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19)- 자발적 가난

조회 수 2747 추천 수 0 2013.07.14 23:30:12

 

 

부활의 빛에서 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사실이 옳다면 지금 기독교인들은 모두 가난한 자로 살아야 하나? 실제로 청빈을 기독교 영성으로 믿고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수도사들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를 추구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도사 집단은 ‘프란체스코’ 수도회다. 이 수도회를 설립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아시시의 부유한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20세에 회심하고 모든 유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준 뒤 청빈과 이웃 사랑에 헌신했다.


다른 수도회도 비슷하지만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은 청빈을 기본으로 한다. 심지어 탁발(托鉢)까지 한다. 일종의 구걸행각이다. 일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 세끼 밥을 먹는 것과 몸을 가릴 수 있는 한 두 벌의 옷만 있으면 만족한다. 법정은 <무소유>로 유명했다. 수도사들의 삶은 노동과 기도다. 노동은 몸의 훈련이고 기도는 영의 훈련이다. 이들은 생존 자체에 집중한다. 생존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다른 동물들은 다 생존에 집중한다. 인간처럼 분에 넘치는 소유를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은 서품을 받을 때 세 가지를 서약을 한다. 하나는 순명, 둘째는 동정, 셋째는 청빈이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급 사제의 명령에 순종한다. 개신교회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게 성직자주의의 반민주주의 질서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순명은 훨씬 큰 저항을 토대로 한다. 여기에는 전체 교회가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깔려 있다. 동정 문제는 쉽지 않다. 모든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발동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사제들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범죄에 준하는 사건들이 거기에도 상당하게 일어날 것이다. 청빈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들의 삶을 가톨릭교회라는 체제가 받쳐준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개별 목사가 자신의 가정과 정년 이후를 책임져야 하는 개신교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청부론을 펼친 김동호 목사와 논쟁을 벌였던 김영봉 목사는 자발적 가난을 주창했다. 그의 주장이 청부론에 대한 반론으로서는 타당하겠으나 실제 평신도의 삶에서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개별 신자들의 영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지금 절정에 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초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난하면 삶이 총체적으로 불편하다. 최소한의 생존마저도 위협받는다. 출가한 수도자들이 아니라면 그것을 개인들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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