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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공부(84)- 예수의 족보 이야기

  • 2014-07-15
  • 조회 수 2202

예수의 족보 이야기 앞에서 구약의 첫 구절을 인용했으니 이제 신약의 첫 구절인 마 1:1절을 인용하겠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 문장의 뜻은 단순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진술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족보를 거론할 필요가 있었겠냐, 하는 점이다. 족보 이야기가 없어도 복음을 전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족보 이야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신성이 족보 이야기로 인해서 약화될 수 있기 ...

목사공부(83)- 설교의 목표 [8]

  • 2014-07-14
  • 조회 수 2089

설교의 목표 모든 강의에 목표가 있는 것처럼 설교에도 목표가 있다. 목표에 대한 생각도 다들 다를 것이다. 회중들을 회심시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설교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회중들을 더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설교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령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든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하여 복 받게 하는 것이라고도 답할 수 있다. 교회 일에 충성하는 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거나, 목사의 말을 잘 듣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

목사공부(82)- 하나님의 은폐성 [2]

  • 2014-07-12
  • 조회 수 2794

하나님의 은폐성 설교자들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사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좀더 정확하게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설교자의 영성은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사실 성서의 진술도 모두 그런 사태를 전제하고 있다. 기독교의 기초 교리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세례와 성찬과 예배, 그리고 교육과 봉사와 선교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그런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 자체를 아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은폐이...

목사공부(81)- 설교자로서의 목사 [2]

  • 2014-07-11
  • 조회 수 1774

설교자로서의 목사 성찬 문제를 다룰 때 언급한 것처럼 개신교 예배에서 설교의 비중이 유달리 크기 때문에 목사도 설교자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나는 설교학에 대한 종합적인 해명을 하지 않겠다. 그런 해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졸저 <설교란 무엇인가>(홍성사, 2011년)를 참조하면 된다. 여기서는 설교행위 앞에 선 목사의 영적 실존에 대해서 내가 평소 이해하고 있는 것을 조언하겠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먼저 생각해보자. 목사에게 설교가 가능할까? 목사는 자기가 아는 것을 설교하고 있을까? 모르...

목사공부(80)- 예배와 목사

  • 2014-07-10
  • 조회 수 1481

예배와 목사 예배 문제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예배 행위에서 목사의 위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단히 짚겠다. 이미 앞에서 언급된 것으로 대략적인 그림은 전달되었을 것으로 본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서 양쪽을 중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흔히 말하듯이 목자가 아니고 일반 신자들과 동일한 양이다. 목자는 예수님뿐이다.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인도하는 게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을 달리하는 것뿐이다. 목사는 일반 신자와 다른 역할이 있다. ...

목사공부(79)- 파송예전

  • 2014-07-09
  • 조회 수 1496

파송예전 예배의 마지막 단락은 <파송예전>으로서 마침찬송, 위탁의 말씀, 축복기도, 후주로 구성된다. 파송은 예배에 참석했던 회중들을 세상으로 보낸다는 뜻이다. 이것은 기독교 영성에서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모든 마음을 두고 살다가 중간에 잠간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당에 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다. 예배 중심의 삶으로부터 세상으로 파송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잠시 교회라는 종교적 영역으로 도피하는 게 아니라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담대하게 나가는 것이다. <파송예전>의 네 항...

목사공부(78)- 사물의 영성화

  • 2014-07-08
  • 조회 수 1496

사물의 영성화 성찬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는 성찬이 물질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는 철학적 해석이다. 이런 해석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성찬을 집행하는 목사는 자신의 행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좀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성찬식의 질료인 빵을 보자. 우리의 경우로 바꾸면 밥이 될 것이다. 빵은 단순한 사물에 불과하지만 그 속사정은 엄청나다. 우주의 무게와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 너머 어느 공간으로 여행하다가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도착해서 빵을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그것...

