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헤셸(25)

  • 2014-03-21
  • 조회 수 1589

기도하기 위해 설교하라.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도록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설교하라. 참된 설교의 시금석은 설교가 기도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165쪽) 헤셸의 글은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기도하기 위해 설교하라.’고 외친다. 설교의 목표는 신자들로 하여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로서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근거로서의 기도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야 기도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누군가가 궁금해져야 기도의 ...

헤셸(24) [2]

  • 2014-03-20
  • 조회 수 1850

유대교에서는 기도의 목적이 감정적 결핍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결핍이 아니라 존재론적 필연성이며, 사람의 본질 자체를 구성하는 행동이다. 전혀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완전히 사람이 아니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이 아니라 존재론이 기도를 설명해준다. (162쪽) 헤셸의 위 문장을 A4 용지 10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일단 글을 쓸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다. 재미있으라고 한 말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기도의 ‘존재론적 필연성’이 무슨 뜻인가? 기분이 찜찜할 때 교회당에 가서 큰 소리로...

헤셸(23)

  • 2014-03-19
  • 조회 수 1794

카바나(내면의 헌신) 없는 기도는 전혀 기도가 아니다. 카바나 없이 기도한 사람은 한 번 더 기도해야 한다. 그의 생각이 오락가락하거나 다른 일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정신적 평정을 회복할 때까지 기도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사람이 여행에서 돌아왔거나 지쳐 있거나 고민에 빠져 있을 때는 그의 정신이 평정을 얻기까지 기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현자들은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은 사흘을 기다려 안정을 얻고 정신의 평정을 찾은 다음에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146쪽) 위 글도 헤셸이 유대 랍비(?) 중 한 ...

헤셸(22)

  • 2014-03-18
  • 조회 수 1577

왜 현자들은 기도 중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가?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간구에 대해 기꺼이 응답하려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신앙이 있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가장 높은 영역, 그 신비의 영역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본질이다. 우리의 신앙은 그 신비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중략)... 너무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은 가장 높은 영역, 신비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단지 명백하고 분명한 것들만 감지할 뿐이다. 그...

헤셸(21)

  • 2014-03-17
  • 조회 수 1532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그분 가까이 있다는 신비한 경험이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비록 그분의 현존조차 베일에 가려지고 우리 감정 범위 너머에 있지만 그분이 우리들 가까이 계신다는 우리의 확실성이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확신이다. 만일 그런 확신이 없으면, 만일 하나님의 현존이 하나의 신화라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망상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실 수 없다면 그분께 말하는 우리는 정신병자다. (140쪽) 위 글에서 헤셸은 감정과 확신을 대립적...

헤셸(20)

  • 2014-03-15
  • 조회 수 1785

모든 기도의 필수조건은 어떤 이해나 인식, 정신의 분명한 태도다. 기도는 신학적 공백 상태에서 살 수 없다. 기도는 통찰력으로부터 나온다. 기도는 마치 지적인 실패의 결과처럼, 마치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번창하는 것처럼 간주되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 수 있는 영적 지혜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혹은 적어도 우리는 사람이 만든 신들의 그럴듯한 영광을 예배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하며,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거짓 도그마들에 무조건 집착하는 것에...

헤셸(19) [2]

  • 2014-03-14
  • 조회 수 2211

이 문제는 어떻게 예배 출석 인원을 늘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었다. 다양한 주장들이 있었다. 예컨대 예배 순서를 현대화해서 좀더 짧고 좋은 기도로 바꾸자, 탁월한 연사들이나 라디오 해설자와 칼럼니스트를 초대하여 포럼을 열고 패널 토의와 심포지엄을 개최하자, 연례적으로 ‘유대인 문화의 안식일’이나 ‘유대인 퇴역군인들의 안식일’, 또는 ‘종교간 대화의 안식일’ 등을 개최하자, 스테인글라스를 설치하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이들을 위해 그 좌석에 금색, 은색, 혹은 청식 카드를 붙이자 등등이다. 이런 제안들의 의도는 ...

