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0일 보기를 원하나이다(2)

조회 수 1879 추천 수 4 2009.01.09 22:44:06
||0||02009년 1월10일 보기를 원하나이다(2)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10:51)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대답하는 바디매오의 심리적 상태가 어떤지 상상해보십시오. 무엇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가 알고 있었을까요? 간혹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중심으로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경험해보겠다고 눈에 안대를 가리고 흰 지팡이를 든 채 거리를 걷는 행사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이벤트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없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무엇을 본 사람은 못 본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없으니까요.

시각장애인들은 사물을 촉감과 청각으로만, 또는 후각으로만 경험합니다. 그들의 세계에는 빛이 없습니다. 빛의 조화를 통해서 빚어내는 세상의 오묘한 색깔과 형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간접적으로는 알겠지요.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모릅니다. 참된 깨우침은 직접적인 경험으로만 가능한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들은 것을 전하지만 나는 본 것을 전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들은 것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들은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소리를 들었지만 그 소리의 원천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들은풍월을 기술적으로 가르칠 뿐이지 그 진리의 세계를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았다는 말은 곧 하나님과의 일치를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기독교 신앙을 단지 정보의 차원에서 듣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직 신앙과 우리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며, 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일치를 이룬 겁니다. 우리가 어떤 쪽인지를 다른 사람이 구분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서 슬쩍 숨어서 지낼 수 있겠지만, 자기 자신은 눈치 채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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