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공부(121)- 존재와 무

조회 수 1875 추천 수 0 2014.08.27 23:13:22

 

존재와 무

 

도대체 존재는 무엇일까? 존재 개념을 알면 종교와 철학과 신학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 주제에 매달렸는데, 그중에서 하이데거(M. Heidegger)가 대표적이다. <Sein und Zeit>(존재와 시간)를 써서 그는 젊은 나이에 세계 철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유럽 철학은 존재(Sein)가 아니라 존재자(Seiende)에만 천착했다. 여기서 존재자는 말 그대로 이 세상에 드러난 것들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더 근원적인 세계를 봐야 하는데, 그게 곧 존재다. 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들을 멈추고(판단정지), 존재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게 곧 기초존재론이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들보다도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것들, 즉 무가 존재를 이해하는데 더 중요하다. 그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교수 부임기념 강연에서 왜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고, 무는 없는가?’ 하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런 질문은 하이데거만 한 건 아니다.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질문한 것이다. 헬라 시대의 동상이나 그림에 하반신은 말이고 상반신은 사람인 형상들이 등장한다. 그런 형상들은 다 이런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말은 존재하고 사람도 존재하는데, 왜 그 중간쯤 되는 존재자는 없는가, 하고 말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런 예술품으로 시도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 존재와 무의 관계에 천착했다. ‘존재는 무에 걸쳐 있다.’고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여기 포도주 잔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거기에 잔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그걸 거꾸로 본다. 잔이 아닌 것, 즉 잔의 관점에서는 무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잔을 가능하게 한다. 즉 무가 존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을 어림짐작으로 설명한 이유는 그의 철학 개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설교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해명하고 변증하는 사람이기에 존재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데에 있다. 이런 이해가 깊어지는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서 하나님의 계시가 단순히 노출만이 아니라 은폐와의 변증법적 긴장에 놓여있다는 신학적 진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설명이 기독교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냐, 특히 설교와 무슨 상관이 있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되는 분들은 신학공부에, 아니 기독교 영성 훈련에 좀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레벨:12]staytrue

2014.08.28 10:44:34

'계시가 단순히 노출만이 아니라 은폐와의 변증법적 긴장에 놓여있다는 신학적 진술' ...

다비아에 몇번 오가다보니, 이 문장의 맛을 좀 알듯합니다.

긴장이라는 단어가 뭔가 좀 설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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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8.28 23:18:05

설레신다니 저도 글 쓴 보람을 느낍니다. ㅎㅎ

십자가가 왜 인류 구원의 길이야 하는 것도

이런 변증법적 긴장에서 이해해야겠지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노출된 사건이지만

그게 왜 구원의 길인지는 여전히 은폐되어 있거든요.

그 은폐는 은폐로 머물지 않고

이미2천년전 예수 사건에 노출되었고,

지금도 역사를 통해서 점점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지요.

이미 가을이 온 것 처럼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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