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일기(40)- 빵

조회 수 1525 추천 수 0 2015.01.21 23:01:04

 

 

나는 커피 마니아가 못된다. 맛의 깊이를 잘 모른다. 그걸 즐기려면 시간과 몇몇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부족하다. 게으름이 가장 이유다. 커피를 그냥 마셔도 좋지만 빵과 곁들여 마시는 게 좋다. 나에게는 그렇다.

 

우선 살짝 구운 빵 위에 치즈를 바르고 다시 슬라이스 형태로 된 햄을 올려놓고 먹는다. 아주 간단하다. 맛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먹을 만하다. 그러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랴. 그걸 먹고 오늘 하루도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다른 먹을거리도 마찬가지지만, 매일 아침에 빵을 먹으면서 나는 하늘과의 일치를 느낀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나는 아침마다 하늘을 먹는다. 그래서 매일 아침 식탁이 즐겁다. 이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 또는 행위가 있을까? 지금 내 입으로 들어가는 빵의 재료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밀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언덕 밀밭에서 자랐다. 밀이 자라도록 우주가 힘을 보탰다. 그 밀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서 빵이 되어 내 아침 식탁 앞에 놓여 있다. 그걸 내가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황홀한 일이냐. 밥도 마찬가지다. 식사행위는 거룩한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원당 숲에서 존재의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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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문전옥답

2015.01.22 11:01:33

일상의 신비를 목사님을 통해 보게 되네요.
감사의 이유가 새롭게 다가 오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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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1.22 23:33:50

예, 일상의 신비, 신앙의 신비, 하나님의 신비를 알면

감사의 마음이 출렁이겠지요.

[레벨:14]Lucia

2015.01.22 20:42:37

목사님께서 구우신 빵이
제가 먹는거 보다 맛있어 보입니다
아침에 교회갔다가 오는길에
갓 구운빵을 네개씩 사는데 오늘은
뜨거운게 걸으며 뜯어먹었어요^^
버터발라 노릇하게 구워 과일을
특히 망고를 저며 끼워 먹으면 맛있어요
남편이 그래요 단거 너무 먹는다구...
쭈욱 읽으면서 눈사울이 적혀지는데
공감되는 글이 주는 넉넉함입니다
식사행위는 거룩한 일이다
잊을 수 없을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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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1.22 23:36:38

빵과 망고라, 음

그게 어울린다는 말이지요?

오늘 어느 다비안들과 대화하는 중에

그렇지 않아도 루시아 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 먼 나라에 영적으로 통하는 분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입니다.

언젠가는 한번 만나 뵙게 될 순간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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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15.01.22 22:10:06

무엇을 더 바라랴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눈과 귀와 감각이 살아있는데
어찌 더 바라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오늘 좋아했던 그녀를 우연히 만났네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네요
어떻게 하면 바라지 않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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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1.22 23:37:11

ㅎㅎ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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