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시(5)- 탈상

조회 수 3441 추천 수 0 2014.02.05 23:22:52

 

탈상

 

영정을 고여놓고

떡 고기 전 괴고

조율시이 홍동백서 진설하고

메 올리고 삽시(揷匙)하고 나서

땅 땅 땅 세 번 정저소리 울리고

유세차 축도 읽고

 

일곱 살짜리 상주

꾸벅 절하고 잔 올리고

미망의 여윈 아내 울먹

절하고 잔 올리고 큰동생 절하고

친구들 하나둘 절하고

막내여동생도 잔 올리고

밖은 어느덧 어둡고

안개비 깔리고

 

그대 육신 이제 흙 속에서

많이 상했으리

잘 가라 그대

이승의 마지막 밥이니

배불리 들고

술 취해 흔들흔들

잘 가라 그대

 

 

* 감상- 탈상(脫喪)은 보통 백일이다. 가족에게 상보다 더한 슬픔은 없겠으나 그런 슬픔에 매달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백일로 끝내라는 뜻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망자를 어찌 잊겠는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탈상 의식을 치루고 있는 가족, 친구들도 결국 망자의 길을 곧 따라가야 한다. 어디로?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망자를 향해서 밥이나 배불리 들고 술 취해 흔들흔들 가라고, 그래도 ‘잘’ 가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자신이 가야 할 바로 그 자기의 망자에게 한 말이리라. 우리 기독교인들이야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니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가라고 말할 수 있긴 하다. 여기서 어떤 하늘나라인지, 어떤 환희인지를 잘 분간해야 할 것이다. 흔들흔들 잘 가라는 말과 한편으로는 다르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슷하다.


[레벨:11]질그릇

2014.02.06 10:04:45

조문객들도 곧 고인의 운명으로 떨어지는 것^^

우리 삶은 바로 그 순간을 준비하는 과정인 것을

젊음의 날에는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몸소 느낄 때 쯤에는 막연하게나마 느끼겠지요^*^

김사인의 '탈상'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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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2.06 11:48:39

우리의 지난 삶을 뒤돌아보는 건

마치 오래 되어 빛 바랜 사진을 보는 거와 비슷합니다.

언젠가는 그 모든 것도 사리지겠지요.

그 순간이 죽음일 텐데요.

잘 가라, 잘 있어라,

뒤따라 가마, 그래 먼저 갈 테니 좀 뒤에 와라...

뭐 이런 대화로 정리될 수 있겠지요.

친구와 밖에서 놀다가

나 먼저 집에 들어갈게, 하고 말하는 아이들처럼

저에게도 올 그 순간을 그런 평상심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런 영적 경지가 억지로 되지는 않겠지요.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일치를 실제로 경험하는 게

거기에 이르는 최선이니 

남아있는 삶을 거기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원당에는 눈이 제법 내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려는지... 

 

[레벨:6]geunfeel

2014.02.07 00:53:44

목사님의 시를 통한 묵상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시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고 또한 묵상의 포인트와 안목에 대해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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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2.07 09:25:25

geunfeel 님, 시가 마음에 드셨나요?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와 비슷하다는 걸

제가 평소에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시인은 그가 겉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든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삶의 내면을 관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몇 년 전 시편 강해를 하면서 

그 시인들의 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눈이 오다 그치다 하는군요.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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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14.05.13 22:32:15

망자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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