목사공부(77)- 성찬공동체 [2]

  • 2014-07-07
  • 조회 수 1923

성찬공동체 성찬의 신학적 개념이 신학자나 교파에 따라서 차이가 있어도 그것이 예배에서 필수불가결이라는 사실만은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개신교회는 타종파에 비해서 유달리 성찬식을 소홀히 대한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개신교회의 예배는 설교에 무게를 둔다. 2) 로마가톨릭교회나 정교회의 전례 중심의 예배(미사)를 형식주의로 본다. 3) 교회의 대형화로 인해 성찬 집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4) 성찬에 대한 신학적 몰이해에 묶여 있는 목사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많다. 내가 보기에 이런저런 이유...

목사공부(76)- 화체설과 임재설

  • 2014-07-05
  • 조회 수 3281

화체설과 임재설 성찬 문제는 종교개혁자들에게도 신학적으로 예민한 주제였다. 다른 부분에서는 서로 생각이 통하면서도 성찬에서는 차이를 좁히기 어려웠다. 로마가톨릭을 포함해서 그런 차이를 특징적으로 크게 나누면 화체설, 임재설, 상징설(또는 기념설)이 있다. 로마가톨릭은 화체설을 주장한다. 사제가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축성하는 순간에 빵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말이 안 된다. 사제가 축성해도 빵은 빵이고 포도주는 그대로 포도주이지 그것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

목사공부(75)- 빵과 포도주

  • 2014-07-04
  • 조회 수 1632

빵과 포도주 성찬식에 필요한 물품은 빵과 포도주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먹을거리다. 이 두 가지만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다면, 즉 생존 자체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삶이 새로운 빛을 낼 것이다. 나는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성찬식에 따른 공식적인 예전문을 읽은 뒤에 빵과 포도주를 각각 들고 다음과 같은 자유로운 멘트를 전한다. 경우에 따라서 조금씩 변형되는데, 기본적인 틀은 같다. 성도 여러분, 여기 빵이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없는 게 아니라 ‘있다.’는 것...

목사공부(74)- 성찬의 의미

  • 2014-07-03
  • 조회 수 4143

성찬의 의미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에는 양을 잡는 전통이 있다. 양은 사람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바치는 희생제물이다. 초기 기독교는 유월절 만찬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진 양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빵과 포도주에 얽힌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피다. 이들은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모일 때마다 성찬예식을 거행했다. 성찬의 의미는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에서와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유대인...

목사공부(73)- 성찬식 [2]

  • 2014-07-02
  • 조회 수 1959

성찬식 주기도 다음은 성찬식이다. 샘터교회에 매주 성찬식이 있는 건 아니다. 매월 첫 주일의 예배에만 성찬식이 있다. 월 한 차례는 다른 교회에 비해서 많은 편이다. 일반적으로는 송구영신예배, 신년예배, 종려주일, 부활절, 성탄절 등을 기해서 일 년에 네 번 정도 성찬식을 집례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당연히 매주일 정도가 아니라 미사가 열릴 때마다 성찬식을 한다. 성찬식이 없으면 미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로마가톨릭의 입장이 옳다. 성찬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종...

목사공부(72)- 주기도

  • 2014-07-01
  • 조회 수 1556

주기도 목사의 중보기도가 끝나면 회중 전체가 주기도를 드린다. 우리가 앞에서 드린 모든 기도가 주기도로 수렴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주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주기도가 모든 기도의 원형이니 이런 태도는 마땅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에는 사도신경도 그렇지만 주기도도 두 개의 번역이 있다. 옛날 번역이 익숙하지만 교회 일치 정신에 따라서 우리도 새로 번역된 주기도를 사용한다. 학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좋게 번역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한두 가지가 조금 걸린다. ‘아버지’라는 표현이 중복 되었다. 옛날 번역보...

