자리에 예수가 함께 할 것이다. 이게 이해되는가? 한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5번을 영혼의 깊이에서 연주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자리에 베토벤이 함께 했다고 말해도 된다. 피아노 음악이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성찬의식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한다고 믿는 것과 같다. 고난과 죽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체험한 사람은 그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당연히 믿게 된다. 이런 신앙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 죄와 죽음의 세력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미 해방된 사람이다. 그 사실을 각자의 신앙 분량에 따라서 충분하게, 또는 어느 정도 부족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예고한 그대로 고난과 죽음의 길을 묵묵히 갔다. 그런 길을 피해보고 싶은 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공생애 초기에 세 가지 시험을 이긴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이를 극복했다. 조롱과 모욕을 당하고, 절대적인 고독에서 그는 십자가에 달렸다.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인간 실존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맛보았다. 바로 그의 영적 실존은 몰트만의 저서 제목처럼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었다.

 

<기도>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가 바로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말로만이 아니라 온 영혼으로 깨닫고 경험하며 거기에 참여하며 살기 원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profile

[레벨:6]사막교부

2015.03.28 22:33:37

조그마한 고난만 와도 하나님의 부재를 외치고

작은 부조리를 보고도 하나님의 통치를 의심하는 우리 입장에선

믿음의 그 장대함에 어찌 다다를 수 있을지요.

그래서 겨자씨만한 믿음이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5.03.28 23:43:14

믿음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 외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산을 향해서 눈을 들듯이

주님이 하신 일에 모든 영혼을 걸고 살아야겠습니다.

귀한 주일을 맞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668 마사토 file [4] 2015-04-23 20091
3667 톰 라이트(6) 2015-04-22 2722
3666 톰 라이트(5) 2015-04-21 1294
3665 톰 라이트(4) [4] 2015-04-20 6277
3664 톰 라이트(3) 2015-04-18 1383
3663 톰 라이트(2) [2] 2015-04-17 1604
3662 세월호 참사 1주기, 박근혜 대통령 [6] 2015-04-16 1807
3661 운전 면허증 [5] 2015-04-15 1616
3660 레퀴엠, 결혼, 쿠바 file [6] 2015-04-14 2383
3659 폐가 file 2015-04-13 1564
3658 톰 라이트(1) 2015-04-11 1791
3657 사도신경 암송하기 2015-04-10 1340
3656 진달래 옮겨심기 file [3] 2015-04-09 4366
3655 칭의의 능력 [1] 2015-04-08 1283
3654 4월의 색깔 file [6] 2015-04-07 1547
3653 성찬 빵을 떼며... 2015-04-06 1529
3652 사순절 묵상(40) [10] 2015-04-04 1831
3651 사순절 묵상(39) [2] 2015-04-03 1769
3650 사순절 묵상(38) [5] 2015-04-02 1452
3649 사순절 묵상(37) [2] 2015-04-01 1372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