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8일, 금
안개, 가을비
오늘 아침 평소처럼 7시에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리집 식당은 거실 겸해서 가족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실이 우리집에는 없다. 한 마디로 우리집 구조는 해괴하다.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카페도 아닌 것이, 일반 주택도 아니고, 연구소도 아닌 것이, 수도원도 아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순서 없이 짓다보다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나름으로 운치도 있다. 몇 군데 리모델링을 마음먹고 있는데, 집사람과 의견이 달라서 시작을 못하고 있다.
식탁에 먹을 걸 준비했다. 빵, 사과, 토마토, 커피다. 옆 자리에는 요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나 식탁에 앉을 때마다 붙들고 있는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독일 관념주의 1>이다. 피히테, 셸링, 헤겔을 넘나들면서 관념주의에 대해서 말한다. 내용을 정확하게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다. 주제가 관념주의지만 그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기본으로 철학 체계 전반을 깔고 있다. 내가 읽기에 역부족이다. 그래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오기로 계속 책을 붙들고 있다. 그러니 진도가 나가겠는가.
식탁 남쪽으로 큰 창이 나 있다. 그곳을 통해서 나는 사계절을 만끽한다. 아니 세상을 본다. 아니 우주를 접한다. 말라비틀어진 코스모스를 며칠 전에 정리했더니 훨씬 보기가 좋다. 그 뒤로는 대나무다. 그 뒤로 1천평 가까운 밭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이런 땅으로 재테크 하기는 힘들다. 빈 터이니 잡초만 무성하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빈 터로 남는 게 좋다. 요즘은 꿩들이 거기에 터를 잡았는지 우리집 텃밭까지 들어오곤 한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바라본 풍광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비슷한 풍광을 다른 때도 몇 번 보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순간적으로 시공간을 떠나서 그 풍광 안에 들어가 버린다. 아마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할 것이다. 안개가 자욱했다. 일교차가 만들어내는 지구 물리 현상이다. 보슬비도 살짝 내리고 있었다. 매일 묵상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밤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어딘가 새들도 날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둘째 딸이 자기 먹을 걸 들고 내 앞 자리에 앉는다.
나- 지은아, 저 밖을 봐라. 뭔가 보이지?
딸- 안개요?
나- 그래. 내가 앞으로 몇 번이나 저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딸- 수없이 많이 보겠지요.
나- 아냐. 저런 풍경이 흔한 거 같지만 그렇지 않고, 실제로 그걸 보기는 드믄 거야. 마음이 가지 않으면 저건 그 사람에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딸- 그런가요?
나- 앞으로 내가 저런 풍경을 볼 날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고,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너나 나나 이런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딸- 나와 아빠가 똑같다니, 별로 실감은 나지 않네요.
나- 알았다. 맛있게 먹어라.
오늘 아침에 나는 안개와 가을비와 대나무와 커피와 빵과 사과, 그리고 딸과의 대화에서 존재의 황홀한 경험을 했다. 그 외에 모든 일상의 순간에는 각각 무한한 깊이가 있으니, 그걸 엿보면 모든 순간이 황홀하게 경험된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눈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아래는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당시의 풍경과 느낌을 전하는 데 글이 나은지, 사진이 나은지 모르겠다.
일상에서 황홀함을 느끼기란.. 조금 어려워요.
글을 읽으며.. 일상속을 하나씩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때만 황홀이든, 신비든, 비밀한 방식이든..
하나님의 터치함을 느낄수 있는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