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21

조회 수 720 추천 수 0 2023.01.21 07:11:2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1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라는 문장은 문학적인 성격이 강한 겁니다. 묵시 문학적인 성격이 그것입니다. 요한이 당시 그리스도교 상황에 대해서 기도하는 중에 깨달은 바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이런 문장을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서 요한에게 일일이 불러서 적게 하신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그런 분이 이 세상에 사는 요한과 직접 소통할 수는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 군목으로 활동할 때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문선명 씨가 하늘에 올라가서 예수를 직접 만나서 대화했다고 말하더군요.

요한은 두아디라 지역에 만연했던 세속적인 성 윤리 행태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았겠지요. 두아디라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도 그런 세속적인 성 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은 이전에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몇 번 경고했겠지요. 그래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볼 때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 건데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저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상황도 아주 복잡합니다. 일단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돌아서는 게 최선이겠지요.


profile

[레벨:41]새하늘

2023.01.21 12:37:07

공동번역 [2:21 나는 그 여자에게 뉘우칠 시간을 주었지만 그 여자는 자기의 음행을 뉘우치려고 하지 않는다.]


갑자기 작년 대선때 일부(?)  종교 단체 수장들의 지지 선언이 생각 나네요.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았는데.

기독교가 한 순간에 무속 종교로 떨어져 화가 났습니다.

최소한의 중립적인  자세도 못취한 그들의 죄는 어디까지 갈까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01.21 19:25:20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분들이 오히려 정치적 색깔을 보이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것 같습니다.

선지자 영성이 없다면 차라리 입 다물고, 

골방에서 기도나 하는 게 나을 텐데요.

profile

[레벨:29]최용우

2023.01.22 07:04:43

'음행'

영국의 문화비평가가 k-드라마를 분석한 기사를 보니

"섹스 없이도 성을 이렇게 가슴 설레게 표현할수 있는 드라마" 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유럽의 드라마는 성적인 표현에 거침이 없지만 아직까지 한국 드라마는 (아마도 무슨 심의 규제가 있겠지요)

성적인 표현을 엄청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성에 개방적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런 표현이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있던 '성적 순결성, 거룩성..'

그런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한국 드라마, 영화 작가들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유교의 영향으로 비교적 보수적인 성적 지향이 자꾸 유럽처럼 바뀌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01.22 20:07:42

'섹스 없이도 성을 ... 드라마'라는 해석에 들어맞는 작품이 무엇인지

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제가 워낙 k-드라마를 안 보기 때문이겠지요.

박경리의 <토지>에서는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은 있고요.

이런 느낌도 아주 정확한 거는 아니고, 그럴 수 있겠다 하는 정도에요.

어떻게 하면 에로티시즘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는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우리 모두에게 숙제입니다.

최용우 님은 아는 것도 많네요.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계 3:17 [6]

  • 2023-02-20
  • 조회 수 70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6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7절에서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집니다. 그들은 부자라서(I am rich.)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 지역은 정치, 상업, 의학 등등의 수준이 고급스러웠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개인 소득 수준이 높고, 복지가 잘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숙제는 인생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신...

계 3:16 [6]

  • 2023-02-18
  • 조회 수 85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5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말 성경이 정말 강렬하게 번역했군요. 원어로 보면 입에서 뱉어낸다는 뜻입니다. 저런 표현은 당시 관용어로 들립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계속해서 미지근하면 앞으로는 상대하지 않겠다, 말도 꺼내지 않겠다, 또는 아예 신경을 끊겠다,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뜻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러쿵저러쿵 책망하면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거지만 그런 언급...

계 3:15 [4]

  • 2023-02-17
  • 조회 수 73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4 3:15 내가 네 행위를 나오니 네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절은 정말 유명한 구절입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하다는 뜻이겠지요.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신앙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라는 거고요. 사데교회를 향한 충고와 비슷합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골 4:2절에 나오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

계 3:14 [7]

  • 2023-02-16
  • 조회 수 68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3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거론된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도 칭찬은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습니다. 일곱 교회에 말씀을 주시는 이에 관한 묘사가 각각 다릅니다. 1) 에베소 교회에서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나오고 2) 서머나 교회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

계 3:13 [4]

  • 2023-02-15
  • 조회 수 60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2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충 그러려니 하면 별 어려움이 없긴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성령은 무엇, 또는 누구인지, 교회는 무엇인지,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 보겠습니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진리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 진리는 독단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입니다. 자기 혼...