헤셸(18) [2]

  • 2014-03-13
  • 조회 수 1840

사람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곳에는 모든 것이 있다. 즉 사람들의 몸, 긴 의자,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 없는 것 하나는 영혼이다. 우리 모두는 마치 영적인 부재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기도에서는 말이 영혼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드리는 곳에서는 평상시에 민감하며 생기가 넘치며 남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이들이 아무런 열의도 없이 무관심하게 나태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죽은 자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는다(시 115:17).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125쪽) 헤셸은 사...

헤셸(17) [2]

  • 2014-03-12
  • 조회 수 1776

혼자서 기도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전통은 우리가 공동체와 더불어 공동체의 일부로서 기도할 것을 가르친다. 개인적인 예배보다는 공중예배가 좋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양극단에 직면한다. 개인적인 예배와 공중예배는 영원히 결합되어 있어서 그 둘은 서로의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 그 둘의 영적인 공생을 무시하는 것은 그 둘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우리의 기도하는 능력이 공동체와 전통 덕택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기도하는 방법을 배운 것은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며, 우리...

헤셸(16) [2]

  • 2014-03-11
  • 조회 수 1804

사람이 자신의 깊은 슬픔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사람은 운다.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은 침묵한다.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어떻게 노래로 바꾸는가를 안다. (Seah Sarfe Kodesh, vol. 2, p.92, 318), (114쪽) 위 문장은 헤셸의 말이 아니라 그가 인용한 거다. 출처는 위 괄호 안의 그것이다. 헤셸은 저 말을 인용하면서 이르기를 ‘참다운 기도는 노래다.’ 하고 말했다. 그의 진술은 옳다. 찬송보다 더 귀한 기도는 없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찬송가를 부를 ...

헤셸(15) [4]

  • 2014-03-10
  • 조회 수 2002

영원의 빛 가운데서는 우리의 최고 목표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유치하게 보인다. 우리가 우상처럼 받들게 되는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 속에 무슨 표현할 가치 있는 것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는가? 그분께서 많은 신경을 쓰시는 자기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한 명상에, 즉 자기가 아닌 것에 대한 명상에 집중할 때 자기는 증대된다. 우리의 최고 목표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자기보다 위대한 것을 사모하는 일이다. (96쪽) 위 헤셸의 글이 과격해보이나 정곡을 찌르고 있다. 비록 ...

헤셸(14) [2]

  • 2014-03-08
  • 조회 수 2007

기도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도달하는 말, 그 끈의 끝자락을 붙잡는다는 뜻이다. 그 힘이 클수록 그 말 속에서 더욱 높이 올라간다. 그러나 기도드리는 것은 또한 말의 반향이 낚싯줄 끝에 달린 추처럼 영혼의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처럼 깊이 떨어질 마음의 준비가 순수할수록 그 말은 더욱 깊이 파고든다. (94) 위 표현은 상당히 관념적이다. 저걸 다시 풀어서 설명하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냥 이해되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나도 내가 나름 이해하는 대로 말할 뿐이다. ‘낚싯줄 끝에 달린 추’...

헤셸(13)

  • 2014-03-07
  • 조회 수 6253

진정한 기도는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게 되는 사건이다. 사람은 무슨 일이 다가오는지를 거의 파악하지 못한다. 그 시작은 언어에 있지만 그 마지막은 모든 언어 너머에 있다. 기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사람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다해 말을 발설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세상 전체를 들어 올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아무런 의심 없이 단추를 눌렀는데 거대한 바퀴가 놀랍고도 무섭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과 같다. (93쪽) ...

