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38)

조회 수 1932 추천 수 1 2010.08.27 11:30:20

 

-시험(2)-

 

    

     시험에 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시오. 앞에서는 시험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질문을 했소. 마귀, 또는 사탄이 주체적으로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오. 이제는 시험의 내용에 대한 질문이오. 시험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오. 우리는 시험을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시험을 하오. 시험은 이 양면성을 그래도 갖고 있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시험의 본질이 아니겠소? 욥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해보시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분명히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재앙을 만났다고 윽박질렀소. 그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이오. 욥은 재앙을 당할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반론을 폈소. 하나님이 누구냐, 그의 섭리는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이 욥 이야기의 배경이오. 결론은 인간의 합리적 논리와 의로운 삶만으로 하나님과 그의 통치를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오.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선의 삶이고 신앙이라는 말이오. 이런 구도로만 사람이 살기가 힘들다는 데에 문제가 있소. 하나님은 사람의 기대를 그대로 채워주는 분이 아니기에 그분을 신뢰하고 살기가 힘든 거요. 그래서 사람은 시험에 드는 거요. 시험에 들려 넘어지고, 그래서 다시 시험하는 주체가 되는 거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오. 다른 사건은 접어두고 가장 상징적인 사건 하나만 예로 들겠소.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이 시작되었소. 애굽의 삶과 광야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는 그대도 잘 알 거요. 광야에서는 최소한의 생존 조건마저 확보하기가 어렵소. 그들은 당장 마실 물과 먹을거리가 늘 부족했소. 그들은 출애굽 후 3개월 만에 시내 산 아래에 도착했소. 원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오. 한두 달 내에 가나안까지 직선으로 가려는 것이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소.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서 감감 무소식이오. 모세는 40일 동안 시내 산에 머물면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완성했소. 모세는 광야생활을 가나안 시대까지 포함해서 멀리 내다본 것이오.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형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 상(像)을 만들었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 하고 외치면서 제물을 드리고 먹고 마시며, 정신없이 뛰놀았다고 하오. 자세한 줄거리는 그대가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이만 줄이고, 결론 대목으로 넘어가겠소. 이 사건으로 인해서 결국 한 나절에 3천명이나 죽었소. 모세가 레위 사람들에게 칼을 주면서 닥치는 대로 죽이라고 한 거요.

모세는 왜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무엇이오? 그들은 왜 금송아지 상을 만들었소? 성서가 말한 그대로요. 그들에게는 금송아지 상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였소.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버텨낼 수 없었던 거요.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 말이오. 그들은 모세가 일러주는 신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소. 그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이”요. 그런 신의 약속을 믿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소. 그런 신보다는 당장 생존의 조건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신이 필요한 것이요. 그래서 금송아지 상을 만들었소. 그들의 죄는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오.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시험해보라는 요구였소. 마귀는 첫 시험과 둘째 시험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전제를 하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고 대답했소. 세 번째 시험도 역시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요. 부귀와 명예를 줄 수 있는 마귀에게 절하라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의심이기도 하오. 예수님은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는 대답을 하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시험에 빠지오. 어떻게 사는 것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오. 이것에 대해서 내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되겠소? 아니면 이미 충분히 깨닫고 있소. 단적인 것 하나만 이야기하리다. 신자유주의는 금송아지 상이요. 그것은 부 증식과 경쟁력 제고를 절대 가치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오. 사람들을 삶의 기쁨과 자유와 신비가 아니라 두려움과 욕망으로 몰고 가오. 그것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거요. 과연 그런 거요? 거기서만 인류의 미래가 보장되는 거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그런 방식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거요? 오늘 교회는 이런 신자유주의를 신으로 섬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소.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왕상 12:28)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왜 반복되었는지를 우리의 삶에서 확인할 수 있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우리 자신이 시험에 들렸소. (2010년 8월27일, 금, 수련회 시작하는 날,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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