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9일- 안식 (1)

조회 수 3523 추천 수 22 2006.05.29 23:27:46
2006년 5월29일 안식 (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뜻일까요?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진술과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좀 곤란합니다. 안식일 논쟁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안식일을 율법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식일을 민중들에게 억압적으로 적용하지 말라는 것이지 그것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지 안식일의 본질을 회복시킨 것뿐입니다. 모든 종교 형식의 근본은 바로 생명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바로 그 본질 말입니다.
안식일의 핵심은 곧 안식(安息), 즉 편안하게 숨 쉰다는 데에 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편안하게 숨 쉰다는 것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노동의 강도가 오늘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고대인들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편안하게 숨 쉰다는 점에서 생명의 날입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만이 아니라 노예도 역시 그날 쉬어야만 했고, 심지어 가축까지 쉬어야만 했습니다. 일절 모든 노동행위가 멈춰야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세버쓰(Sabbath) 전통을 물려준 유대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인류에게 노동 해방의 역사는 그만큼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만 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노동해방을 주창한 칼 마르크스보다는 안식일을 유산으로 물려준 유대인들이 훨씬 더 혁명적인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노동해방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통해서 주어지지만 안식일은 하나님의 법으로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의 주일은 안식일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주일은 안식의 날이 아니라 평소보다 훨씬 강도 높은 노동이 주어지는 날입니다. 새벽기도회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번에 걸친 예배와 각종 모임, 행사를 마치고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목사는 다음날 쉰다고 하지만, 평신도들이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본인이 은혜를 받고 즐겁다는 데야 남이 나서서 여러 말 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교회생활과 신앙의 본질에 두루두루 연결된 것이니까 여기서 한꺼번에 모든 걸 말할 수 없겠군요. 오늘은 그저 ‘쉼’의 문제만 조금 더 보충하기로 하지요.
신앙생활은 그야말로 ‘쉼’에 토대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참된 쉼을 주겠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무거운 짐은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그 당시의 율법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에게 참된 쉼을 제공해야 할 유대교가 온갖 율법과 시행세칙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그런 율법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즐겁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 율법은 쉼을 방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종교적, 도덕적 업적을 쌓는 일에 주력하기 보다는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참된 쉼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신앙이 또 하나의 율법으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영적인 쉼을 얻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영적인 ‘쉼’이 무엇인지조차 아예 모르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노예는 자유를 어색하게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참된 안식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주님, 우리의 삶 자체가 참된 안식의 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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