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정신

신구약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 중의 하나는 영(靈)이다. 인간의 구성 요소를 영과 몸이라고 한다. 거기서 말하는 영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완전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몸과 대립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영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루아흐는 영, 또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신약성서의 프뉴마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령, 또는 하나님의 영이다.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통하고, 또 어떻게 구별되는지도 좀 복잡한 문제다. 성서도 이에 관해서 소상하고 명증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통치 능력인 성령을 우리가 무슨 수로 다 해명할 수 있단 말인가. 총괄적으로 말해서 영, 또는 성령은 생명을 생명 되게 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즉 살리는 영이다.

헤겔의 <정신 현상학>(Phaenominologie des Geistes)은 그의 대표 저작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의식에 대한 학문적 연구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정신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기독교가 영이라고 부르는 Geist다. 독어로 영과 정신은 같은 단어다. 헤겔은 인간의 의식이 어떤 대상을 경험하면서 절대적인 앎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를 정신이라고 본다. 확실한지는 모르겠고, 그냥 내가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으로 정리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헤겔 철학이 아니라 그가 정신이라고 지칭한 그 개념과 우리가 영이라고 보는 그 개념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일반 평신도들만이 아니라 목사들도 영이라는 단어를 별 생각 없이 사용한다. 어떨 때는 성령을 귀신 작용쯤으로 간주한다. 오늘의 생물학과 유전공학이 말하는 인간의 정신작용, 그리고 철학이 말하는 정신현상에 대한 공부는 성서의 내용을 21세기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야 할 목사들에게 필수불가결이다. 오해는 말자. 과학과 철학 자체를 교인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런 공부를 통해서 성서가 말하는 그 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타당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