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0:2

조회 수 261 추천 수 0 2024.02.23 18:14:0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3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요한은 2절에서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입니다. 천사가 사탄을 잡아서 천년(千年) 간 무저갱에 넣는다고(3) 합니다. ‘천년이라는 표현이 20장에 여섯 번 나옵니다. 우리말 성경 <개역개정> 20:1-6절 단락에 천년왕국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듯이 이 대목이 바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천년왕국운동의 성경적 근거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통한 완전한 종말이 오기 전 천년 간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세상이 실현된다고 생각한 열광주의자들이 그런 세상을 자신들이 세워보겠다고 나서곤 했습니다. 어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황금시대를 꿈꾼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자기 개인의 인생도 멋지게 꿈꾸듯이 말입니다. 무력적인 농민전쟁을 이끈 토마스 뮌처의 생각이나, 카를 마르크스의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혁명도 일종의 천년왕국 운동의 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멋진 신세계라고 하더라도 역사 안에서는 완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설, 또는 천년기설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이고, 다른 하나는 천년왕국 이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입니다.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전자는 천년왕국의 피안(彼岸)적 차원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차안(此岸)적 차원을 강조합니다. 피안적 차원이라는 말은 최후의 심판을 통한 하늘나라가 오늘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초월한다는 뜻이고, 차안적 차원이라는 말은 우리의 역사와 연속적이라는 뜻입니다.

각각의 주장에 문제도 있습니다. 전천년설을 따르면 재림하신 예수께서 완전한 세상을 만드시면 됐지 굳이 천년 간 뜸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 하는 질문이 생기고, 후천년설을 따르면 재림하실 예수께서 이루실 그 절대적인 세상은 그것 자체로 완전한 게 아니라 천년왕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를 누가 확실하게 알겠습니까. 천년왕국설 자체를 부정하는 무()천년설(amillennialism)도 있습니다. 교부 시대에 어떤 이들은 교회가 바로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천년왕국설 문제는 요한계시록이 처한 삶의 자리가 로마 제국이 극심하게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바탕에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 제국의 모든 체제를 부정할 수도 없고, 그 체제에 안주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로마야말로 절대 왕국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능가하는 왕국이 실현된다는 희망이 없다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버텨낼 수 없었겠지요. 천년왕국에 대한 저들의 희망은, 그것이 역사 초월적인지 역사 내재적인지는 둘째 치고,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에 가까이 가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이 삶과 역사를 절대화하지 않는 긴장감이 필요하겠지요.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각자의 인생을 풍성하게 살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그 인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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