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4일 나귀새끼(4)

조회 수 1465 추천 수 0 2009.01.23 23:40:06
 

2009년 1월24일 나귀새끼(4)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6)


악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 들어 있다는 어제의 묵상을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런 주장은 자칫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다음과 같은 오해가 가능합니다. 이 세상의 악을 하나님이 나름의 방식으로 처리하신다면 우리는 그 악에 저항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완벽한 무저항주의 말입니다. 

지난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이런 무저항주의는 주로 소종파를 통해서 계속해서 맥을 이어왔습니다.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이 그런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들은 군대를 폭력적이라고 보고 징역을 살 지언정 군복무를 거부합니다. 이들의 입장을 우리는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우리와 동일한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들이 성서의 가르침을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무저항주의가 옳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온갖 종류의 세력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는 없습니다. 무저항주의가 이상적으로는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큰 폭력을 막기 위한 반(反)폭력을 무조건 매도할 수는 없으니까요. 예컨대 무장 강도가 집을 침입했을 때 그것을 제압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점에서 늘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악할 질서가 결국 하나님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그 악과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의 투쟁이 하나님의 섭리를 훼손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든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선한 투쟁에서 지치지 않으며, 동시에 자기의 투쟁을 절대화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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