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17)

조회 수 1287 추천 수 0 2015.03.09 08:53:10

17) 39()

 

<본문읽기>

 

84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왕상 6:1-4, 21-22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2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3 성전의 성소 앞 주랑의 길이는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너비는 성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4 성전을 위하여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

21 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22 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고전 3:10-23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집중 묵상구절>

고전 3:16, 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묵상>

바울은 고전 3:16-17절에서 혁명적인 발언을 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런 말을 유대인들, 특히 제사장들이 들었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최고급의 자재로 성전을 건축했다. 왕상 6장에 따르면 솔로몬은 성전을 칠 년에 걸쳐 지었다. 그 뒤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렸다. 그 이전에는 여러 산당에서 제사가 가능했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가 성직자 중심의 교권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증거다. 역사가 흐르면서 성전은 점점 더 강한 종교 이데올로기의 구심점이 되었다. 예수 당시에 그런 현상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와 예루살렘 성전에 얽힌 일화는 네 복음서에 다 나온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요한복음이 제일 세밀하게 보도한다. 아마 이 사건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이 요한에 의해서 가미되었을 것이다. 예수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유월절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성지 순례 차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한 편의점들이 있었다. 각 지역의 돈을 성전에서 통용되는 돈으로 환전해 주는 일, 흠이 없는 양이나 비둘기를 파는 일이 그것이다. 예수는 마치 노점상을 강제로 철거하는 구청 직원처럼 그들을 내쫓았다. 공관복음은 그 순간에 예수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는 사 56:7절을 인용했다고 전한다. 요한복음은 약간 다르다. 예수의 행동을 보고 유대인들이 무슨 권위로 당신이 성전에서 행패를 부리느냐고 묻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 요한복음은 예수가 자기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는 주석을 붙였다. 예수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적인 게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입장은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긴 하다.

 

바울은 성전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다.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성전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덧붙여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했다. 이런 말이 이해될 것 같으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좋다. 고린도교회에는 신앙적인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분파가 있었다. 고전 1:12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나온다. 고전 3:4,5절에는 대표적으로 바울파과 아볼로파가 나온다. 고린도교회 안에 분쟁이 심각했다. 바울은 이렇게 정리한다. 자기는 복음의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을 뿐이다. 자라게 한 이는 하나님이다. 고린도교회에서 지도자로 활동한 사람들은 그런 역할만 할 뿐이지 교회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다. 고전 3:11절은 이렇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의 이런 해석에 따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이 키운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키웠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바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한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앞에서 짚은 것처럼 서로 대립했다. 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정당하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이런 분쟁은 거룩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거룩하다는 게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무조건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거룩한 것도 아니다. 교회의 토대, 신앙의 토대를 잘못 세우는 것이 바로 거룩하지 못한 것이다. 아볼로에 속했는지, 또는 바울에게 속했는지를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태도는 거룩하지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칭의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의는 옳다는 것만이 아니라 거룩하다는 뜻도 포함된다. 우리가 예수 믿고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곧 거룩해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에게 율법 실천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한다. 예수를 믿는 것이 의로워지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 믿어도 실제로는 의로워지지 않았다는 사실로 고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얻는 의는 법적인 의미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지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론적 통치 차원에서는 의로워졌지만 일상생활의 차원에서는 아직 아니다. 요약해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길은 예수를 믿는 데서 주어진다. 죽음이 극복되었다는 사실에 영혼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 어찌 거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아니겠는가.

 

<기도>

주님, 예수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이에 근거해서 우리가 이미 거룩해졌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profile

[레벨:20]문전옥답

2015.03.09 17:12:48

마침 칭의문제로 페북에서 논쟁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혁주의 보수신학자들이 새관점학파(샌더스, 던, 라이트?)를 

다른복음이라고 비난하던데 서로들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들이 많아 불편했습니다.

그냥 다비아나 열심히 보는 것이 낫겠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5.03.09 23:06:30

다비아를 지지해주시니 고맙군요.

 

profile

[레벨:9]길위의벗

2015.03.09 21:21:40

옛-관점은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점을 잘 짚고 있고,

새-관점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어 차별하는 것을 비판하고 평등하게 대한다는 점을 잘 짚고 있다는 점에서

둘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율법(유대교 정체성을 의미하든, 몇 계명을 의미하든, 율법 전체를 의미하든)의 무능함과

믿음의 능력을 대비하는 관점 안에서

두 관점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글과 설교에서 볼 수 있는 정용섭 목사님의 신학은 이 두 관점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서로 인격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신앙의 진지함 안에서 논쟁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5.03.09 23:08:07

페북에서 신앙적인 논쟁들이 가끔 뜨겁게 달궈지는가 보군요.

profile

[레벨:9]길위의벗

2015.03.09 23:36:38

페북에서 종종 논쟁하는 건 봤는데, 신학자들끼리 페북에서 논쟁하는 건 본 일이 없습니다.

보면 재밌긴 하겠네요.


문전옥답 님, 혹시 이 댓글 보면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쪽지로 알려 주셔도 좋아요.

저도 싸움(?) 구경 좀...^^; 제가 싸움 구경하는 걸 좋아할 나이인지라.......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있겠죠?

profile

[레벨:20]문전옥답

2015.03.10 08:10:08

말씀을 듣고 보니 논쟁을 한 사람들이 '신학자'인지 '신학도'인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시발점은 요즘 페북에서 유명하신 김관성 목사님이 다른복음 운운하셨고

그 분의 페친들께서 따로 글을 올려서 좀 시끄러웠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649 사순절 묵상(37) [2] 2015-04-01 1373
3648 사순절 묵상(36) [2] 2015-03-31 1125
3647 사순절 묵상(35) [2] 2015-03-30 1174
3646 사순절 묵상(34) [2] 2015-03-28 1283
3645 사순절 묵상(33) [4] 2015-03-27 1249
3644 사순절 묵상(32) [2] 2015-03-26 1217
3643 사순절 묵상(31) [2] 2015-03-25 1454
3642 사순절 묵상(30) [4] 2015-03-24 1156
3641 사순절 묵상(29) [2] 2015-03-23 1280
3640 사순절 묵상(28) [2] 2015-03-21 1355
3639 사순절 묵상(27) 2015-03-20 1091
3638 사순절 묵상(26) [4] 2015-03-19 1335
3637 사순절 묵상(25) 2015-03-18 1233
3636 사순절 묵상(24) [8] 2015-03-17 1321
3635 사순절 묵상(23) [2] 2015-03-16 1339
3634 사순절 묵상(22) 2015-03-14 1155
3633 사순절 묵상(21) 2015-03-13 1115
3632 사순절 묵상(20) [2] 2015-03-12 1167
3631 사순절 묵상(19) [2] 2015-03-11 1212
3630 사순절 묵상(18) 2015-03-10 1043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