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부부

조회 수 3350 추천 수 0 2015.07.01 22: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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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지난 626일 미국 대법원은 동성결혼 합법화를 공식으로 선언했다. 물론 다른 많은 나라가 이미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지만, 기독교 국가라 불려도 손색이 없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미국의 대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게 놀랍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적극 지지했고,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도 적극 옹호했다. 미국 기독교인들에게서도 찬성 비율이 높게 나온다. 몇 년 사이에 크게 변한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아마 반대가 높을 것이다. 한기총을 비롯해서 대다수의 기독교 연합기관과 총회와 대형교회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모든 면에서 미국 따라쟁이나 마찬가지인 대한민국인지라, 얼마 있지 않으면 동성애에 대한 입장도 달라지리라 추정된다.

여기서 동성애에 대한 성서신학과 조직신학과 윤리학의 관점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만약 그것을 금하고 있는 성경구절에 근거해서 반대하겠다면 그것 외에도 수없이 많이 나오는 금지 구절은 왜 지키지 않는지, 대답해야 한다. 일례로 성경은 돼지고기를 금한다. 바울은 여성들이 머리를 수건으로 가리지 않고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걸 막는다. 동성애로 인해서 인류가 후손을 번식시키지 못할 거라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그것보다는 인간의 소비 지향적 삶의 행태로 인해서 벌어질 생태 파괴가 더 위험하다.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특히 개신교회는 동성애자들을 괴롭히는 스토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세기 당시 마녀사냥의 행동대원 비슷한 이미지다. 오지랖이 넓어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의 성적 취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지지하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프라이버시까지 일일이 시비를 걸 정도로 시간이 남아도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만은 알아두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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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길위의벗

2015.07.02 19:07:32

요즘 분위기를 보면 상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안티-동성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 같습니다.

세리와 스스로를 구분 짓는 데에 정신이 팔려 정작 큰 계명들은 놓쳤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생각 나는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나 성소수자를 찬성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이성애를 지지하며 동성애를 반대합니다."(눅 18:11~1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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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7.02 23:19:41

성경 패러디가 기발하오.

사실 바리새파들에게는 좋은 점도 많소.

진정성 있는 바리새인들보다는

바리새인 연 하는 이들이 문제일 거요.  

 

[레벨:17]아우

2015.07.03 14:35:56

얼마전 독일에서 공부한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가 판넨베르그 할아버지의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판할배의 생각에 따르면 동성애를 용인하면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 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혹시 사실인가요?


고신대 기독교윤리학 신원하 교수님도 그런 글을 썼더군요.

원하시면 링크해 드릴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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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7.03 15:01:17

예, 링크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레벨:17]아우

2015.07.03 15:05:51

[레벨:17]아우

2015.07.03 15:07:13

아래 소제목 마지막 부분에 언급돼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동성애: 로마서 1장 26-27절

[레벨:17]아우

2015.07.03 15:09:51

저는 위의 글을 읽으면서 혹시 신원하교수님이 맥락을 무시한채 

판넨베르그의 글을 제멋대로 인용했나 싶어서 독일에서 박사학위 받으신 목사님께 직접 물어보았더니

사실이라고 그러더군요. 저도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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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7.03 22:36:06

신원하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깔끔하게 잘 쓰셨네요.

직접 만나서 토론하지 않고

제가 일방적으로 그분의 글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지만

아우 님이 그분의 글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고

몇 가지 문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신원하 교수님도 지적했다시피

세계의 주류 교단이 다 인정하고 있는 동성애를

한국 교회만 반대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요?

미국장로교회와 루터교회, 성공회 등등이 다 인정한다면

모든 교단이 다 인정한다고 봐야합니다.

우리만 깨끗한 건지,

아니면 우리만 독단에 빠져 있는 건지 생각해봐야겠지요.

 

2) 신교수님은 해당성경 구절에 근거해서

동성대를 반대하는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분의 시도는 성경주석이지 해석은 아닙니다.

주석과 해석의 차이를 여기서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한마다만 하면

주석은 말씀 자체에 한정해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해석은 조직신학과 철학과 인문학 등의 큰 틀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동성애를 말할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남자와 여자인가,

성이라는 무엇인가, 생명이라는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에 근거해야 한다는 겁니다.

신원하 교수님의 성경 제시는 주석적으로는 옳지만

해석학적으로는 크게 부족합니다.

만약 그분의 주장에 따르려면

성경이 금하는 것을,

즉 무당도 죽어야 하고,

간음한 자들도 죽여야 하고,

가부장적 윤리를 그대로 적용시켜야 합니다.

