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시(3)- 유필(遺筆)

조회 수 3046 추천 수 0 2014.02.03 22:45:55

 

유필(遺筆)

                                   김사인 

 

 

남겨진 글씨들이 고아처럼 쓸쓸하다

 

못 박인 중지마디로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놓고

 

어느 우주로 스스로를 흩었단 말인가

 

겨울밤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

 

 

* 감상- 유필은 유서다. 글을 쓴 이는 이미 우주로 흩어져 없으니, 유필이 고아란다. 죽은 시체는 지구에 머물지 우주로 흩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구 안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지구 자체가 우주의 일부이고, 지구도 결국 언젠가 죽어 없어질 테니 모든 죽음은 우주로 흩어지는 거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와 같단다. 그것도 겨울밤에 듣는 거란다. 나도 어릴 때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를 듣기는 했다. 직접 두레박을 우물 깊이 던져보기도 했다. 깊은 우물 속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두레박을 던지고 한참 시간이 지나 철썩 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소리의 낯섦이 바로 유필과 같다는 말인가? 우물 깊이 떨어지는 게 죽음이라는 말인가? 노무현의 유서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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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14.02.04 08:49:14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라서.. 시 하나 옮겨봅니다.

오늘 이 곳에는 눈이 아주 많이 왔어요.


20140203-IMG_3018.jpg


네거리에서/ 김사인

 

그럴까

그래 그럴지도 몰라

손 뻗쳐도 뻗쳐도

와닿는 것은 허전한 바람, 한 줌 바람

그래도 팔 벌리고 애끓어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살 닳는 안타까움인지도 몰라

 

몰라 아무것도 아닌지도

돌아가 어둠 속

혼자 더듬어 마시는 찬물 한 모금인지도 몰라

깨지 못하는, 그러나 깰 수밖에 없는 한 자리 허망한 꿈인지도 몰라

무심히 떨어지는 갈잎 하나인지도 몰라

 

그러나 또 무엇일까

고개 돌려도 솟구쳐오르는 울음 같은 이것

끝내 몸부림으로 나를 달려가게 하는 이것

약속도 무엇도 아닌 허망한 기약에 기대어

칼바람 속에 나를 서게 하는 이것

무엇일까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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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2.04 11:13:57

김사인 시인의 시를 좋아하시는군요.

나는 이번에 그분의 시집을 처음으로 읽었는데,

삶에 대한 같은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분은 기독교인일까요?

명시적인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칼 라너가 말하듯이 '익명의 기독교인'은 분명해보입니다.

올려주신 시, 잘 읽었습니다.

'칼바람 속에 나를 서게 하는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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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14.05.13 22:25:31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갑자기 제 자신이 작아지고 초라해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냥 그때는 한 없이 별만 바라보다 잠이 들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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