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공부(7)

조회 수 2245 추천 수 0 2014.04.18 23:34:51

소명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똑 부러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할 만한 어떤 특별한 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불러주셨지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한 것 같다. 아주 오래 전이라서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실제로 나에게는 신학대학교에 갈 특별한 동기는 없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에 갈 수도 없었다. 서울 출생이지만 여차한 과정을 통해서 경주상고를 다녔다. 상고를 다닌 덕에 부기와 주산, 타자를 배워서 지금도 좀 도움이 된다. 당시 상고 학생들은 졸업하면 대다수 취업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교에 가겠다는 속셈으로 학교수업 외로 개인적으로 입시공부를 했다. 당시는 예비고사 제도가 있었다. 여기서 일단 전국 입시생들의 반이 걸러진다. 내 기억으로 당시 경주상고 졸업생 중에서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 예비고사에 합격했다. 등록금이 들어가지 않는 대학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서울에 올라와서 형님 댁에 신세를 지면서 재수를 했다. 하루종일 어둠침침한, 여름에는 바로 옆에 있는 변소에서 구더기가 문틈으로 기어들어오던 그 골방이 기억에 생생하다. 교회는 열심히 다녔다. 예비고사 성적이 뛰어난 게 아니니 이번에도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럴 바에야 교회에서 등록금을 지원해준다는 신학대학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담임 목사님께 상의를 드린 후 신학대학교 원서를 사왔다. 내가 다니던 교회가 성결교회여서 충정로에 있는 서울신학대학교를 다녔다. 상황이 이러니 소명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가 어색했다. 사실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돈이 없어서 신학대학에 갔다. 20대 젊은 시절 신학대학과 교회에서만 붙어살다가 목사가 되어 지금까지 왔다.

 

서울신학대학 입학이 1973년도이니, 벌써 사십 년이 넘었다. 이제야 소명이 무엇인지가 손에 잡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가? 소명은 한 순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의 삶 전체로 완성될 뿐이다. 한 순간의 소명의식을 짜릿하게 경험하는 것보다는 전체 삶의 과정에서 소명의식의 깊이로 시나브로 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더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경험한 소명이 옳은 이유는 그의 전체 삶이 그걸 보증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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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4.04.30 11:07:10

목사님, 저는 다시 읽어도 이 대목이 좋습니다.

마지막 단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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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4.30 23:43:07

유니스 님이 나보다 훨씬 오래 살 거니까

내가 죽을 때까지 소명이 충실한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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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14.04.30 22:20:28

시나브로..

목사님의 소명에 대한 인생반생기를 읽었군요.


이런 저런 이유로 인도에 선교사란 소명을 갖고 온지 21년째 되었습니다. 

제가 진정 인도 선교사가 아닌가

지난 삶도 있지만 앞으로 살아갈 삶이 이를 보증해 주겠지요.

언젠가 저도 '선교사 공부'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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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4.30 23:44:07

예, 기대하겠습니다.

뜨거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교사 공부'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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