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목사공부(27) [2]

  • 2014-05-09
  • 조회 수 1751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이 각인된 돌판을 받은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첫 번 돌판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서 모세가 성질을 내다가 던져서 깨뜨렸다. 그 후에 하나님은 다시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신다. 이 두 돌판 사건 사이에 특별한 이야기가 나온다. 금송아지에 마음을 쉽게 빼앗기는 이스라엘 민중을 이끌고 광야횡단과 가나안 입성을 시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좀더 확실한 보장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을 직접 ...

목사공부(26) [2]

  • 2014-05-08
  • 조회 수 2577

고후 4:6절은 다음과 같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 문장에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표현이다. 이걸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은 2천 년 전 유대 지역에 살았던 삼십대 초반의 유대인 한 남자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예수님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하나님의 영광이 느...

목사공부(25) [4]

  • 2014-05-07
  • 조회 수 1884

예배 목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예배와 설교다. 설교가 예배의 한 단위에 속하니까 예배와 설교를 나누지 말고 예배라고만 해도 된다. 그러나 성찬 중심의 미사를 드리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달리 설교 중심이라는 개신교의 특징을 근거로 해서 예배와 설교를 구분해서 봐도 좋다. 신학대학교 커리큘럼에도 예배와 설교는 구분된다. 예배학 전공 교수와 설교학 전공 교수도 구분된다. 일단 예배로부터 시작하자. 목사가 예배를 예배답게 인도하려면 예배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학대학 커리큘럼에 예...

목사공부(24)

  • 2014-05-06
  • 조회 수 1573

크게 보면 목사에게는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업무가 있다. 공적인 업무는 목회 전반에 걸친 일이고, 사적인 업무는 그 외의 일, 즉 목사로서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활동하는 영역이다.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이 겹치는 부분도 없진 않다. 기도생활이나 성경읽기 같은 경건생활, 또는 앞에서 강조한 책읽기 등은 목사로서만이 아니라 한 자연인으로서, 또는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 속한다. 사적인 업무에 대한 설명은 가능한 뒤로 미루겠다. 우리의 관심은 우선 목사가 교회에서 공적으로 감당해야 할 업무다. 목...

목사공부(23)

  • 2014-05-05
  • 조회 수 1704

이제 목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즉 목사의 업무가 무엇인지를 천천히 설명해야겠다. 앞에서 언급한 목사의 소명을 존재라고 한다면 목사의 업무는 행위다. 행위는 존재에 근거하며, 존재는 행위로 인식된다.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존재이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행위다. 나무가 좋아야 좋은 열매를 맺고, 열매가 좋아야만 좋은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존재와 행위는 불가분리 관계다. 이 문제는 칭의와 성화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칭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을...

목사공부(22) [4]

  • 2014-05-03
  • 조회 수 1995

정통 교회의 목사들도 이런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소명의식의 교정과 심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월과 더불어 목회의 자신감이 붙으면서 자신의 업무가 어디에서 연원하며 어떤 힘에 의해서 존속되는지를 까마득하게 잊는다. 소명의식이 소실점 너머로 사라진다. 늘 초심을 유지하는 목사들도 물론 있다. 모든 목사들을 매도하려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그렇다는 뜻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에 대한 단서를 한 가지만 말하자. 목사들에게는 모임이 많다. 공사(公私)에 걸쳐서 종류도 다양하...

목사공부(21) [2]

  • 2014-05-03
  • 조회 수 1691

목사의 소명 이야기로부터 수행으로서의 목회행위와 신학공부를 거쳐서 책읽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목사의 소명은 책읽기라는 말이 된다. 나는 이것이 결코 비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명을 아는 사람은 책을 읽게 된다. 거꾸로 책을 읽지 않으면서 소명 운운할 수는 없다. 책읽기가 소명의 차원에 속한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책과 소명의 관계를 짚어야한다. 이건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좋은 책을, 즉 소명에 의해서 집필된 책을 골라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책에는 소명의 본질이 담겨 있다....

목사공부(20) [26]

  • 2014-05-01
  • 조회 수 2593

사실 신학대학교에서의 공부는 최소한의 준비에 불과하다.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평생 공부할 준비를 한 것뿐이다. 양적으로도 그렇고 질적으로도 그렇다. 그런 준비를 마친 사람은 목사의 직을 끝낼 때까지 신학공부를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그가 하나님에게 관심이 있다면 저절로 그렇게 할 것이다. 이런 신학공부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한 가지의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최선은 신학책읽기다. 이것도 간단한 게 아니다. 일단 책을 고르는 게 어렵다. 책을 고...

목사공부(19) [2]

  • 2014-04-30
  • 조회 수 1928

모든 공부에 때가 있듯이 신학공부에도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따라잡기가 더 힘들다. <논어> 학이편에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그 뜻은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인데, 도올 선생이 ‘때에 맞추어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새롭게 번역했다고 한다. 배우고 익히는 데도 때가 있다는 뜻이니, 적합한 해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학공부의 가장 귀중한 때는 나이로 이십 대 초반이나 중반인 신학생 시절이다. 이 시절에 신학적인 토대가 ...

목사공부(18) [2]

  • 2014-04-29
  • 조회 수 2258

나는 지금도 기독교 근본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지만,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독교 세계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주일학교 학생들과 중고등부 학생들, 대학부와 청년들을 지도했고, 그리고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활동했다. 기독교를 잘 몰라도 교회 활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목회의 진정성만 확보되면 목회의 성과도 어느 정도는 보장된다. 더구나 운이 따르면 목회 성공도 가능하다. 목회 성공이 모두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목사의 능력만도 아니다. 운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니 목회에 ...

