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6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

조회 수 2013 추천 수 3 2009.01.05 23:00:58
||0||02009년 1월6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10:48)

어제 묵상의 마지막 단락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무와 유의 경계선에서 생명을 향해 더욱 크게 고함을 쳐야겠지요.” 이런 문장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너무 관념적으로 전달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뒤에 속한 분들을 위해서 아무래도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우리는 지금 유(有)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우리가 먹는 밥과 마시는 물도 모두 ‘있는’ 것들입니다. 눈만 뜨면 온갖 것들이 보이고, 귀만 열면 온갖 소리가 들리고, 몸만 열면 온갖 것들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세상은 우리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있는’ 것들과 더불어서 이렇게 존재합니다. 이게 유의 세계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온갖 것들이 늘 우리의 감각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눈만 감으면 모든 사물이 사라집니다. 귀만 닫으면 소리도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그 ‘있는 것’들을 원래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단정해도 될까요? 그것이 반드시 우리의 감각적인 한계로 인해서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바로 그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 앞에 나무가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그걸 나무라고 인식하지만, 그게 반드시 나무라는 완벽한 보장은 없습니다. 새나 바람에게는 그것이 전혀 다른 대상이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 근본적으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고 있는 것들은 순식간에 무(無)로 돌아갑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우리는 마치 유와 무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현기증을 느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와 무의 경계선에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칠 뿐입니다. 생명을 향한 절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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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09.01.06 03:25:54

유와 무의 경계선...!
보름넘게 끙끙 앓으면서 한 순간에
한 줌의 재로 변할 수 있는 육신의 가벼움이 실감됬어요.
동시에, 영원에 잇다은 생명에 대해서도...아직은 막연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를 경험하니
생명의 절규라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네요.

새해에도 좋은 양식으로 채워지는 묵상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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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09.01.06 04:50:28

올해 들어 처음으로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헨리나웬 "영적수업"이라는 책인데, 한 해 동안 나의 삶과 중심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가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책 내용중,
-기도하는 자세로 경청하기-에서
어리석다(absurd)는 단어는 '귀머거리'라는 뜻의 'sardus'라는 말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결국 어리석은 삶이란 침묵속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줄곧 귀먹은 생활방식이라 하고 있고요,

반면, 순종(obedience)이라는 단어는 '든는다'라는 뜻의 'audire'라는 말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결국 순종하는 삶이란 내 내면과 우리 중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바짝 귀 기울여 듣는 삶이라고 합니다.

올해도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우리를 창조하셨고, 새로운 삶으로 부르신 그 분의 음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 존재의 실존을 매일 그 분을 향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는
기도가 내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늘 일어나게 하소서,

[레벨:9]푸우

2009.01.06 08:45:18

무와 유의 경계선에 있다는 것은 또한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나는 실패, 좌절, 고통, 병마 등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나약함과 한계성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소중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거나 다른 관점으로 바라 볼 때 조금 전까지 가졌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올 수 있겠지요.

생명을 향해 고함을 친다는 것
단순히 생명의 지속을 위한 절규가 아니라
참다운 생명을 누리기 위한 절규로 생각하면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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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1.06 13:02:16

보름 간의 외출이 아니라
열병이었군요.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니
다행입니다.
어떻게 영생과 연결될 수 있을지요.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그 부활을 주신다는
성서의 약속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사이에 어떤 틈이 있는데,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게
기독교 신앙이겠지요.
2008년의 마무리와 2009년 시작을 독감으로 정리했으니
나머지 시간들은 쌩쌩하게 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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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1.06 13:04:18

함께 대글로 참여하신 분들의 그 그윽하고 진솔한 영성이
유난힌 겨울 햇살이 눈부신 오늘
우리 모두에게 공유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으로부터
놀라운 생명의 에너지를 듬뿍 받고 있군요.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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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9.01.06 23:18:48

"온갖 소리" 라고 말씀하시니 생각나는 게 있어요.
목사님 가끔 언급하시는 모짜르트 음악을 지난 토요일 링컨센터에서 들었어요.
뉴욕필의 설명에 의하면
모든 소리들이 만들어 내는 풍성한 색깔들을
모짜르트가 이 음악에서 만들어냈다고 하는 그 현악 5 중주가
제겐 좀 지루하게만 들렸으니.. *^^*

경계선..
있음과 없음의 경계선..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음으로 인한 찬양
그 안에 늘 거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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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1.07 09:07:16

그게 참으로 이상하네요.
모차르트의 현악 오중주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고,
또 모래알 님에게는 이럴까요.
하나님이 공평하시지가 않군요.

모래알 님이나 저 같은 연배가 되면
없음 쪽의 삶이 더 많아지겠지요.
그렇다고 억울할 건 하나도 없지요.
그게 바로 참되게 존재하는 길이라는 걸
조금씩 더 확실하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행복한 하루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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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9.01.07 22:49:01

ㅎㅎㅎ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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