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24

조회 수 714 추천 수 0 2023.01.25 07:44:4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4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한의 말인가요, ‘하나님의 아들’(2:18)의 말인가요? 계시록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요한이니까 요한의 말이라고 봐야겠으나, 그가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하는 거니까 하나님 아들의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성경은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글을 기록한 저자가 있고, 저자가 말씀을 받은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고도 하고, 예수께서 주셨다고도 합니다. 이런 표현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아무도 말씀을 직접 받지는 못합니다. 직접 들었다거나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일단 사이비인지 의심해야 합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듯이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예수 공생애 동안 함께했던 이들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계시는 간접적입니다. 종말론적입니다. 이를 총체적으로 말하면 역사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역사로서의 계시(Offenbarung als Geschichte)를 주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요한은 사탄의 깊은 것을 말했습니다. 요한은 20절에서 언급한 이세벨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정말 위험한 말이기도 하고, 너무 깊은 말이라서 아찔한 느낌이 드는 말입니다. 사탄이라는 말 자체가 뭔가 어둠침침하게 들립니다. 머리에 뿔이 달리고,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음흉스럽게 보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우두머리처럼 보입니다. 천사가 메타포이듯이 사탄도 메타포입니다. 사탄이라는 단어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악한 세력을 가리키는 겁니다. 공생애를 시작할 때 예수는 사탄에게서 시험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이렇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9)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4:10)

사탄의 깊은 것은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훨씬 초월하여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차원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승자독식, 성장주의, 자본 지상주의, 기후위기를 불러오는 소비중심주의가 사탄의 깊은 것은 아닐는지요. 두아디라 교회 교우 중에서는 사탄의 깊은 것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물든 이들도 있었습니다. <개역개정>이 애매해서 이 구절을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인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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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01.26 08:17:10

'사단의 깊은 것'

그노시스주의자는  그것을 해 보아야 그것이 나쁜것인지 좋은것인지 알 수 있다며 

우상 숭배나 음행에 참가하기를 기탄 없이 하는 사람들이었죠.

마치 오늘날 '구원파'들이 구원을 받았으니 또 죄를 지어도 그것도 이미 용서받았다면서 

죄짓는 것에 기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단의 깊은 것'을 아예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을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배우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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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1.26 09:56:30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배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멘트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하루도 그쪽을 향해서 정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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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23.01.26 11:36:49

공동번역 [2:24 그러나 티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여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비밀을 배우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으니 ]


거짓 선지자에게 선동되어 허우적 거리는 것은 누구의 잘못 일까요?

온전하지 못한 자신에게 물어야 하나요?

늘 끊임없이 스스로를 책망하고, 세상을 넓게 보는 통찰력을 위해 노력 해야 하나요?

노력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하지만....

계속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신학수다방에서 이런 대화가 있었습니다.

전해주 신부님 처가 조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려거든 죽을 각오로 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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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17 [6]

  •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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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6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7절에서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집니다. 그들은 부자라서(I am rich.)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 지역은 정치, 상업, 의학 등등의 수준이 고급스러웠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개인 소득 수준이 높고, 복지가 잘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숙제는 인생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신...

계 3:16 [6]

  •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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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5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말 성경이 정말 강렬하게 번역했군요. 원어로 보면 입에서 뱉어낸다는 뜻입니다. 저런 표현은 당시 관용어로 들립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계속해서 미지근하면 앞으로는 상대하지 않겠다, 말도 꺼내지 않겠다, 또는 아예 신경을 끊겠다,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뜻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러쿵저러쿵 책망하면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거지만 그런 언급...

계 3:15 [4]

  • 2023-02-17
  • 조회 수 73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4 3:15 내가 네 행위를 나오니 네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절은 정말 유명한 구절입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하다는 뜻이겠지요.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신앙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라는 거고요. 사데교회를 향한 충고와 비슷합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골 4:2절에 나오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

계 3:14 [7]

  •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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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3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거론된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도 칭찬은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습니다. 일곱 교회에 말씀을 주시는 이에 관한 묘사가 각각 다릅니다. 1) 에베소 교회에서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나오고 2) 서머나 교회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

계 3:13 [4]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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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2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충 그러려니 하면 별 어려움이 없긴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성령은 무엇, 또는 누구인지, 교회는 무엇인지,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 보겠습니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진리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 진리는 독단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입니다. 자기 혼...

