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것에 대해

 

판넨베르크의 책에서 한 군데만 더 인용하겠다.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창조적 근원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현실적인 것들, 즉 인간과 코스모스의 유래와 연관해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유는 여전히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나님과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전체가 공속적이며 서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공허한 낱말이 되거나 아니면 사실적 바탕이 없는 빈 표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채 세계와 인간의 현실성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현실적인 것의 전체를 하나님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전제에서만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 철학은 자신의 과업을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이미 현실성을 전체에서, 즉 코스모스의 단일성에서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의 대상 개념이었다(18).

 

약간 길게 인용했지만 내용을 따라가기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전제할 때만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유효하다는 뜻이다. 이건 기독교 교리의 핵심에 속하는 창조론이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사도신경의 첫 항목도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말은 세상의 유일한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 하나님을 언급하려면 세상의 현실성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의 현실성에 대한 해명이 바로 철학의 과업이다. 철학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을 언급할 수 없다.

 

몇 가지 반대 주장이 가능하다. 두 가지만 보자. 하나는 성경만 잘 알아도 세상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긴 하다. 성경에 이미 세상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직간접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세계관은 완성된 게 아니다. 천동설을 오늘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성경이 말하는 세계를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라도 철학과의 대화를 포기하면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세상에 대한 철학적 해명도 가지각색이라서 그걸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도 일리가 있다. 철학 사조도 역사적으로 변했고, 지금도 각양각색이다. 마르크시즘과 실존주의와 해체주의 등등, 철학은 세상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우리가 모든 철학을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니다. 특히 현대철학은 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만 분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전체를 통해서 언급되어야 할 하나님 해명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언어철학이나 포스트모던 철학 유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근원을 모색하는 철학의 본래 전통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을 언급해야 할 신학이 함께 가야 할 도반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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