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488
||0||02008년 11월2일 한 몸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막 10:8)
위 구절은 창 2:24절의 인용입니다. 인간 창조에 관한 창세기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간혹 여자의 갈빗대 숫자보다 남자의 것이 하나가 적다는 낭설이 나돈 적이 있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갈비뼈로 여자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신화적인 차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기 위해서 그를 잠들게 했다는 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저는 지금 구약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희화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갈비뼈 운운하면서 여자를 종속적인 대상으로 보는 그런 주장이 오히려 성서를 희화화하는 겁니다.
어쨌든지 여자를 만든 뒤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그런데 왜 남자만 거론하고 여자는 부모를 떠나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까요? 아담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요.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아주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성적인 결합이 포함됩니다. 이건 본능적인 요소입니다. 본능을 생존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힘입니다. 그런 성적인 본능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인간 종은 유지될 수 없겠지요. 이런 점에서 성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직결됩니다.
그런데 중세기 기독교는 성을 금욕적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는 인간성의 왜곡일 뿐만 아니라 창조론의 왜곡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또 다른 극단의 가치관이 지배합니다. 성이 상품처럼 되었습니다. 모두 성의 왜곡입니다. 창조론은 오늘의 성윤리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토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막 10:8)
위 구절은 창 2:24절의 인용입니다. 인간 창조에 관한 창세기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간혹 여자의 갈빗대 숫자보다 남자의 것이 하나가 적다는 낭설이 나돈 적이 있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갈비뼈로 여자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신화적인 차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기 위해서 그를 잠들게 했다는 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저는 지금 구약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희화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갈비뼈 운운하면서 여자를 종속적인 대상으로 보는 그런 주장이 오히려 성서를 희화화하는 겁니다.
어쨌든지 여자를 만든 뒤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그런데 왜 남자만 거론하고 여자는 부모를 떠나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까요? 아담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요.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아주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성적인 결합이 포함됩니다. 이건 본능적인 요소입니다. 본능을 생존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힘입니다. 그런 성적인 본능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인간 종은 유지될 수 없겠지요. 이런 점에서 성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직결됩니다.
그런데 중세기 기독교는 성을 금욕적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는 인간성의 왜곡일 뿐만 아니라 창조론의 왜곡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또 다른 극단의 가치관이 지배합니다. 성이 상품처럼 되었습니다. 모두 성의 왜곡입니다. 창조론은 오늘의 성윤리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토대라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31-32절에도 바울이 창세기2:24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하면서
이것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라고 했는데...
어떤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