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5)

독일에서 돌아와 2001년 3월부터 대구 수성구에 있는 아무개 교회에 협동 목사로 적을 두고, 번역 일에 매달리고 신학교 강의만 나갔다. 일반적인 형태의 목회는 그만두기로 했다. 이런 생각은 독일로 안식년을 떠날 때부터 했던 거였다. 아내에게도 이미 그런 쪽으로 양해를 얻었다. 목회자로서의 소질이나 은사가 부족해서 더 이상 이런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지혜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일부러 목사 활동을 완전히 접을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독일에서 돌아온 뒤에 불러 주는 교회도 없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자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2001년 4월부터 9월까지 여섯 달 동안 판넨베르크의 <Theologie und Philosophie>(신학과 철학) 번역에만 매달렸다. 분량이 제법 많았다. 번역본으로 436쪽이나 됐다. 판넨베르크 선생이 한국을 방문한 그 해 11월을 맞추느라 번역 작업을 서둘렀다. 오역과 오자를 바로 잡아내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신학생들의 필독서인데, 얼마나 팔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신교 조직신학을 대표하는 판넨베르크 선생은 2014년 9월5일에 세상을 뜨셨다. 그분은 내 신학과 영성과 설교와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2001년 10월부터 대구 YMCA에서 매주일 1회씩 ‘인문학적 성경읽기’(빌립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게 <대구성서아카데미> 운동의 단초다. 곧 이어서 격월간으로 목사를 위한 ‘설교공부’ 모임도 시작했다. 이런 공부 모임이 월간지 <기독교 사상>에 소개되었고, 설교공부에서 사용된 원고가 그 잡지에 게재되면서 ‘정용섭 목사의 설교비평’이 한국교회에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