계 3:12 [4]

  • 2023-02-14
  • 조회 수 67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1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문장이 거칠게 번역된 구절입니다.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계 3:11 [4]

  • 2023-02-13
  • 조회 수 62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0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니 … ”라는 문장은 알쏭달쏭합니다. 문장만 본다면 예수께서 머지않아 재림하신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그걸 암시하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주로 요한복음인데,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당시 일부 교인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가져오면 그것으로 모든 교우가 함께 생활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재림한다고 믿었기...

계 3:10 [5]

  • 2023-02-11
  • 조회 수 80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은 지금을 ‘시험의 때’로 규정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멸하는가, 아니면 버텨내서 살아남는가, 하는 갈림길입니다. 사실은 당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마틴 루터...

계 3:9 [4]

  • 2023-02-10
  • 조회 수 64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8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탄의 회당’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게 들리긴 합니다. 지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는 요한은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어지느냐 아니면 크게 위축되거나 사라지느냐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안으로는 유대교...

계 3:8 [4]

  • 2023-02-09
  • 조회 수 70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7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이 있다네요. 천국 문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은 물론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여기 ‘소리’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계 3:7 [6]

  • 2023-02-08
  • 조회 수 66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6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이제 여섯 번째로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편지하는 명령을 듣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겁니다. 그 사자는 헬라어 ‘ἀγγέλος’의 번역입니다. 앙겔로스는 angel(천사), messenger(메신저)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직접 해당 교회에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서 ...

계 3:6 [4]

  • 2023-02-07
  • 조회 수 63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5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라는 표현은 고대 유대인들의 관용어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표현을 자주 쓰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막 4:9, 23) 들을 귀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연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그렇다면 입이 있어도 말...

계 3:5 [4]

  • 2023-02-06
  • 조회 수 66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4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를 앞에서 시인하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생명책’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바울은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라고 썼고, 계 20:12절에는 “또 다른 책이 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니”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생명책은 그야말로 상징이고 은유입니다. 이를 마치 족보처럼 실제의 ...

계 3:4 [4]

  • 2023-02-04
  • 조회 수 76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3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처음부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질책을 당한 사데 교회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아무리 세상이 세속화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소수의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가 본질을 잃어도 여전히 본질에 천착하는 적은 수의 교회는 있는 법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계 3:3 [4]

  • 2023-02-03
  • 조회 수 68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2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둑 같이’ 이른다는 표현은 공생애 중에 예수께서 가르치신 비유에도 나옵니다. 요한은 교회에 전승되던 그 비유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 구절을 기록했을 겁니다. 마 24:43절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바울도 비슷...

계 3:2 [4]

  • 2023-02-02
  • 조회 수 68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1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꿰뚫는 말씀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의 행위가 어떻게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계속해서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런 행위의 완전함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 아닌가요? 믿음...

계 3:1 [4]

  • 2023-02-01
  • 조회 수 80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0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다섯 번째로 거론되는 사데 교회는 처음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보통 질책이 아닙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뼈아픈 질책입니다. 질책을 받는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책마저 없는 게 더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사데 교회가 이 질책을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그래서 새로워졌는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

계 2:29 [4]

  • 2023-01-31
  • 조회 수 66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9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성령은 ‘Πνεῦμα’(프뉴마)의 번역입니다. 영은 몸(소마, 또는 사르크스)이 아니니 몸으로 사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공기나 숨이 말한다고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요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시인들은 나무의 노랫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습니다. 겨울나무에서도 어떤 말인가를 듣습니...

계 2:28 [4]

  • 2023-01-30
  • 조회 수 63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8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새벽일을 나가는 분들은 새벽 별을 가끔 보셨을 겁니다. 금성이라고 합니다. 동쪽에 작은 동산을 둔 마을에 사는 저도 종종 새벽 별을 간혹 봅니다. 밤에는 목성이 밝게 빛나고 새벽에는 금성이 또 그렇게 빛납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보통 별들은 힘을 잃지만, 금성은 여전히 고고하게 빛을 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도 금성을 특별한 별로 여겼고, 성경에도 종종 언급됩니다. 고대인들은 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별...

계 2:27 [4]

  • 2023-01-28
  • 조회 수 73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7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인자)이신 예수께서는 쇠막대기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권세’를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분이십니다. 권세는 헬라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의 번역입니다. 이런 단어를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폭력적인 능력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강한 비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입니다. 비바람은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사람의 외투를 벗기지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