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489
||0||02008년 12월31일 대속자 예수(2)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어제 저는 예수님이 대속자라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과 똑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이렇게 언급합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대속, 또는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분명히 유대교의 희생제사와 연결됩니다만, 이 문제를 너무 회화적으로, 또는 희화적으로 접근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을 제단에서 피를 뿌리면 죽어가는 양이나 소와 사실적으로 일치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메타포(은유)이지 사실적인 것은 아니니까요.
여기서 조금 혼란이 올 겁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그림의 한 장면처럼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니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자칫하면 유대교의 틀에 갇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가 기독교 신앙의 모판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매몰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유대교의 하나님 신앙과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이 한편으로는 동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유일신 신앙이지만 우리는 삼위일체 신앙이거든요.
우리는 주님이 대속자라는 사실을 훨씬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단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사실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그의 운명 전체가 바로 대속 사건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실패와 죽음이 바로 우리의 승리와 생명이 되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어제 저는 예수님이 대속자라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과 똑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이렇게 언급합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대속, 또는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분명히 유대교의 희생제사와 연결됩니다만, 이 문제를 너무 회화적으로, 또는 희화적으로 접근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을 제단에서 피를 뿌리면 죽어가는 양이나 소와 사실적으로 일치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메타포(은유)이지 사실적인 것은 아니니까요.
여기서 조금 혼란이 올 겁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그림의 한 장면처럼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니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자칫하면 유대교의 틀에 갇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가 기독교 신앙의 모판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매몰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유대교의 하나님 신앙과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이 한편으로는 동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유일신 신앙이지만 우리는 삼위일체 신앙이거든요.
우리는 주님이 대속자라는 사실을 훨씬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단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사실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그의 운명 전체가 바로 대속 사건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실패와 죽음이 바로 우리의 승리와 생명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적확한 여러 말씀에 지면으로나마 감사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우리부부 기도드립니다.
언제가는 실현 될 부산오프를 기대하면서.......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