극단적으로는 우상을 멸절하기 위해서

거룩한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신 교수님도 이런 것에는 반대하겠지요?

근데 왜 동성애에 대한 구절만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걸까요?

 

3) 판넨베르크를 인용했는데,

나는 아직도 판넨베르크가 그런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나의 글읽기가 짧기 때문이겠지요.

신 교수가 인용한 그 글을 내가 이해하기 어렵네요.

그분의 글을 그대로 따왔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이 구절처럼 분명한 것은 없다. 이 구절들을 읽고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면 동성애 행위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반하는 것으로 보려하지 않고, 동성 결합을 결혼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려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고 신학자 판넨베르크 교수가 단호히 말하는 것도 그만큼 바울의 가르침이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장이 이상하지요?

신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다가오기는 하지만요.

판넨베르크가 동성애를 반대했다는 건지

아니면 동성결합과 결혼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반대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아마 후자겠지요.

판넨베르크가 동성애 자체를 반대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판넨베르크는 동성애를 말하는 게 아니라

교회에 대한 니케아 신조의 네 가지 속성을 말하는 거 같은데,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

여기에 왜 동성애 문제가 연결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군요.

신원하 교수님은 고신대 기독교 윤리학 교수님이라고 했지요?

그분들의 입장에서 판넨베르크를 인용했다는 게 놀랍군요.

총신, 고신 측이 볼 때 판넨베르크는 자유주의 신학자라서

가까이 하면 안 될 텐데요. ㅎㅎ

 

4) 제가 보기에 동성애 문제는

지동설이나 진화론과 비슷한 현상으로 교회 앞에 나타난 겁니다.

교회가 지동설과 진화론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아시지요?

그런 어리석음 때문에 기독교 선교가 얼마나 크게 지장을 받았는지 아시지요?

사실 루터나 칼빈도 지동설을 거부했고,

진화론에 대해서는 최근까지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반대했습니다.

역사의 한계 안에 사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오류들입니다.

이제 그런 걸 배워서 아는 우리는

똑같은 잘못을 행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혹시 독일에서 박사 학위 받으신 목사님께 확인할 수 있으면

판넨베르크 글의 출처도 좀 알아봐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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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5.07.04 12:48:36

1996년에 크리스챤 투데이에 실려있네요.

20년이 지나는 동안

동성애에 대한 판교수님의 신학적 입장이 여전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시와 동성애 경험: 판넨베르크, 동성애에 대해 말하다>

사랑이 죄가 될 수 있는가? 기독교 교리 전체는 왜곡된 사랑이 있을 수 있음을 가르친다. 인간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랑하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부여하신 성품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할 때에 부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계명의 부모공경 명령조차도 하나님 사랑의 하위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0:3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결정에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결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을 먼저 강조하셨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막 10:2-9).

결혼을 통해 이뤄지는 남녀의 깨뜨릴 수 없는 교제의 관계가 성적 존재로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에 대해 생각할 때에 가져야 할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이다.

동성애 관습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구약과 신약의 그 어떤 본문에서도 전혀 예외가 없이 그 관습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레위기의 성결법들은 너무나 확고하게 동성애를 거부한다.
(레위기 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동성애는 간음과 마찬가지로 사형에 해당하는 큰 범죄로 인식되었다.
(레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 20:13)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구약 백성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다른 나라들과 분명히 구분된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신약에서도 지속된다. 헬레니즘 문화에서 동성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서에서, 동성애적 행위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롬 1:26-27)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에서 동성애적 관습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죄라고 묘사된다.
(고전 6:9-11)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이 모든 악한 관습들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천명한다(고전 6:11).

신약 성경의 그 어떤 본문도 동성애적 행위들을 거부하는 이러한 바울의 선언들에 반대하거나 그것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 전체는 동성애 행위를 예외 없이 거부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성경 해석의 결과는 오늘날 교회가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주 좁은 자리만을 허락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동성애를 별로 안 중요한 주제로 여겨서 우리들이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되는 문제인 것처럼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한 말씀과 결혼에 대한 말씀들은 창조의 목적과 관련한 중요한 말씀이다. 그런 본문들을 살펴본다면 동성애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알게 된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동성애 문제는 다만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라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 시대와 다른 관점을 취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증언들은 구약과 신약 모두 이 문제에 있어서 일치하며, 이것이 다만 문화적인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가르친다.