목사공부(71)- 중보기도 [7]

  • 2014-06-30
  • 조회 수 2246

중보기도 헌금 다음 순서는 중보기도다. 담임 목사가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한다. 중보기도의 전반부는 헌금기도이고, 후반부는 말 그대로 중보기도다. 헌금기도는 우리의 중심을 담아서 헌금을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는다. 경우에 따라서 믿는 사람들이 물질로 인해서 시험받지 않도록 필요한 것은 채우고 필요 없는 것은 제해달라는 간구를 포함한다. 중보기도(仲保祈禱)라는 용어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

목사공부(70)- 구제와 교회

  • 2014-06-28
  • 조회 수 1521

구제와 교회 교회 재정의 40% 정도는 교회 밖으로 돌리는 게 좋다는 주장이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교회가 구제 문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건 아니다. 교회가 구제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식으로 말해서 복지 문제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책임이지 교회의 책임이 아니다. 교회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경우에 상징적으로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교회는 복지 문제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국가로 하여금 그 책임을 떠맡을 수 있도록 감시하고 충고하고 경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

목사공부(69)- 하나님의 선교

  • 2014-06-27
  • 조회 수 2185

교회 밖 경비의 대부분은 선교비와 구제비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구분되기도 하고 서로 맞물려 있기도 하다. 이것은 일단 선교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컨대 직접 전도만을 선교라고 본다면 선교비는 독립적으로 운용된다. 한국교회는 이런 경향이 강하다. 전도집회를 개최한다거나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간접 전도까지 선교로 본다면 선교비의 범위가 확대된다. 장애인 개인이나 단체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일, 기독교 언론을 지원하는 일, 사회 시설을 후원하는 일도 선교...

목사공부(68)

  • 2014-06-26
  • 조회 수 1576

앞에서 교회의 지출 항목이 크게 세 가지라고 말했다. 사례비, 교회 내 경비, 교회 밖 경비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각각의 항목 비율이 30%, 30%, 40%가 되면 적정하다. 이것도 교회의 재정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재정 규모가 큰 교회는 사례비 비율을 지키기가 어렵지 않지만 작은 교회는 안 된다. 6천만 원 재정 규모라면 2천만 원을 사례비로 지출한다는 말인데, 4인 가족이 이 돈으로 살기는 어렵다. 특히 목사 가정은 헌금도 다른 신자들에 비해서 본보기로 많이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가중될 수...

목사공부(67) [2]

  • 2014-06-25
  • 조회 수 1739

목사의 적정 사례비에 대한 연구 논문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는 자칫 음성화될 수 있으니 가능한 공론화하는 게 좋다. 한국교회는 약간 예민한 문제만 나오면 ‘은혜로 합시다.’ 하는 말로 넘어가려고 한다. 사례비가 지나치게 많아도 그럴만하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라거나, 최저생활비에 못 미쳐도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한다. 그게 다 은혜라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크게 틀린 게 아니지만 정의로운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내 생각에 사례비 문제는 은혜가 아니라 합리적인 상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

목사공부(66)

  • 2014-06-24
  • 조회 수 1441

헌금 행위 못지않게 중요한 게 헌금의 바른 사용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다. 헌금이 바르게 사용되면 헌금의 동기도 높아질 것이고, 잘못 사용되면 낮아질 것이다. 헌금의 사용 문제도 각 교회가 처한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적용하기는 힘들다. 교회당을 건축하는 교회는 모든 재정을 거기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특별한 경우는 접어놓고 일반적인 경상비 지출에 대해서만 생각을 나눠보자. 큰 틀에서 볼 때 교회 경비는 세 항목이다. 교역자 사례비, 교회 내 살림살이 경비, 교회 밖으로 나가는 경비가 그...

목사공부(65)

  • 2014-06-23
  • 조회 수 1406

총체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헌금 제도의 바람직한 대안은 무엇일까? 절대적인 대안은 없다. 대안은 말 그대로 대체되는 안이니 궁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헌금만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제도도 종말이 오기 전까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부단히 개혁의 길을 갈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대안을 나는 월정헌금이라고 생각한다. 월정헌금은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기존 교회에서도 실행되고 있는 헌금 방식이다. 다만 십일조가 주축이고 월정헌금은 보조다. 지금 내가 말하는 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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