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3:6

조회 수 661 추천 수 0 2023.02.07 07:47:1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5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라는 표현은 고대 유대인들의 관용어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표현을 자주 쓰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11:15, 4:9, 23) 들을 귀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연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43:8) 그렇다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시편 기자는 열국의 우상을 이렇게 조롱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135:16~18)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인데, 제가 평생 즐겼던 테니스 운동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라켓을 휘두를 때 힘을 빼는 일입니다. 코치나 선배가 힘을 빼세요.”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걸 알아듣지 못하는 동호인들이 제법 많습니다. 자기 딴에는 힘을 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힘을 줍니다. 힘을 빼는 거와 주는 것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인 셈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요일 4:8)라는 말씀이나 하나님의 선한 능력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말씀도 그냥 귀에 들리는 게 아닙니다. 잠결에 무슨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한 수준에서 조금씩 더 진도를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소리를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겠지요. 이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은혜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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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23.02.07 10:01:09

공동번역[3:6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열려 있는 귀가 있는 분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계속해서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듣는다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경계의 선에서 이정표가 되겠죠.

며칠전 맑은그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양쪽 어머님들이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신데 뭔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제 어머님만 해도 새벽기도, 철야기도, 성경 필사 2번, 어려운 성도 돕기 등등으로 칭찬과 존경 받는 분이십니다.

근데 김진홍 목사님의 구국과 감동의 은혜에 푹 빠지셨고, 입에 올리기 조차 싫은 전광* 목사(?) 등에게 시대적 소명을 보십니다.

조금만 더 영적 통찰력으로 본다면 아니 일반 세상의 상식만으로 봐도 아는데...

어머니와 신앙 이야기 하다 보면 답답합니다.

졸지에 제가 빨갱이(?)가 됩니다.


여하간에 성령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이 필요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의 신앙에 대해 냉정 해야 겠고요.

근데 가면 갈 수록 바른 신앙으로 가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가는 길이 옳은지 대한 물음도 늘 있고요.

이런 물음에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한동안 침묵하며 묻고 싶습니다.

제대로 성령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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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2.07 22:26:29

건강한 신앙생활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건 힘든 일이지요.

육체도 꾸준하게 훈련해야 하듯이,

그것도 무조건 꾸준하게 하는 게 아니라 바른 방법으로 해야 하듯이

신앙도 바른 방식으로 꾸준하게 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새하늘 님은 성령(진리의 영)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얻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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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02.08 08:27:47

"귀 있는자"

아프리카에 가서 우물을 파주는 일을 하던 분이 직접 들려준 이야기인데

우물을 파 주고 한 참 후에 다시 가보면 우물을 사용하지 않는 비율이 반이 넘는답니다.

원인은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고장이 나서 물이 안나온다고 우물을 사용하지않는답니다.

분명히 수도꼭지가 고장나면 갈아 끼우라고 여분으로 남겨주고 그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는데도

물이 안 나오면 고쳐서 쓸 생각을 못하고 그냥 우물을 덮어버린답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고장나면 고쳐서 쓴다'는 의식이 없는 것이죠.

"귀 있는 자"가 되란 말은 비유를 하자면 '의식'이 없으면 안된다는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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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2.08 19:59:10

아프리카 우물 이야기는 조금 과장된 게 아닐까 모르겠네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세계관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귀가 너무 둔해도 문제이고,

너무 과민해도 문제인데,

중용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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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4: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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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5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하늘에는 보좌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이십사 개나 됩니다.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를 둘러싼 보좌들입니다. 그 보좌에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있습니다. 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금관을 썼다고 하네요. 보좌에 앉으신 이에 대한 묘사와는 다릅니다. 벽옥과 홍보석와 녹보석이 나오지 않고 흰옷과 금관만 나옵니다. 이십사 장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을 가리키겠지요. 이십...

계 4: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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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4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가장 값지고 귀한 보석이 나열되었습니다. 벽옥, 홍보석, 녹보석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녹보석을 비취옥이라고 부르는군요. 비취옥 같은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쌌습니다. 아주 환상적인 모습입니다. 본문은 보좌에 앉으신 이를 직접 벽옥과 홍보석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그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비유이자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직접 볼 수 없고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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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3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보좌와 거기에 앉으신 이가 나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리를 보좌라 부르고 하나님을 거기에 앉아있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옥황상제처럼 묘사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말하려면 당시 사람들이 실감할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이런 단어와 문장을 사실적인 것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아직도 자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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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2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요한의 가르침이 끝났습니다. 이제 요한계시록 특유의 묵시적 상상력이 발휘됩니다. 전체 42장으로 구성된 욥기가 1~2장과 마지막 42장의 서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내용이 친구들과 벌인 논쟁으로 채워졌듯이 요한계시록도 이제 대부분 내용이 이런 묵시적 상상력의 ...

