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17

조회 수 482 추천 수 0 2022.12.23 07:06:5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7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은 인자 같은 이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어 엎드렸다고 합니다. 앞에서 묘사된 그런 형상을 직접 본다면 누구라도 마치 외계인을 본 것처럼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충격을 받을만한 형상은 많습니다. 거미줄에 앉아있는 거미는 신기하고 예쁘게 보이지만, 거미가 인간과 같은 크기로 변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개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크기의 개미를 우리가 본다면 오금이 저릴 겁니다. 요한은 지금 이상한 형상 자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신적 경험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 경험은 본질에서 두려움이고, 엎드림이고, 충격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을 벗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일단 익숙한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책상, 컴퓨터, 커피, 가족, 교회 등등, 이런 익숙한 것들이 아닌 어떤 세계를 표상하고 경험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대상이 의지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사실도 절감해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익숙한 것에서만 삶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아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경험합니다. 인형과 대화할 줄 압니다. 이불 속의 어둠에서 어떤 존재의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나이가 들고 교육을 받으면서 완전히 익숙한 것들에 매달려 삽니다. 티브이 드라마와 홈쇼핑과 주식과 통장과 스마트폰에 매몰됩니다. 좋은 쪽으로는 가족과 친구에게 매몰됩니다. 죽은 자처럼 인자 같은 이앞에 엎드리는 경험이 없습니다. 이게 구원일까요? 참되고 영원한 삶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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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01.03 07:45:50

죽은 자 같이

내 평생에 '시신'을 직접 보기는 대여섯번정도 봤는데

아버지는 제가 너무 어려서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못보게 했었고

어머니는 입을 벌리고 한쪽발을 소파에 척 올린 상태로 너무나도 평안한 상태이셨고

또 한번은 가스에 취해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들춰업고 뛴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숨이 멎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숨이 멎은 상태에서 제가 업고 뛰었더군요.

그 트라우마로 상당해 오랫동안 밤엔 무서워서 밖에 못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정말 죽은자 같이 될까요? 그렇다면 어머님 처럼 세상에 태평하고 평안한

그런 죽은 자같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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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1.03 08:16:57

최용우 님의 경험 글을 읽다보니

'죽은 자 같이'라는 표현이 확 와닿는군요.

세상에서 죽은 자 같이 될 때만

하나님 앞에서는 오히려 산 자 같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 본문이 말하는 '죽은 자'야말로 

생명의 핵심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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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23.01.11 11:55:52

공동번역 [1:17 나는 그분을 뵙자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분의 발 앞에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오른손을 얹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제 회사 근처에서 청주실내 체육관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체육관에서 카톨릭에서 사제,부제 서품식이 있었습니다.

보통 카톨릭과 성공회는 서품을 받을때 몸을 열십자로 엎드려 서품을 받습니다.

사제의 길에서 그 자복의 감정은 어떨까요?


정목사님이 목회자로서 첫 안수 받았을때와 지금의 차이는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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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1.11 20:19:44

43년 전 (군목) 목사 안수를 받은 게 엊그제 같네요.

당시는 그냥 목사 자격증을 땄구나 하는 생각만 강했습니다.

물론 소명감이 없지 않았으나 대략 감상적인 소명감이었지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겠으나

다만 하나님 말씀 안으로 훨씬 깊이 들어갔다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거기서부터 삶의 방향과 내용이 흘러나오겠지요.

내 조카가 가톨릭 사제 서품 받을 때 갔었는데,

의식 자체가 개신교회와 크게 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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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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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9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요한이 볼 때 서머나 교회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미자립 교회라고나 할는지요. 서머나 교회가 온갖 어려움을 당하지만 실제로는 풍요롭다고 말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곧 믿음의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미자립 교회라고 하더라도 말씀이 살아 있고, 예배를 예배답게 드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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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8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요한은 서머나 교회에게 편지하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두 번째로 거론되는 교회입니다. 말씀하시는 이에 대한 묘사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관통하는 신학 개념입니다. 처음(First)과 마지막(Last)인 분이십니다. 태초와 종말입니다. 빅뱅과 언젠가 있을지 모를 세상 마지막입니다. 1세기 초에 유대에 살았던 예수님이 세상의 처음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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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7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 운운은 당시 글쓰기의 관용어로 들립니다. 복음서에도 종종 나오는 표현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에게 귀가 있으나 경을 들을 수 있는 귀는 아닙니다. 경을 들으려면 경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 세계를 얻는 게 바로 귀를 얻는 거겠지요. 여기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계 2: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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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6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요한은 에베소 교회를 처음에 칭찬했다가 책망했고, 이제 다시 칭찬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니골라 당은 니골라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를 가리킵니다. 니골라는 행 6:1절 이하에 나오는 일곱 헬라파 그리스도인 대표자에 속합니다. 일곱 명 중에서 스데반과 빌립은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그 외에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가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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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5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은 ‘회개’하라고 다그칩니다. ‘회개’를 단순히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일을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건 굳이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니라 상식적인 차원에서도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돌아서는 것’을 가리킵니다. 도덕과 윤리 문제가 회개 개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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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4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 이제 요한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문장입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 이렇게 책망할 수밖에 없는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픈 책망입니다. 사랑이 처음부터 없었으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사랑이 식었으니 슬픈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버렸다거나 사랑이 식었다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온전한 사랑이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사랑은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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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3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3절에서 언급된 내용은 2절과 비슷합니다. 참고 견뎠다니, 에베소 교회에 정말 어려운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게 무엇인지를 우리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게으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보니 그들의 처지가 아주 어려웠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당시에 에베소 교회만 어려운 건 물론 아니었습니다. 똑같이 어려움을 당해도 그걸 대하는 태도와 결과는 다 다릅니다. 불평하고 화를 낼 수 있고, 자포자기에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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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2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절과 3절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는 말입니다. 행위(works)는 에베소 교회에 나타난 업적이나 성취를 가리킵니다. 교회당을 지었을지도 모르고, 다른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모든 일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수고(labour)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가리킵니다. 그게 무언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소아시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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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1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일곱 교회 중에서 에베소 교회가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중요해서 이런 건지, 아니면 가장 문제가 많아서 이런 건지, 아무런 의미 없이 어쩌다가 먼저 나온 건지 저는 확실하게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한번 짚었듯이 바울의 행적을 다루는 사도행전에는 에베소만 나옵니다. 다른 도시보다 에베소가 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에베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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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20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인자 같은 이’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개의 별을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자(앙겔로스)는 천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일곱 교회를 지켜주는 천사로 봐도 됩니다. 요한은 교회를 지켜주는 특별한 존재가 있다고 본 겁니다. 천사가 무조건 지켜줄 수는 없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할 때만 천사가 지...

