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일기(50)- 토지 읽기(5)

조회 수 1681 추천 수 0 2015.02.02 22:34:35

 

토지 읽기(5)

 

지금 <토지> 16권 째를 읽고 있는데, 눈물을 자아내는 대목이 몇 군데 있었다. 주인공 서희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다. 그중의 하나가 아래다. 서희는 하인이었던 길상과 결혼한다. 아들 둘을 낳아 귀하게 키웠다. 큰 아들은 환국, 둘째는 윤국이다. 용정에서 고향 평사리(실제 살기는 진주)로 돌아왔지만 남편 길상은 간도에 그대로 남아 독립 운동을 하다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 살이를 한다. 서희는 흔들리지 않고 혼자 두 아들을 키우면서 재산을 관리한다. 윤국이는 반항 기질이 있다. 서희는 술집 심부름을 하는 숙이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소문에 휩싸인 윤국이를 설득하게 되었다. 대화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갔다. 윤국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발언하게 된다. 아버지를 어머니 계급으로 끌어올리려고 하지 말고, 어머니가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꼭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님을 어머님 계급으로 끌어올리려는 생각은 마십시오. 어머님이 내려오셔야 합니다. 저는 때때로 슬프지만 아버님의 출신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으리마님, 사랑양반, 그것은 아버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조롱입니다!”

 

낯빛이 달라지기론 윤국이 먼저였다. 서희의 낯빛도 차츰 파아랗게 질리어갔다. 숙이에 대한 윤국의 감정은 그 뿌리가 바로 부친에게 있었다는 것을 모자는 동시에 비로소 깨닫는다. 서로 대좌한 채 얼어붙어 버린다. 허공과 같은 막연한 공간, 언제 어떻게 해서 이 지경까지 왔는가.

이윽고 서희는 일어섰다. 방에서 나갔다. 윤국은 꿇어앉은 채 눈물을 흘린다. 흐르는 줄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사춘기의 남녀가 빠지기 쉬운 위험을 근심했다기보다 어머니는 신분적인 것으로 하여 깊이 우려했다. 그렇게 생각한 윤국은 저 자신도 고삐를 잡을 수 없게 부친의 신분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사태였다. 어째서 얘기가 거기까지 미쳤는가. 덫에 걸린 것처럼 윤국은 몸부림치고 싶었다.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자식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다. 환국이 이 사실을 안다면 영원히 윤국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에 작은 공자(孔子)라는 말을 듣던 그렇게 유순했던 환국은 아버지의 신분 운운한 탓으로 이순철의 머리를 돌로 쳐서 상처를 입혔다. 윤국은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루에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여는 소리, 한결같은 어머니의 하얗고 예쁜 버선발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서거라.”

윤국은 용수철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 걷고 종아리 내놓아라.”

윤국은 바지 자락을 걷어 올린다. 그리고 등을 돌리며 돌아섰다. 바람을 끊는 소리, 종아리가 타는 듯 뜨겁다. 또다시 바람을 끓는 소리, 타는 듯 뜨거운 감각, 몇 번이나 그 뜨거움을 느꼈을까. 그러나 거듭될수록 윤국의 마음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너의 말은 어떤 면에서 옳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불손한 그 태도에 매를 들었느니라. 내려가보아라.”

쉰 듯한 목소리였다. 윤국이 돌아서며 어머니를 쳐다본다. 눈물 자국은 없었는데 어머니의 눈을 몇 밤을 지새운 듯 새빨갰다.

잘못했습니다. 어머님. 용서해주십시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14181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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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여름비

2015.02.03 10:11:09

서희의 어미로서의 결연한 태도가 마음에 듭니다.

이 정도라면 자녀도 부모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요..

아직도 소리소리 지르는 엄마라니,, 어제 오늘의 저를 반성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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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2.03 22:33:32

ㅎㅎ 여름비 님이 벅벅 소리를 지른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강희가 빵을 잘 만들었는지 궁금하네요.

성공했으면 주일에 조금 가져와서 맛좀 보여주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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