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초막 셋

조회 수 3840 추천 수 11 2008.07.02 22:10:19
2008년 7월3일 초막 셋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막 9:4)

천상의 세계를 경험한 베드로는 그곳에 세 채의 초막을 짓겠다고 제언합니다. 그 세 채는 물론 예수님, 엘리야, 모세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발상이 조금 유치해 보이긴 하지만 나름으로 신학적 의미가 있긴 합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푸른 나무 가지로 만든 초막에서 지내야 했으며(느헤미야 8:14,15),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 분위기가 고조되었던(스가리야 14:16-19) 장막절의 전통도 없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씀도(계 21:3) 위 구절의 초막과 연관해서 생각했습니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말이지만, 우리가 지금 초막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양면성이 있겠지요. 온갖 편의시설로 자리를 잡은 아파트와 개인 주택을 포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안락한 현대식 주거 장소에서 하늘나라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지도 모릅니다. 죽은 뒤의 천당도 그런 표상으로 각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막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현대인에게 불가능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또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원초적 영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릅니다. 초막은 문명을 거절하는 주거형태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인간이 바로 초막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천막을 치고 살았던 광야생활이 비교적 괜찮은 집을 짓고 살았던 가나안의 생활에 비해서 영적으로 훨씬 풍요로웠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생활공간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초막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초막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발의무리

2008.07.02 22:24:31

목사님, 베드로가 주님의 호칭을 '랍비'라고 부를 때였으니까 초막을 지어 자기들만 행복하게 살자고 하였지 않을까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이런 고백이 있을 때처럼 성숙하진 않았을 것 같아서요.
자주... 목사님 큐티 읽으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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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8.07.03 01:57:15

유목민으로 살아 가는 그들에게 거주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어요.
그리고 살림살이라는 것도요.
바울이 육신을 장막이라고 비유한 것만 봐도 그렇고,
인생이란 참 잠깐인데요.
제가요, 너무 붙박이 삶을 사는 것처럼 살아 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목사님,
'초막의 영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겠어요.

[레벨:1]LetGodBeGod

2008.07.03 10:34:57

이 사건 이후, 인자의 죽음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초막의 영성'을 거부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진정으로 계승하시겠다는 것일까요? 앞으로의 큐티가 기대됩니다... 아! 그리고 마가복음 9:4이아니라, 9:5이네요.

[레벨:1]머릿돌

2008.07.03 11:50:33

천국을 지금 현재 삶보다 더 풍요롭고 편하며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 뜻대로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어린아이가 때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초막의 영성을 깊게 생각해 봐야겠네요. 구체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만큼 제 삶이 영성과는 먼 삶이라는 것과 아직 현실의 안락함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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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7.03 23:17:28

위의 대글자 님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특히 머릿돌 님은 신참 다비안이래서 더 반갑습니다.
초막의 영성이라, 멋진 말이군요.
그것만 따로 보면 근사한데,
이 문맥에서의 핵심은 아니에요.
저도 약간 옆으로 나간 글을 쓴 거에요.
가끔 이렇게 옆으로 흐는 글이 더 은혜로운 때도 있지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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