교회가 동성애를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중요한 인류학적 증거들을 모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인류학적 증거들이란, 동성애 행위는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심신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의 발현으로서, 성적인 행위로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그들의 몸과 정신에 그런 성향을 갖고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중에 실제 행하는] 동성애적 행위(homosexual practice)와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동성친애적 성향(homophile inclination)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성향이 반드시 그런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성적인 충동이 다만 성적 행위에만 연관되지 않고, 우리의 일상적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같은 성을 가진 이들을 대할 때도 나타난다.

바로 그렇게, 성적 동기들이 인간의 모든 행위들과 연관된다는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삶의 전체 영역과 행위들에서 성적 동기들이 적절하게 작동하도록 가꿔가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동성친애적 성향이 동성애적 행위로 자동적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동성친애적 성향들은 우리가 동성들을 대할 때 그들을 우리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타자를 섬기는 인간의 소명의 대상으로 여기게끔 작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헬무트 쉘스키(Helmut Schelsky)가 제도화된 결혼의 가장 큰 성취는 인간의 성이 타자를 위한 봉사를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한 것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동성친애적 성향 자체가 거절되거나 비난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동성친애적 성향을 잘 다루어서 우리들의 행위가 책임성 있고도 인간의 사명을 잘 수행하도록 돕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동성애적 행위들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진 성적 행위의 표준으로부터의 이탈이라고 결론 내리게 되는 것이다. 결혼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면, 다만 동성애뿐 아니라 특히 간음도 결혼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표준을 떠나 결혼을 망가뜨리는 이러한 행위들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일반적이고 만연한 일들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교회는 살고 있다.
교회는 그런 행위들을 하는 자들을 관용정신과 이해심으로 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표준이 무엇인가 아는 것과 표준을 떠난 행위(자)들을 대하는 것이 구분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표준 자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기독교회의 테두리는 성경의 권위에 근거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동성애 문제에서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쳐 주는 표준을 변경시키려고 시도하는 자들은 교회 분열을 야기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어떤 교회가 동성애 행위를 성경적 표준에서 떠난 것으로 인식하기를 그치고, 동성애적 결합이 결혼과 동등한 사랑의 결합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면, 그런 교회는 성경적 근거를 버린 것이고, 성경의 일치된 증언에 대항하여 서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시도하는 교회가 있다면, “하나의 거룩하고 공교회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이기를 멈추려고 하는 것이다. 

http://www.christianitytoday.com/ct/1996/november11/6td0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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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7.04 18:04:24

와, 정확한 출처를 찾아냈네요.

정식 학문적인 아티클이 아니라

기독교 잡지에 실은 간단한 촌평 비슷한 거군요.

판 선생님이 작년에 돌아가셨으니

지금의 생각이 어떤지는 확인할 길이 없네요.

이분이 강조하는 '성경적 표준'은

'하나의 거룩하고 공교회적이며 사도적 교회'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은 옳습니다.

그게 흔들리면 교회를 유지하는 토대가 위태로워지는 거니까요.  

문제는 성경적 표준의 범주에요.

예수 사건에 대한 케리그마인지,

기독교인의 윤리적 삶인지,

교회구조인지...

이런 문제들이 좀 복잡하거든요.

동성애 문제는 기독교 윤리에 해당됩니다.

윤리는 인간 행위에 대한 '가치론적인 판단'이에요.

가치라는 게 영속적인 게 있고

시대적인 게 있잖아요.

민족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구요.

기독교가 국교로 된 유럽의 중세기 까지만 해도

사촌이나 친족 결혼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어요.

 

결혼윤리, 성윤리는 특별히 예민해서

싸잡아서 말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아요.

성경의 표전적 가르침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결혼해야 합니다.

지금 미혼자는 성경에 순종하지 않는 걸까요?

또 성경의 표준에 따르면 이혼은 안 되는 겁니다.

지금 이혼한 사람들은 성경을 위배한 것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에 분명하고

교회의 근본을 지켜주는 준거임에 분명하지만

인간행위에 대한 규범적 권위로 행사되면 곤란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표준은 생명을 살리는 겁니다.

그게 예수에게 일어난 케리그마의 본질이기도 하구요.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동성애적 기질로 태어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

뭔가를 잘 생각해봐야지요.

판 선생이 그들을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는데,

정말 그가 그렇게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인지

내가 영어 본문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판 선생답지 않은 표현으로 보이는군요.

원래 판 선생은 보수적인 분이긴 합니다. 

루터도 유대인들을 비하하는 언급을 했으니

아무리 뛰어난 신학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부분에서 실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저 글이 1996년도에 발표된 것이니

오늘의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지금 판 선생이 살아나서 입장을 밝힌다면

달라질 거라고 예측하고,

기대합니다. ㅎㅎ

 

 

[레벨:17]봉천동

2015.07.06 09:49:19

판교수님 만세!!!

