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39)

조회 수 2168 추천 수 2 2010.08.27 11:35:23

 

-시험(3)-

 

     이제 우리의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시험을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는 없소. 시험은 교회에서도, 수도원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오. 또 시험이 반드시 나쁜 결과만 일으키지도 않소. 우리를 단련시키는 시험도 있소. 마귀는 우리를 파괴하려고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시험하오. 시험을 완전히 마귀의 것과 하나님의 것으로 이원론적인 차원에서 분리할 수는 없소.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험이 하나님과 연결되오. 그러나 마귀가 주도적으로 시도하는 시험은 있는 거요. 그것마저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소. 반복되는 말이지만 그것을 구분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소. 그래서 성서는 이렇게 말하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우리는 어떻게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거요? 시험에 들지 않는 길은 어디에 있소?

    이 질문을 다시 정리해야겠소. 시험에 들지 않는 길은 없소. 시험을 피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오. 예수님도 시험을 받았는데 우리가 어찌 시험을 받지 않을 수 있겠소. 예수님이 당한 세 가지 시험만이 아니오. 마지막 순간인 십자가에서도 시험을 받으셨소. 그는 십자가 위에서“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외치셨다고 하오.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신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는 뜻이오. 그것은 그의 영혼을 향한 악마의 속삭임이었소. 이상하지 않소? 공생애 초기에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순간에 다시 시험에 들렸다는 것이 말이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시험을 받으신 거요. 그것은 인간의 숙명이오. 시험에 들지 않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시험과 상관없이 산다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시험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이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장면에서 에피소드가 발생하오. 당시 예수님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소. 소위 수제자 세 명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자기 옆에 머물러 깨어있으라고 하셨소. 제자들은 잠이 들고 말았소.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고 말씀하셨소.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 되오. 우선 본문 자체로만 본다면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에 깨어 있지 않은 것은 민망한 일이기는 하지만 시험에 드는 건 아니오. 이 구절은 초기 기독교의 신앙 전체에 대한 진술이라고 보는 게 좋소. 그들이 처한 신앙적 삶의 자리와 겟세마네의 사건을 연관해서 보도하는 것이라고 말이오. 초기 기독교에서도 시험에 드는 일은 많았다는 말이오. 가장 결정적인 시험은 배교요. 이단과 사설도 물론 시험에 넘어가는 것들이오. 복음서 기자는 이런 시험의 근본 이유를 깨어 있지 않고, 또 기도하지 않는데서 찾은 것이오. 나도 여기에 동의하오.

    깨어 있지 않은 상태는 잠든 상태요. 잠이 들었을 때는 무의식이 발동하오. 그 무의식이 훨씬 큰 덩어리이기 때문이오. 우리의 욕망이 절제되지 않고 작동하오. 그대도 그것을 꿈에서 경험했을 거요. 살인도 저지를 수 있소. 평소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꿈에서는 가능하오. 이와 달리 깨어 있는 상태는 어떤 것이오? 단순히 잠들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오. 우리는 잠들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치 꿈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가 있소. 우리의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 상태가 대낮에도 똑같은 작동된다는 말이오. 그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소.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쉽게 분노하는지를 생각해보시오.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불법을 저지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행한다오. 이런 일들이 시험에 들리는 것이오. 모범적으로 살고 있는 그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래봤자 종이 한 장 차이요. 겉으로 자기 욕망이 얼마나 드러나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오. 이런 점에서 볼 때 깨어 있는 것은 단순히 잠에 떨어지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소.

깨어 있음은 기도에서만 가능하오. 이런 말이 상투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대가 알았으면 하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호흡이라고 하지 않소. 그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종말의 주인이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바로 창조와 종말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오. 이미 우리에게 일어난 생명 창조를 직면하는 일이며, 앞으로 일어나게 될 생명의 완성을 기대하는 일이오. 여기서만 우리의 영혼은 깨어 있을 수 있소.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기도요. 죽음을 직면할 때 우리 영혼이 깨어 있을 수 있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그대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요. 가장 궁극적인 현실을 직면하는 것만이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는 가장 참된 길이오. 더 노골적으로 말하겠소. 그대가 내일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상상해보시오. 지금 무얼 하겠소? 여전히 스펙을 쌓으려고 동분서주하겠소? 집 장만을 위한 은행융자를 받으려고 뛰어다니겠소?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한 마디 더 하겠소. 내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그대가 알았다면 오늘 무얼 하겠소? 이런 설명을 공연히 겁주려는 말로 오해하지 마시구려. 모두 죽을 테니 이 세상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로 받지 마시오. 그 반대요. 정신을 차리는 유일한 길을 설명하는 것이오. 하나님 앞에, 즉 하나님의 행위에 직면하는 것이 기도요. 거기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소. 무엇이 참된 현실인지를 인식하기 때문이오.

     참고적으로 잠에 취하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약간이라도 맛보기 위해서 짧은 시를 소개하겠소. ‘하이쿠’는 5-7-5의 음수율을 지닌 17字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를 가리키오. 아래의 시 모음은 서울샘터교회 메뉴에서 퍼왔소.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잇싸-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잇싸-

 

여름 소나기

잉어 머리를 때리는

빗방울! -시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것을 모르다니! -바쇼-

 

울지마라 풀벌레야

사랑하는 이도 별들도

시간이 지나면 떠나는 것을! -부손-

 

초조해 하지마 애벌레들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부활할테니 -잇싸-

 

목욕한 물을

버릴 곳이 없다

온통 풀벌레 소리 -오츠나라-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바쇼-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을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소세키- (2010년 8월2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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