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5)

조회 수 2069 추천 수 0 2013.09.06 23:54:41

9월6일(금)

 

손(5)

 

아래의 글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하나님 이야기> 15-17쪽에 나오는 하나님의 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읽기에 따라서 조금씩 달리 전달되겠지만, 하나님의 손이라는 발상이 재미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고 보니 분명히 뭔지 활기 있고 새하얀 것이 한 줄기 아련한 광채처럼 스칸디나비아 지방을 춤추듯이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방은 이미 그 즈음부터 지형이 무척 둥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이 나서, 성 니콜라우스에게 ‘내가 창조한 사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네 손으로 달리 만들어 보게.’하고 꾸짖었습니다. 성 니콜라우스가 할 수 없이 하늘을 나서면서 문을 꽝 닫는 순간, 별 한 떨기가 공교롭게도 그 테리아(개의 한 종, 주) 머리에 맞았습니다. 더 할 나위 없는 불행한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자기 탓이라는 걸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는 땅에서 눈을 떼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익숙해진 양손에 모든 것을 맡겨 하던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과연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어 참을 수 없는 마음을 억누르고 계속 아득한 땅 위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감시하게 된 뒤로 지상에서는 나뭇잎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이렇듯 차례로 언짢은 일이 계속된 뒤였고 해서, 애써 자그마한 즐거움이나마 맛보려고 생각했을 겁니다. 양손을 향하여 인간이 완성되면 즉시 활동을 시키지 말고 우선 자신에게 생김새를 보여 달라고 명령해 두었습니다. 그런지라 하나님은 여러 차례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처럼 ‘다 됐느냐’, ‘다 됐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대답 대신 손이 흙을 만지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갑자기 검고 괴이한 물체가 공간을 누비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방향은 하나님 근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자기 손을 불렀습니다. 두 손 다 진흙투성인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사람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큰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오른손이 왼손더러 ‘네가 놓쳤지!’ 했습니다.

‘그런 소리 마.’ 하고 왼손은 성이 나서 크게 떠들었습니다. ‘네가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하려고 하지 않았냐 말이야. 나는 조금도 얼씬하지 못하게 해 놓고선.’

‘네가 사람을 힘껏 붙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야.’ 하며 오른손을 치켜들고 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 생각을 돌린 모양입니다. 양손은 서로 뒤질세라 앞질러 아뢰었습니다.

‘모든 책임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에게 참을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오로지 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알 바가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에게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양손이 앞을 가려 땅 위가 안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양 손을 뿌리치고 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너희가 좋을 대로 멋대로 해라.’

 

그 뒤로 양손은 자기끼리 일해 보려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만들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완성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렁저렁하는 사이에 양손은 일에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온종일 꿇어앉아 참회를 한다든지 하면서 지내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편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손에 대해 성을 낸 뒤, 일을 멈추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줄곧 제7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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