계 1:19 [3]

  •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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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9 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요한은 이제 세 차원의 일을 기록할 계획입니다. 이미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 그것입니다. 이런 삼중 구조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 1:4, 8)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요한은 교회 전승을 통해서 내려온 예수의 공생애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구전도 있고, 문서 전승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상당한 정도로 인정받는 전승들입니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일어난 일을 압축하면 복음 선...

주간일지, 2022년 12월25일, 성탄절 [5]

  • 202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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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2년 12월25일, 성탄절 1) 구원의 보편성- 오늘 성탄 설교의 본문에 나오는 ‘온 백성에게 미칠’이라는 표현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매우 주 중요합니다. 이는 곧 구원이 선택적이냐, 보편적이냐 하는 질문과 닿아 있습니다. 저는 보편성에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과 온 우주를 구원하시리라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자리합니다. 아마 다음과 같은 반론이 즉시 제기될 것...

계 1:18 [5]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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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8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인자 같은 이’이신 예수께서는 전에 죽은 적이 있으나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 있는 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감하기 까다로운 표현입니다. 직관적으로는 예수의 부활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활의 현실(reality of resurrection)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복잡한 문제를 여기서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일단 ‘살아 있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계 1:17 [4]

  • 2022-12-23
  • 조회 수 48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7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은 ‘인자 같은 이’ 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어 엎드렸다고 합니다. 앞에서 묘사된 그런 형상을 직접 본다면 누구라도 마치 외계인을 본 것처럼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충격을 받을만한 형상은 많습니다. 거미줄에 앉아있는 거미는 신기하고 예쁘게 보이지만, 거미가 인간과 같은 크기로 변했다고 상상해보십...

계 1:16 [2]

  •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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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6 1: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인자 같은 이’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다고 합니다. 일곱 별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를 지키는 천사별이라 할 수 있어요. 고대인에게 별은 신비 중의 신비였습니다. 점성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탄생 이야기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이 곧 점성술사들입니다. 당시 점성술은 첨단 과학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옛날 사람들보다 별에 관해서 훨씬...

주간일지, 2022년 12월18일, 대림절 4주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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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2년 12월18일, 대림절 4주 1) 순종과 저항-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서간』 원제는 “Widerstand und Ergebung”입니다. 직역으로는 “저항과 순종”입니다. 본회퍼가 히틀러 제거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당해 감옥에서 지내는 몇 년간 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쓴 편지를 모은 글입니다. 본회퍼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몇 달 전에 사형이 집행되어 친구인 베트게가 나중에 편집해서 출판했습니다. 개신교 목사로서 본회퍼는 노골적으로 반 히틀러 선봉에 섰습니다. 미친 운전사가 버스를 운전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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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5 1: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인자 같은 이’에 대한 요한의 묘사가 이어집니다. 그의 발은 너무 단단해서 빛을 발하는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영혼을 정화하는 맑은 물소리와 같다고 합니다. 인자 같은 이에게 실제로 발이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가 우리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요한은 지금 어떤 절대적인 경험을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표현하는 중입니다.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

계 1:14 [6]

  •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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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4 1: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3절에서 인자 같은 이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묘사되었습니다. 14절에서 그의 머리털 색깔이 눈처럼 희고, 눈이 불꽃 같다고 묘사되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이런 형상을 그려볼 수 있기는 하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은 지금 인자를 직접 본 게 아니라 ‘인자 같은 이’를 간접으로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접으로 보았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눈으로 겨울나무...

계 1:13 [4]

  • 2022-12-15
  • 조회 수 64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3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요한계시록을 누구나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묘사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기자들이 쓴 신문 보도가 아닙니다. 단테의 『신곡』과 비슷합니다. 단테는 거기서 여러 가지 상징 용어를 통해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묘사합니다. 단테는 요한보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하고 요한은 극히 절제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단테가 요한계시록을 읽고 영감을 받지 않았는지요. 단...

계 1:12 [4]

  •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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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2 1: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10절) 들었다고 합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입니다. 일단 그런 소리를 듣는 일 자체가 드뭅니다. 여러분은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소리라고 해서 모두가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소란하게 만드는 소리가 흔합니다. 잡담도 있고요. 그런 잡담으로 시간을 보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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