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 예수와 무리

조회 수 1751 추천 수 8 2008.07.18 23:19:44
2008년 7월19일 예수와 무리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막 9:15)

간질병 아이를 앞에 두고 서로 변론을 벌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라며 달려와 인사했다고 합니다. 아직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자마자 곧 놀랐다는 마가복음의 표현은 조금 과장된 듯 보입니다. 마가복음 기자의 신학적 특징인 ‘놀람’이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기술된 것 같군요. 마가복음에서 무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축귀, 치병 앞에서 많이 놀라는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놀람’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는 제가 앞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으니 여기서 길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 경험은 놀람에 있습니다. 구약성서가 초자연적 사건들을 많이 다루는 이유도 하나님을 ‘놀람’의 차원에서 기술하려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의 고난이라는 주제의 욥기서도 그 바탕에는 이 놀람의 영성이 놓여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욥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변론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나이다.” 하는 말 밖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무리들은 아주 쉽게 예수님을 떠나고 배신합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공부에서도 몇 번이나 확인했듯이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무리, 혹은 민중은 이중적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경험이 열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닫혀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 변혁의 주체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역사 변혁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도대체 우리를 포함한 그 무리들의 속성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까요?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늘 이중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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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시와그림

2008.07.19 11:15:02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식이 '놀람'이라면
그것은 존재차원이 전혀 인간과 다른 '신'을 인식하는
당연한 결과인가요
아니면, 인간의 죄된 심층이 하나님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한걸까요
혹은, 부활후 생명의 완성 때에도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놀람'의 대상일까요

하긴, 질문이 어리석군요
'놀람'이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의미가 아니라면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은
인간의 영원한 놀라움이고
영원한 찬양의 대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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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08.07.19 13:32:13

오늘 묵상에서는 "민중의 이중성"이란 말이 다가오네요.
역사의 주체가 되기도,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민중의 속성에서
우리는 희망도 절망도 가질수 없는 가치 중립일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민중신학을 비판하신 것인가요?
결국 우리는 그래서 사람에게 기대를 할 수 없고
역사 속으로 찾아 오시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종말의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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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7.19 23:28:20

시와그림 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네요.
좋은 질문에다가 정확한 대답이에요.
애벌레가 나비를 보았을 때 놀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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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7.19 23:35:48

웃겨 님,
민중의 이중성 때문에 제가 민중 신학을 비판한 건 아니구요.
두 가지를 설명해야겠군요.
1. 제가 정식으로 민중신학을 거론한 적은 별로 없어요.
민중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지 않아서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에요.
다만 민중신학자 연 하는 분들의 주장을 비판한 거지요.
그들이 실제로 민중신학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2. 저의 민중신학 비판은 민중의 이중성에 있는 게 아니라
민중신학의 해석학적 토대가 부실하다는 데 있어요.
이건 좀 전문적인 이야기인데요.
민중신학의 출발이 성서신학인 탓인지
조직신학적 토대가 조금 부실해보였거든요.
안병무 선생이 전형적인 민중신학자로 신약학자이십니다.
물론 다른 민중신학자 중에서 조직신학자가 있긴 합니다.
어쨌든지 저는 구원이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라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민중신학과는 어떤 대목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더웃겨' 님이 수술을 받았다니, 무슨 말이에요.
경과는 괜찮겠지요.
안부 전해주세요.
주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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