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일기(64)- 토지읽기(11)

조회 수 1399 추천 수 0 2015.02.22 21:59:18

 

토지 읽기(11)

 

어제 나는 전체 20권에 이르는 <토지> 읽기를 끝냈다. 대충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시간을 따로 내어 집중적으로 읽지 못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다보니 날짜가 좀 지체되었다. 집중적으로 읽으면 하루에 두 권 정도를 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은퇴해서 모든 업무로부터 해방되면 책이나 실컷 읽어야겠다.

 

다 읽고 여러 가지 점에서 기분이 뿌듯했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부터 시작해서 해방이 된 1945년까지 50년에 이르는 한민족의 근대역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강한 탓인지 내가 직접 그 시대를 산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무엇보다도, 앞에서 어딘가 한번 짚은 것 같은데, 구체적인 사람들과 그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게 이번 토지 읽기에서 큰 소득이다. 나는 평생 교회 밥을 먹고 산 사람이라서 사람에 대한 경험이 한정적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 물경 6백 명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나는 정말 다양한 기질과 인격을 지난 사람들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한 것이다. 어쩌면 직접 경험한 것보다 더 정확하게 배운 것일지 모른다.

   

앞에서 <토지 읽기> 연재 묵상을 10번까지 올렸다. 그 뒤의 이야기를 더 올리려고 중요한 대목에 표시까지 하면서 읽었다. 사순절 묵상이 시작되어 다시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끝까지 읽고 나니 지난 이야기를 다시 전하는 게 선 듯 내키지 않는다. 오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따오는 것으로 아쉽지만 토지 읽기를 접겠다. 약간 길게 인용하겠다. 최서희와 양녀 양현이, 그리고 최서희 집안의 집사로 오래 활동한 장연학이 나온다. 최서희의 남편 길상은 예비 단속자 명단에 끼어 수년 째 영어의 몸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학도병으로 나갔다.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젊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들도 징용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여성들은 정신대로 끌려갔다. 이 와중에 가정이 파괴되고, 인륜이 땅에 떨어졌다. 아무 데서도 희망의 빛을 찾지 못하고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들.

 

쾌청한 날씨였다. 한더위는 지나간 듯 아침저녁은 제법 선선했다. 양현은 작은 바구니를 하나 들고 집을 나셨다. 소련이 참전했다는 보도가 있는 후 서희는 구미를 잃었는지 밥을 잘 먹지 못했다. 그런 서희의 식욕을 돋우어보기 위해 강가에 가서 은어라도 좀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집을 나선 것이다. 건이네가 가겠노라 하기는 했으나. 섬진강은 푸르게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중잡고 나오기는 했는데 고기 잡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늘 낚시질을 하던 노인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양현은 무턱대고 기다릴 생각을 하며 강가 모래밭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어머니가 서울 가시면 나도 따라가야겠지?’

덕희의 얼굴이 눈앞에 지나갔다. 강 건너 산으로 시선을 보낸다. 산은 청청하고 싱그러웠다.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강물은 아랑곳없이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까. 둑길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중 한 사람이 앞서가며,

일본이 항복했소!”

하고 외쳤다. 뒤쫓아가는 사람들이,

정말이요!”

어디서 들었소!”

이자 우리는 독립하는 거요!”

각기 소리를 질러댔다. 양현은 모래를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달렸다. 숨차게 달렸다.

 

스님 그게 정말입니까!”

먹물 장삼의 너풀거리는 소매를 거머잡으며 양현은 꿈길같이 물었다.

라지오에서 천황이 방송을 했소이다

 

양현은 발길을 돌렸다. 집을 향해 달린다. , 참으로 긴 시간이었으며 길은 멀고도 멀었다.

어머니! 어머니! 어디 계세요!”

빨래를 하고 있던 건이네가 놀라며 일어섰다.

어머니! 어디 계세요!”

저기, , 별당에 계시는데.”

양현은 별당으로 뛰어들었다. 서희는 투명하고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푸른 해당화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양현은 입술을 떨었다. 몸도 떨었다. 말이 쉬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 ,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이때 나루터에서는 읍내 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한이 둑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204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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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문전옥답

2015.02.23 00:03:17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또 하나 추가해야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추천하신 책들을 읽어나가기가 벅찹니다.

그래도 이거저거 좁은 안목으로 좋은 책 고르는 수고하지 않고

소개해주시는 것만 맘 놓고 읽기만해도 돼서 편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소개해주십시오.

너무 어렵지 않은걸로..^^;;

개인적으로 예배, 신비를 만나다라는 책 너무 어렵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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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2.23 23:04:31

문전옥답 님,

<토지>는 대하소설이니 값주고 사기는 부담이 될 겁니다.

손이 닿는 도서관에서 빌려보시지요.

요즘 저는 톰 라이트의 <사순절 묵상집>을 읽고 있습니다.

편안하면서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더군요.

<예배, 신비를 만나다>가 술술 읽혀지지는 않지요?

다 이해가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진도를 나가면 나중에 뭔가가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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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9]愚農

2015.02.24 11:54:11

토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저마다의 개성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데 목사님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것 같습니다.

매일 묵상에서 토지가 사라진다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이야기의 入門만 소개하고 끝내는 것 같아 토지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독자들이 약간 허무할것 같습니다.

저는 청도 어린이 도서관과 청도공공도서관에 회원등록하여 책을 빌려보고 있습니다.

토지는 딱 절반 읽었고 이번주 청도행에 나머지 10권도 빌려올 작정입니다.

저는 주인공인 길상이나 서희보다도 임이네,강포수,귀녀등에게 강렬한 삶의 의미를 읽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필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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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2.24 21:50:57

ㅎㅎ 우농 님의 사람에 대한 취향(?)이 독특하군요.

강포수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사람이지만

임이와 귀녀는 좀, 뭐라 할까

강렬하기는 하나 그런 사람 옆에 있기는 상당히 불편하겠지요.

저 대신 우농님께서 감상 글을 좀 올려주시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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