계 3:2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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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1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일곱 교회(ἐκκλησία)를 향한 충고가 계 3:22절로 끝났습니다. 그 사이에 “귀 있는 자는 …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관용어가 일곱 번(2:7, 11, 17, 29, 3:6, 3:13, 3:22) 반복되었습니다. 모든 유대인이 어릴 때부터 들어야 할 본문은 본래 신 6:4~9절입니다. ‘쉐마’(שְׁמַ֖ע)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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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0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우리말 성경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네요.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이긴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십자가 운명을 본다면 예수께서는 이긴 자가 아닙니다. 그가 처형당한 십자가 옆을 지나던 이들은 모두 예수를 가련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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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9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주제로 하는 그림도 여럿 있고 복음 찬송가도 있습니다. ‘문을 열면’이라는 표현은 물론 메타포입니다. 말로만 ‘내 마음의 문을 열겠으니 주님 제 안으로 들어와 주십시오.’ 한다고 해서 여는 건 아닙니다. 문을 열려면 먼저 빗장을 풀어야 합니다. 빗장이 걸쳐있으면 아무리 문을 밀거나 당겨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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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8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예 버림받은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나 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이기에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에서 변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라고 했다 해서 극성스러워지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겉으로 열심을 내는 듯해도 속으로는 여전히 미지근할 수 있고, 겉으로는 미지근한 듯해도 속으로는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예수를 사랑하느냐에 달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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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6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7절에서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집니다. 그들은 부자라서(I am rich.)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 지역은 정치, 상업, 의학 등등의 수준이 고급스러웠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개인 소득 수준이 높고, 복지가 잘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숙제는 인생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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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5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말 성경이 정말 강렬하게 번역했군요. 원어로 보면 입에서 뱉어낸다는 뜻입니다. 저런 표현은 당시 관용어로 들립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계속해서 미지근하면 앞으로는 상대하지 않겠다, 말도 꺼내지 않겠다, 또는 아예 신경을 끊겠다,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뜻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러쿵저러쿵 책망하면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거지만 그런 언급...

계 3:15 [4]

  •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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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4 3:15 내가 네 행위를 나오니 네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절은 정말 유명한 구절입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하다는 뜻이겠지요.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신앙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라는 거고요. 사데교회를 향한 충고와 비슷합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골 4:2절에 나오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

계 3:14 [7]

  •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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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3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거론된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도 칭찬은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습니다. 일곱 교회에 말씀을 주시는 이에 관한 묘사가 각각 다릅니다. 1) 에베소 교회에서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나오고 2) 서머나 교회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

계 3:13 [4]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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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2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충 그러려니 하면 별 어려움이 없긴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성령은 무엇, 또는 누구인지, 교회는 무엇인지,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 보겠습니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진리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 진리는 독단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입니다. 자기 혼...

계 3:12 [4]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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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1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문장이 거칠게 번역된 구절입니다.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계 3: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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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0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니 … ”라는 문장은 알쏭달쏭합니다. 문장만 본다면 예수께서 머지않아 재림하신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그걸 암시하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주로 요한복음인데,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당시 일부 교인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가져오면 그것으로 모든 교우가 함께 생활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재림한다고 믿었기...

계 3:10 [5]

  •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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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은 지금을 ‘시험의 때’로 규정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멸하는가, 아니면 버텨내서 살아남는가, 하는 갈림길입니다. 사실은 당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마틴 루터...

계 3:9 [4]

  •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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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8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탄의 회당’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게 들리긴 합니다. 지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는 요한은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어지느냐 아니면 크게 위축되거나 사라지느냐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안으로는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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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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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7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이 있다네요. 천국 문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은 물론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여기 ‘소리’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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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6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이제 여섯 번째로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편지하는 명령을 듣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겁니다. 그 사자는 헬라어 ‘ἀγγέλος’의 번역입니다. 앙겔로스는 angel(천사), messenger(메신저)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직접 해당 교회에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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