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35)

조회 수 2471 추천 수 1 2010.08.24 23:15:44

 

-사죄기도(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는 문장은 앞에서 말한 성서의 죄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오. 성서의 죄 개념은 생명 창조주인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인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소.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말이오. 그런데 ‘우리에게 죄지은 자’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잘못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오. 남에게 피해를 입힌 행위 말이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죄라고 생각하는 것들이오. 남의 집의 물건을 훔쳤다거나 중상모략 같은 것들이오. 파렴치한 행위들이오. 이런 것들은 사실 종교적인 차원보다 먼저 이 세상의 도덕률이나 실정법의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안들이오. 성서가 이런 정도의 차원에서 인간의 죄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성서의 차원에서 이런 것들은 죄라기보다는 죄의 결과들이오. 죄와 죄의 결과들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소.

     오해는 마시오. 성서가 부도덕한 행위들에 관해서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오. 로마서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소. 로마서가 말하는 항목들을 열거하겠소.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자랑, 악, 불효, 우매, 배약, 부정, 무자비(롬 1:29-31)요. 이런 항목 앞에 이미 동성애를 지적했소. 갈라디아서는 육체의 일에 대한 목록을 열거했소.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그와 같은 것들이오.(갈 5:19-21) 그 외에도 바울의 여러 편지에는 부도덕한 일을 경계하고 도덕적인 일에 권장하는 내용들이 나오오. 기독교는 처음부터 도덕적인 일에 매우 민감했소. 그래서 방탕한 것을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남편을 둔 로마의 부녀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좋게 생각했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은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으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이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성서의 이런 표현들이 그대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으면 하오. 성서가 죄의 항목들에 매이지 않는다는 뜻이오.

     예수님은 신약 성서 기자들에 비해서 이런 문제를 훨씬 근원적으로 접근하셨소. 그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도덕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셨소.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돌아서라고 요구하셨을 뿐이오.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지 사람들을 교양이 있고 도덕성을 갖추게 하는 것이 아니었소. 이 문제는 좀 까다롭소. 참고적으로 나무와 열매의 변증법적 관계로 이해할 수도 있소.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좋은 열매로 좋은 나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오. 우리의 존재론적 변화에서만 행위도 선하게 되고, 우리의 선한 행위를 보고서 존재론적 변화를 알 수 있다는 뜻이오. 나무와 열매가 변증법적인 관계라고 하더라도 나무가 핵심이오. 열매를 말하는 이유는 복음이 열매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열매 자체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오. 예수님의 공생애 전체를 놓고 볼 때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오.

     그렇다면 주기도에서 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문장이 나오는 거요? 이 문장은 분명히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행한 잘못을 말하는 것이오. 여기서 ‘죄 지은 자’라는 단어는 ‘빚진 자’라는 뜻도 되오. 성서 난외주에 나왔듯이 이렇게 번역해도 되오.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시옵고” 죄를 지은 것과 빚을 진 것은 보기에 따라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오. 빚도 잘못이긴 하니 죄를 진 것이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빚을 진 것이니 죄라고 하기는 어렵기도 하오. 고대 사회에서 빚은 지금 은행 융자를 얻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생존의 위기였소.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직결되는 것이오. 이런 점에서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어야 할 것이오. 그런데 그게 잘 안 될 거요. 자기가 빚을 못 갚은 것은 작아 보이지만, 남이 빚을 못 갚은 것은 크게 보인다오. 큰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그보다 작은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을 감옥에 넣었다는 주님의 이야기를(마 18:21-35) 기억하기 바라오. 그게 사람의 본 모습이오.

   좀더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대는 이 주기도를 오늘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겠소?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일말이오. 모든 이들의 빚을 탕감한다면 경제체제가 허물어질 것이오.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요. 어느 신학자가 이런 제안을 했소. 가난한 나라의 빚을 부자 나가가 모두 탕감해주자고 말이오. 이런 정신은 구약의 희년 제도에도 그대로 들어 있소. 이런 일을 시도하지 않으면서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라고 기도드리는 것은 공허한 기도요. (2010년 8월24일, 화, 햇빛, 구름, 부드러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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