헤셸(12) [4]

  • 2014-03-06
  • 조회 수 2209

하나님을 가리키는 개념들은 사람의 의식(意識) 범위를 넘어선다. 그분을 말하는 언어들은 영혼의 능력을 넘어서며, 영혼의 능력을 넘고 또 넘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강한 헌신을 요구한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위험한 일로서 의식 자체를 넘어서는 힘이다. 그분을 말하는 것은 거의 자신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행동인지를 안다. 왜냐하면 기도의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가 정신보다 위대하...

헤셸(11)

  • 2014-03-05
  • 조회 수 1916

위기 가운데, 절망의 순간에 한 마디의 기도는 조만간 뒤집혀질 것처럼 질주하는 버스 속에서 우리가 붙잡고 있는 가죽 손잡이와 같다. (90쪽) 헤셸은 글을 진중하고도 동시에 맛깔스럽게 쓴다. 촌철살인의 느낌마저 불러온다. 기도 한 마디는 우리를 구원할 ‘가죽 손잡이’와 같다고 한다. 이걸 기도 만능주의로 생각하면 오해다. 삶의 모든 부분들이 위기에 처한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이 이루어지면 파멸에 이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만이 생명의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기도를 거꾸로 생각하는 경우...

헤셸(10) [4]

  • 2014-03-04
  • 조회 수 2226

우리가 발설한 말, 맹세나 서약이나 약속은 우리에게 의무감을 느끼게 한다. 서약을 하면서, 혹은 명예로운 말을 하면서, 맹세를 하면서, 말로 동의를 하면서, 사람은 말이 의지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며, 말은 그 말을 한 사람과는 별도로 그와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발설한 말은 그 자체로 존재함으로써 그 말을 한 사람에게는 실체가 된다. 그 말의 의미에 관해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그는 그 말의 힘에 생생하게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객관성 가운데 말은 기도하는 사람 앞에 있다. 기...

헤셸(9)

  • 2014-03-03
  • 조회 수 1802

궁극적으로 기도의 목표는 말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번역하는 것이다. 고대의 어휘를 현대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기도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기도는 예배의 언어 속에 담긴 영을 본받는 것이다. (79쪽) 기도의 목표는 말을 번역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번역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기도의 중심이 말에 있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뜻이다. 기도 용어를 세련되게 사용하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일종의 기도‘꾼’들이 ...

헤셸(8) [2]

  • 2014-03-01
  • 조회 수 2100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시도록 그분의 뜻이 우리의 문제들 속에 나타나시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의지 속에 그분을 향한 창문을 여는 것이며, 그분이 우리 영혼의 주님이 되시도록 만드는 노력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그분의 관심에 복종시키며, 궁극적으로 옳은 것과 연합하도록 추구한다. 우리가 거룩하신 분께 다가가는 것은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새벽과 죽음의 문 사이에서 우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데, 그 속에서 진리가 속삭이는 소리가 나온다. 그 소...

헤셸(7) [2]

  • 2014-02-28
  • 조회 수 2309

헤셸(7) 실제적인 결과를 얻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에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힘이 아니다. 심지어 탄원할 때조차도 도움을 받을 생각이나 보호받을 생각이 기도의 내면적 행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결과는 바라는 마음은 기도하도록 이끄는 동기는 될 수 있지만 기도를 드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의 의식을 채우는 내용이 되지는 못한다. 연주자가 약속된 보수를 받기 위해 연주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손가락 끝으로 빠르게 은밀한 소리들을 만들어내는 열정적인 순간에는 연주가 끝난 다...

헤셸(6)

  • 2014-02-27
  • 조회 수 1934

많은 심리학자들에게 기도는 단지 하나의 기능일 따름이다. 우리 삶의 상황들이 만들어낸 그림자로서, 우리의 다양한 필요와 욕구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그림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드리게 되는 여러 계기들을 파악하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을 만든 계기를 파악하면 그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쓴 것이 빚을 갚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명성을 얻고 친구들을 놀래게 만들기 위해서였는지를 확인한다고 해서, 그 작품의 본래적...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