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일기(44)- 나는 듣는다.

조회 수 1391 추천 수 0 2015.01.26 22:34:11

 

나는 듣는다.

 

나는 매일 뭔가를 듣는다. 이 세상에 소리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우리 집 창호는 이중 겹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나는 웬만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빗소리도 안 들린다. 방 위치에 따라서 약간 다르긴 하다. 조립으로 지은 부분은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잘 들린다. 그러나 나중에 철근골조로 증축한 부분은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동네 어느 집에서 나는 닭소리와 개소리는 들리기는 하지만 개미소리처럼 아주 작게 들려 수면에 방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 기차소리는 제법 확실하게 들린다.

 

소리를 들으려면 집밖으로 나와야 한다.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그걸 바람소리라고 해야 할지, 대나무소리라고 해야 할지 어렵다. 바람과 대나무가 어우러진 소리겠지. 새들이 대나무 숲에서도 노래하고 퍼덕댄다. 매일 아침 창문 아래서 먹이를 달라고 우는 고양이 울음소리도 듣는다. 수놈은 별로 소리를 내지 않는데 비해서 암놈이 소리를 자주 낸다.

 

요즘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설거지 할 때 듣는다. 접시나 밥그릇을 세제 묻힌 수세미로 닦은 뒤에 맑은 물로 헹굴 때 정말 예쁜 소리가 난다. 그냥 물만 흐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릇에 묻은 거품을 손바닥에 적당한 힘을 가하면서 씻어내면 된다. ‘뽀드득하는 소리가 난다. 그릇과 손바닥의 마찰을 통한 소리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지루한 줄 모른다.

 

소리는 지구에서만 나타나는 물리현상이다. 달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도 소리는 없다. 공기가 있어야 소리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소리가 공기를 타고 와서 고막을 진동시키면 뇌가 그걸 감지한다.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완전히 듣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청각 능력이 점점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게 두렵지는 않으나, 아직 들을 수 있다는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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