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6일(금)
감자 깎으며...
어제 감자 껍질을 칼로 깎았다.
원래는 안전하게 감자 껍질 깎는 칼로 깎았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반 칼로 깎았다.
그러다보니 껍질이 좀 굵게 깎였다.
감자 살이 아까웠다.
가장 친환경적으로 깎으려면
감자를 물에 잠깐 불렸다가 수저로 긁어내는 거다.
그러면 감자 살이 전혀 묻어나지 않은 채로
겉껍질만 벗겨낼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나 누님들이 그렇게 하는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유럽 사람들의 주식은 빵과 감자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도 잘 먹긴 하지만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건 주로 빵과 감자다.
나는 어제 감자를 깎으면서 갑자기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옛날 어느 가난한 집에서
공교롭게 감자 흉년이 든 어느 해의 저녁 때
엄마가 마지막 남은 감자 다섯 알을 쪄내고 있었다.
그게 그 집에 남아 있는 마지막 먹을거리였다.
감자 껍질을 깎는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우리의 경우로 바꾼다면
보릿고개 시절에 마지막 남은 보리 한 사발로
깡보리밥을 짓던 엄마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대책이 없다.
산으로 나무뿌리를 캐러가든지
남의 집에 동냥을 얻으러 가야 한다.
그걸 생각하니 어제 깎은 감자가 너무 귀해보였다.
언젠가 우리 앞에는 마지막 감자가,
또는 마지막 밥 한 그릇이 놓일 것이다.
멀리 보면 지구가 더 이상 먹을거리를 생산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며,
가깝게 보면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마지막 감자로 연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존적으로 보면 부자건 가난한 자건
죽음 목전에서는 더 이상 먹지 못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이 그렇게 멀지 않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은 귀하다.
흔해 보는 것들이 더 귀하다.
나는 어제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를 만지듯이
감자를 하나님의 몸과 피로 느끼면서 만졌다.
여전히 칼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금방 캔 감자는 옹기에 넣고 물을 부은 뒤 밟아주면 저절로 껍질이 벗겨졌지요.
삶은 감자를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밀가루에 버무려 채반에 찌기도 했습니다.
그 구수한 냄새가 생생한데 벌써....
그렇군요. 목사님.
마지막 감자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군요.
목사님 덕택에 추억을 먹으며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채
오늘 점심은 옛날 엄마가 하시던 대로 감자 썰어 밀가루 버무려 쪄서 먹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