계 3:12 [4]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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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1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문장이 거칠게 번역된 구절입니다.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계 3:11 [4]

  •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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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0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니 … ”라는 문장은 알쏭달쏭합니다. 문장만 본다면 예수께서 머지않아 재림하신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그걸 암시하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주로 요한복음인데,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당시 일부 교인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가져오면 그것으로 모든 교우가 함께 생활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재림한다고 믿었기...

계 3:10 [5]

  •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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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은 지금을 ‘시험의 때’로 규정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멸하는가, 아니면 버텨내서 살아남는가, 하는 갈림길입니다. 사실은 당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마틴 루터...

계 3:9 [4]

  •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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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8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탄의 회당’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게 들리긴 합니다. 지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는 요한은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어지느냐 아니면 크게 위축되거나 사라지느냐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안으로는 유대교...

계 3:8 [4]

  • 2023-02-09
  • 조회 수 69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7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이 있다네요. 천국 문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은 물론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여기 ‘소리’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계 3:7 [6]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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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6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이제 여섯 번째로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편지하는 명령을 듣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겁니다. 그 사자는 헬라어 ‘ἀγγέλος’의 번역입니다. 앙겔로스는 angel(천사), messenger(메신저)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직접 해당 교회에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서 ...

계 3:6 [4]

  • 2023-02-07
  • 조회 수 63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5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라는 표현은 고대 유대인들의 관용어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표현을 자주 쓰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막 4:9, 23) 들을 귀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연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그렇다면 입이 있어도 말...

계 3:5 [4]

  • 2023-02-06
  • 조회 수 65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4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를 앞에서 시인하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생명책’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바울은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라고 썼고, 계 20:12절에는 “또 다른 책이 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니”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생명책은 그야말로 상징이고 은유입니다. 이를 마치 족보처럼 실제의 ...

계 3:4 [4]

  • 2023-02-04
  • 조회 수 76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3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처음부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질책을 당한 사데 교회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아무리 세상이 세속화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소수의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가 본질을 잃어도 여전히 본질에 천착하는 적은 수의 교회는 있는 법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계 3:3 [4]

  • 2023-02-03
  • 조회 수 67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2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둑 같이’ 이른다는 표현은 공생애 중에 예수께서 가르치신 비유에도 나옵니다. 요한은 교회에 전승되던 그 비유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 구절을 기록했을 겁니다. 마 24:43절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바울도 비슷...

계 3:2 [4]

  • 2023-02-02
  • 조회 수 68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1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꿰뚫는 말씀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의 행위가 어떻게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계속해서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런 행위의 완전함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 아닌가요? 믿음...

계 3:1 [4]

  • 2023-02-01
  • 조회 수 80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0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다섯 번째로 거론되는 사데 교회는 처음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보통 질책이 아닙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뼈아픈 질책입니다. 질책을 받는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책마저 없는 게 더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사데 교회가 이 질책을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그래서 새로워졌는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

계 2:29 [4]

  • 2023-01-31
  • 조회 수 66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9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성령은 ‘Πνεῦμα’(프뉴마)의 번역입니다. 영은 몸(소마, 또는 사르크스)이 아니니 몸으로 사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공기나 숨이 말한다고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요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시인들은 나무의 노랫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습니다. 겨울나무에서도 어떤 말인가를 듣습니...

계 2:28 [4]

  • 2023-01-30
  • 조회 수 62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8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새벽일을 나가는 분들은 새벽 별을 가끔 보셨을 겁니다. 금성이라고 합니다. 동쪽에 작은 동산을 둔 마을에 사는 저도 종종 새벽 별을 간혹 봅니다. 밤에는 목성이 밝게 빛나고 새벽에는 금성이 또 그렇게 빛납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보통 별들은 힘을 잃지만, 금성은 여전히 고고하게 빛을 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도 금성을 특별한 별로 여겼고, 성경에도 종종 언급됩니다. 고대인들은 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별...

계 2:27 [4]

  • 2023-01-28
  • 조회 수 73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7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인자)이신 예수께서는 쇠막대기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권세’를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분이십니다. 권세는 헬라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의 번역입니다. 이런 단어를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폭력적인 능력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강한 비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입니다. 비바람은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사람의 외투를 벗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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