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25)

조회 수 1233 추천 수 0 2015.03.18 10:10:49

 

25) 318()

 

<본문읽기>

107:1-16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60:15-22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17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18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8:12-20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집중 묵상구절>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묵상>

요한복음에는 빛이라는 메타포가 자주 사용된다. 1:4절은 이렇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어서, 그 빛이 어둠에 비쳤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예수가 빛으로 세상에 왔지만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늘의 묵상구절인 요 8:12절도 예수를 빛이라고 했다.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고대인들에게 실제의 태양빛이 어떻게 경험되었을까? 지금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으며 지구의 자전운동에 의해서 낮과 밤이 생긴다는 물리적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고대인들의 눈에는 그 모든 게 비밀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태양과 그 빛에 대해서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다. 현대물리학은 빛이 입자인지 파장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빛의 성질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신비다. 왜 빛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빅뱅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한 영원한 비밀이다. 어쨌든지 우리에 비해서 태양빛에 대해 아는 게 턱없이 부족한 고대인들도 태양빛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만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두 가지다.

 

하나는 태양에 의해서 세상이 밝아지고, 밝아져야만 세상을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둠에서는 모든 사물이 숨고, 빛에서만 드러난다. 모든 사물은 빛에 의해서만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걸 고대인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빛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태양 빛이 있어야만 모든 식물들이, 또한 이를 먹고 사는 동물들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탄소동화작용에 대한 물리적 현상을 알지 못했지만 태양이 생명현상의 필수라는 것만은 알았다. 태양의 시간이 짧아지는 계절에 식물은 성장을 멈춘다. 다시 길어지는 계절이 오면 식물은 살아난다. 이런 현상에서 태양빛은 결정적이다. 그러니 빛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세기의 창조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이 육일 동안 세상을 차례대로 지으셨다. 가장 먼저 지은 것이 빛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나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1:3-5). 창세기 기자의 눈에도 역시 빛이야말로 모든 것의 단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빛을 어둠과 대립적인 관점으로 본 고대 서양철학의 한 분파가 있었다. 영지주의다. 그들이 볼 때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분리된다.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이 대립한다. 사람도 빛에 속한 사람이 있고, 어둠에 속한 사람이 있다. 일종의 선악이원론적인 세계관이다. 영지주의는 초기 기독교 기독교에도 영향을 제법 끼쳤다. 그런 흐름이 기독교 역사에 면면이 이어졌다. 한국교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영적 전쟁도 이런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세상을 성령과 악령의 대결로 보면서 기독교인들이 이런 전쟁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보는 악령은 물론 기독교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다.

 

신구약 전체를 놓고 볼 때 빛과 어둠, 성령과 악령의 이원론적 대립은 설 자리가 없다. 세상의 악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을 맞설만한 악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악은 분명히 활동한다. 악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불행은 많다. 창세기는 그 악을 뱀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욥기에는 사탄이 등장하고, 예수의 공생애 초기에도 마귀가 등장한다. 예수가 악령을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복음서 기자들이 전한다. 이런 것들은 악이 현실로 자리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지 하나님과 동일한 힘으로 맞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 통치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은 악과 적절하게 영역을 나누어서 통치하는 분이 아니다. 악이 어디서 왔는지, 왜 악이 완전히 제압당하지 않는지, 등등의 질문은 여기서 다룰 수 없다.

 

빛과 어둠을 대립적인 것처럼 전하는 요 8:12절이 영지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건 그렇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다. 표현만 당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런 방식으로 한 것이지 정작 전하려는 메시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곧 예수가 세상의 빛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어둠은 종속 변수다. 어둠 자체가 힘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빛이 없을 경우에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어둠에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지만, 빛에 어둠이 오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상수는 빛이다.

 

예수가 왜 빛인가? 이미 답을 얻었을 것이다. 예수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14:6). 여기서 예수가 우리의 생명인 이유가 무어냐, 하는 질문이 가능한데, 이 대답을 여기서 다시 거론할 수 없다. 다 알기도 하고, 대답에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중의 한 마디만 한다면 이렇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 죄는 죽음을 불러온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예수만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죽음을 넘어서게 했는지를 아는 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기도>

주님, 예수만이 우리의 죄를 용할 그리스도이심을 온 영혼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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