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3:4

조회 수 796 추천 수 0 2023.02.04 07:34:5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3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처음부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질책을 당한 사데 교회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아무리 세상이 세속화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소수의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가 본질을 잃어도 여전히 본질에 천착하는 적은 수의 교회는 있는 법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위기가 닥치면 드러납니다. 평소에 믿음이 하늘까지 뻗친 듯이 큰소리치던 목사가 불치병에 걸렸다 해서 하나님을 부정할 수도 있고, 평소에 교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교인이 죽음 앞에서 더 모범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흰옷은 주님의 재림으로 실현될 영광스러운 생명을 가리킵니다. 영광스러운 생명이라는 표현도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게 어디 이런 성경과 신학 개념뿐이던가요. 첨단 물리학의 정점인 양자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더군요. 양자가 작동해서 나오는 결과만 과학적으로 측정할 뿐이지 그 이유는 증명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양자의 세계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부정되지 않듯이 영광스러운 생명도 어떤 이들이 실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정되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만이 실재한다는 생각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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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02.06 08:38:01

"흰옷'

세상이 살기 힘들어질수록 책 옆구리가 어두워지고

살기가 좋으면 책 옆구리가 밝아진다고 누군가 그랬는데... 이름은 생각이 안납니다.

어쩻든, 그래서 저는 일부러 책을 만들면서 옆구리는 무조건 희게, 밝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백의 민족' 이라 했는데 어느 순간에 전부 까마귀가 되었습니다.

의복을 연구하는 분들이 '박정희 시절부터' '백의'가 '흑의'로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목사님들은 어째서 다들 까마귀인지.... 

언젠가 무슨 목회자 모임에 저 혼자 '계량한복'을 입고 갔다가

단체사진 찍은 것을 보니 온통 까마귀들 사이에서 저만 색깔이 달라.... 

음... 제 모습이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완전 조폭두목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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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2.06 11:29:52

아, 책 옆구리 색깔에 그런 뜻이 담겨 있단 말이죠.

저도 책을 낼 때 옆구리 디자인까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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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23.02.06 09:24:58

공동번역[3: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얀 옷을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엔 편한 옷을 즐겨  입는 편이라서요.

일명 패션 테러리스트 입니다.

대충 입고 다니는 스타일이어서 가족들에게 많이 핀잔을 듣습니다.
차라리 현장복, 제복 등을 입고 다니는 회사를 다녔으면 하는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공간 나오면 간단한 운동을 하는것을 좋아 해서요.

급할땐 산이든 작업 현장에 투입 될 경우도 종종 있고요.

그래서인지 어쩌다 조금 깔끔한 옷을 입고 오는 날이면 시선을 한번 받습니다.

오늘 뭔일 있냐고요.


그날에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평소에 입지도 못한 하얀 옷을 입을 수도 있겠네요. 

하얀정장 아니면 하얀 성가대 같은것 주시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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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2.06 11:32:18

흰옷은 상징이니까 그냥 넘어가도 됩니다.

저도 옷은 편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개량 한복을 평소에도 입고 예배 때도 입기 시작한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값도 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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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4: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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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4: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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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2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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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9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주제로 하는 그림도 여럿 있고 복음 찬송가도 있습니다. ‘문을 열면’이라는 표현은 물론 메타포입니다. 말로만 ‘내 마음의 문을 열겠으니 주님 제 안으로 들어와 주십시오.’ 한다고 해서 여는 건 아닙니다. 문을 열려면 먼저 빗장을 풀어야 합니다. 빗장이 걸쳐있으면 아무리 문을 밀거나 당겨도 열...

계 3:19 [4]

  •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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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1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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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7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요한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세 가지 처방을 내립니다.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참된 신앙을 회복할 때만 영혼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연단한 금은 세상의 온갖 시련을 겪은 뒤에 얻게 되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이게 맞는 말일까요? 영혼의 부자가 되는 게 실제 삶에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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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6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7절에서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집니다. 그들은 부자라서(I am rich.)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 지역은 정치, 상업, 의학 등등의 수준이 고급스러웠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개인 소득 수준이 높고, 복지가 잘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숙제는 인생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신...

계 3:16 [6]

  •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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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5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말 성경이 정말 강렬하게 번역했군요. 원어로 보면 입에서 뱉어낸다는 뜻입니다. 저런 표현은 당시 관용어로 들립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계속해서 미지근하면 앞으로는 상대하지 않겠다, 말도 꺼내지 않겠다, 또는 아예 신경을 끊겠다,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뜻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러쿵저러쿵 책망하면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거지만 그런 언급...

계 3:15 [4]

  •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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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4 3:15 내가 네 행위를 나오니 네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절은 정말 유명한 구절입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하다는 뜻이겠지요.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신앙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라는 거고요. 사데교회를 향한 충고와 비슷합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골 4:2절에 나오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

계 3:14 [7]

  • 2023-02-16
  • 조회 수 71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3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거론된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도 칭찬은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습니다. 일곱 교회에 말씀을 주시는 이에 관한 묘사가 각각 다릅니다. 1) 에베소 교회에서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나오고 2) 서머나 교회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

계 3:13 [4]

  • 2023-02-15
  • 조회 수 62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2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충 그러려니 하면 별 어려움이 없긴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성령은 무엇, 또는 누구인지, 교회는 무엇인지,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 보겠습니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진리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 진리는 독단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입니다. 자기 혼...

계 3:12 [4]

  • 2023-02-14
  • 조회 수 69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1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문장이 거칠게 번역된 구절입니다.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계 3:11 [4]

  •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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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0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니 … ”라는 문장은 알쏭달쏭합니다. 문장만 본다면 예수께서 머지않아 재림하신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그걸 암시하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주로 요한복음인데,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당시 일부 교인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가져오면 그것으로 모든 교우가 함께 생활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재림한다고 믿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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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1
  • 조회 수 83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은 지금을 ‘시험의 때’로 규정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멸하는가, 아니면 버텨내서 살아남는가, 하는 갈림길입니다. 사실은 당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마틴 루터...

계 3:9 [4]

  •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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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8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탄의 회당’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게 들리긴 합니다. 지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는 요한은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어지느냐 아니면 크게 위축되거나 사라지느냐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안으로는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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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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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7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이 있다네요. 천국 문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은 물론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여기 ‘소리’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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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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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6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이제 여섯 번째로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편지하는 명령을 듣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겁니다. 그 사자는 헬라어 ‘ἀγγέλος’의 번역입니다. 앙겔로스는 angel(천사), messenger(메신저)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직접 해당 교회에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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