목사공부(17) [9]

  • 2014-04-28
  • 조회 수 2271

한국교회 목회 현실에서 목사가 신학공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쉽지 않다. 일단 교회 구성원들이 그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담임 목사가 서재에 앉아서 공부하는 걸 쉬는 걸로 안다. 그것보다는 기도, 심방, 전도를 열심히 해서 교회 성장에 견인차 노릇 해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신학은 신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하나의 이유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신학은 신앙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한국교회에 팽배하다. 신학대학교 예배에는 설교자들이 종종 ...

목사공부(16)

  • 2014-04-27
  • 조회 수 1895

목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는다. 질적으로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역할에서 특별하다. 특별하다는 말도 뛰어나다는 게 아니라 구별된다는 뜻이다. 그게 은사(카리스마)의 특징이다. 교회에 속한 모든 이들은 다 그런 카리스마가 있다. 목사에게 주어진 고유한 카리스마를 감당하려면 특별한 수행이 필요하다. 그것은 신학공부다. 목사공부는 곧 신학공부다. 여기서 약간의 오해를 풀어야겠다. 신학공부는 신학교 다닐 때 충분하게 했다는 오해가 그것이다.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신학생 시절에 신학...

목사공부(15) [2]

  • 2014-04-26
  • 조회 수 1952

목사의 수행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할까? 목사와 평신도의 경우가 각각 다를까? 목사나 평신도 모두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이라는 점에서는 수행도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목사만의 특별한 역할이 있기 때문에 목사의 수행을 구별해서 볼 수도 있다. 먼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는 수행 방법을 말하겠다. 말은 방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방법이 아니라 방향성이다. 나는 수도원 전통의 수행이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수도원 전통은 크게 봐서 기도와 노동이다. O...

목사공부(14) [1]

  • 2014-04-25
  • 조회 수 1842

목회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지는 목사라고 한다면 그는 목회를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 목사는 목회 행위에 존재론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목회의 기쁨을 얻는 사람이 주변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까닭이 있겠는가. 이게 과연 현실 목회에서 가능하겠는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교회 구조가 열악하면 아무리 뛰어난 영성의 목사라고 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목사 한 사람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 것은...

목사공부(13) [2]

  • 2014-04-24
  • 조회 수 1923

수행으로서의 목회라는 말은 목회를 구원 행위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런 쪽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목사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소명을 받았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처럼 큰 착각도 없다. 목사는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가 남을 구원할 수도 없다. 단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서 목회를 책임지고 있을 뿐이다. 목사의 이러한 역할이 별 게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역할은 크다. 크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구원에 천착해야 한다.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목사의 영성은 훼손되고 말...

목사공부(12) [1]

  • 2014-04-23
  • 조회 수 1838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신앙의 아이러니는 다음이다. 겉으로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실제로는 업적주의에 치우쳐 있다. 칭의가 아니라 자기의(義)에 기울어진 셈이다. 믿음조차도 업적으로 변질되었다. 신자들은 믿음이라는 사태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자신의 종교적, 또는 인간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예를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하나의 예만 들면 충분하다. 한국교회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을 보라. 모두 종교적 업적과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기도를...

목사공부(11) [4]

  • 2014-04-22
  • 조회 수 2250

수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서 찾는다는 사실에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에 충실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겉으로는 이게 말이 된다.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덕을 아무리 높이 쌓는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런 노력은 우리를 좌절하게 하거나 교만하게 만든다.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충분히 해명했고, 루터도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이라는 신학 개념에서 분명하게 언급한 칭의(稱義)에 대한 가르침이 그것이다. 실...

목사공부(10)

  • 2014-04-21
  • 조회 수 1920

수행으로서의 목회가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전에 한국교회 신자들이 수행(修行)이라는 말을 별로 탐탁스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먼저 짚어야겠다. 이를 확인하면 목사가 목회를 왜 수행의 차원으로 대하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교회 신자들은 수행을 불교나 유교와 같은 동양 종교의 특성으로 여긴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불교, 유교, 도교 등은 수행을 자기들 종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한다. 암자나 토굴에 들어앉아서 묵언 수행하는 일은 흔하다. 성철...

목사공부(9) [2]

  • 2014-04-20
  • 조회 수 2177

앞에서 소명은 한 순간의 어떤 특별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전체 삶에서 심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일상의 소명과 일치하는 이야기다. 삶 전체로서의 소명과 일상으로서의 소명을 연결해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한 사람의 전체 삶은 일상으로 구성되며, 일상은 전체 삶에서 완성된다. 일상이 있어야 전체 삶이 가능하고, 전체 삶 안에서 일상은 의미를 얻는다. 부분과 전체가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다. 이걸 아는 사람은 삶과 일상을 수행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을 억지로 떠맡거나 자...

목사공부(8) [2]

  • 2014-04-19
  • 조회 수 2144

소명은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다. 그걸 평생 인식하고 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거칠게 표현하면, 전자에 속한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잠들어 있는 사람이다. 마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소명 개념을 정확하게 가르쳤다. 그는 직업을 가리키는 독일어 베루프(Beruf)가 ‘소환하다’는 뜻의 동사 베루펜(berufen)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모든 직업을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름이라고 말했다. 그 이전까지는 성직만 소명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직은 거룩하고 일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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