이러니 우리가 어떻게 교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판교수님이 급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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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7.06 21:56:53

아이쿠, 봉천동님, 감사드립니다.

저의 선생님인 판 교수님을 사랑해주신다니요. ㅎㅎ

판 박사님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자신이 20년 전에 쓴 저 글을 수정하고 있을 겁니다.

예수님에게 종아리 한 대 맞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위대한 신학자라서

저는 지금도 그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레벨:17]봉천동

2015.07.07 10:07:22

개인적으로는 서구사회의 동성애 추세가 가정의 해체와 맞물려 돌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도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혼율이 높은 사회일수록 자녀들이 정상적인 가정에 대한 기대를 접고

 

서로간에 상처를 덜 받는(다고 생각하는) 동성에게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통계나 기타 정확한 근거는 댈 수 없지만요.

 

 

그리고 한 말씀 더 드리자면, 판교수님이 종아리 맞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분명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동성애는 지지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동성애를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분위기에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극성 크리스천들이 동성애자들을 괴롭힌다고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보고 있는 우리 마음이 더 괴롭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5.07.07 13:53:35

봉천동 님,

봉천동에 사세요?

동성애 현상으로 인해서 가정 공동체가 파괴될지 모른다는 염려는

그야말로 노파심입니다.

90-95% 이상의 사람들이 이성애자들이니까요.

이성애자들에게는 동성애가 좀 역겁지요?

저도 동성애 분들의 느낌을 도저히 실감할 수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그분들은 우리 이성애자들의 느낌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구요.

다만 그들이 마이너티로서 받아야 할 불이익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게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동성부부를 합법화하면 되고,

합의에 이르기 힘들면 각자의 취향으로 내버려두면 됩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정이 소중하기는 하되

그게 인간 삶에서 절대적인 거는 아닙니다.

수도승들의 삶을 아시지요?

그게 기독교적 삶의 최고봉이라는 것도 인정하시지요?  

우리가 현실에서 그렇게 살지 못해서 문제이긴 합니다.

수도자들은 가정이 없어도

자기들끼리 넓은 의미의 가정을 이루고 있어요.

저는 오늘 한국사회에서 문제는

오히려 가족 이기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마음을 더 크게 황폐화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어떻게 보존하시고 완성하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봅시다.

사족: 암만 생각해도 동성부부가 입양 등의 방식으로

아이를 직접 키우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profile

[레벨:16]바이올렛

2015.07.08 21:59:13

샌프란시스코 - 동성부부들이 많이 사는 거리(카스트로?)에 간적이 있는데...

입양한 아이도 부부가 역할을 분담해서  잘 키운다던데요

집마다 무지개 깃발을 나붓기며...

오래전이라...소수자들을 보호하는 문화가 놀라웠습니다.

 

소수자들 앞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우리가 다수, 정상 등의 의미로 이해되는 것 같아....

사랑이 정상, 비정상으로 정확하게 규정될 수가 있는지?...

다수가 소수자의 행복을 뺏을 권리가 있는지?...

어릴 때 부터 이런 다양한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의...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5.07.08 22:35:06

지극한 사랑을 받기만 한다면

동성부부 밑에서도 잘 클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성부수가 워낙 소수이다보니

아이들의 심리와 정서가 불안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잖습니까.

장애아들과 비장애아들이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 건

교육학적으로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장애도 장애 나름이겠지요.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는 일반학교에 다니기 힘들 거고,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아이들은 가능할 거 같기도 합니다.

동성애자들을 장애자로 본다는 뜻은 아니고,

소수자의 문제로 예를 든 것뿐입니다.

하여튼 이런 어려운 조건을 뚫고 나가려면

훨씬 많은 수고를 해야겠군요.

 

[레벨:10]온마음

2016.02.12 14:11:10

정말 인간은 이기적이군요. 자기와 입장이 다르면 이해를 할 수가 없나 봅니다. 수많은 성경의 금지구절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동성애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죄라고 하는군요. 정확히 말하면 바울은 '죄의 결과'라고 하지 않았는지?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또 당시 시대적 상황과 배경, 문맥을 잘 이해하고 적용을 해야 하는데.. 나중에 생물학이 발전해서 동성애의 비밀이 밝혀지는 날이 올까요?

중세에도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처형당했던 것처럼 오늘 많은 이들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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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02.13 19:27:55

마녀사냥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됩니다.

몰라서도 그런 일을 자행하지만

정치적 계산으로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개인들은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를

거기서 맛보기도 하구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려운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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