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시인의 상상력이 시 경험에서 핵심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현의 설명을 인용하겠다.

처음에 상상력은 채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재 속에 숨어 있는 불씨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 생각의 크기와 밝기도 미약하기 그지없다. “상상력은 대상과 밀착되고 있는 상태를 말해준다. 분석적 관찰의 결과가 아닌 종합적 직관의 결과”라는 이형기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시적 상상력은 직관 중에서도 감각적 직관의 도움을 받는다. 이문재는 감각을 일컬어 “몸과 마음의 경계”이면서 “자아와 타자 사이에 있는 가교”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시에서 감각이 중요한 이유는 시가 “단순한 보기(見)가 아니라 꿰뚫어보기(觀)”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애초부터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인 것은 아니다. 시인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상상력을 풀무질하는 자이다. 시인이 불씨를 살려 강철을 구부리고 녹여 만들어낸 연장을 우리는 시라고 부른다(252, 253쪽).

상상력은 경우에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날개를 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것은 상상력이라기보다는 망상이다. 참된 상상력은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토대가 탄탄하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런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그 상상력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다. 이사야는 어린아이들이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며, 사자와 토끼가 함께 뛰어놀 것이라고 노래했다.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불의와 고난을 해결할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그들의 메시아 대망도 상상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것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근거해서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고, 병든 사람을 고치기도 하셨고, 성전 권위에 맞설 수 있었다. 마태복음 기자가 전하는 팔복말씀(마 5:1-12)을 보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상상력에 근거하지 않으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여러 비유도 이런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열 시간 일한 사람이나 모두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주는 포도원 주인이 바로 하늘나라와 같다고 하셨다. 상상력이 없다면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전하는 설교는 죽은 설교다. 설교자들은 신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키울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