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0일 예수 사건의 유일회성

조회 수 2440 추천 수 16 2008.07.09 23:36:32
2008년 7월10일 예수 사건의 유일회성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라는 건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왜 기독교만의 배타적 사건이냐, 하는 데 있습니다. 반국가사범에 대한 로마의 사형제도인 십자가로 죽은 사람은 예수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태일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부활 전승도 기독교에게만 있는 건 아닙니다. 복음서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종교와 구전에도 이런 이야기는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만 본다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분명히 반복 가능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일반적인 부활 설화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 부활 전승은 주술적이고 마술적인 방식으로 진술되지 않았습니다. 부활 현현을 경험한 제자들마저도 그것의 실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합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른 부활 설화와 예수 부활 전승을 세세하게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비교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 부활의 유일회성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겁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경험에 대한 신뢰 여부가 바로 오늘 기독교 신앙의 가능성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른 부활 설화를 알고 있었지만 예수에게 일어난 부활 사건을 그것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과연 오늘의 보편적 진리의 지평에서 얼마나 옳은지 아닌지는 앞으로 계속해서 논쟁해나가야 합니다. 만약 이런 논쟁을 포기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그야말로 소종파적 열광주의에 빠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종말론적으로 자기를 계시하는 하나님을 변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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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08.07.10 05:33:44

우리의 믿음이 막연한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막연함을 뛰어넘어
초기 기독공동체가 체험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편적 세계가운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그 복음을 믿고 고백할 수 있으니
은총입니다.

그 은총은 우리의 신앙이 관념화 되거나
열광주의에 빠지지 않는
늘 생명의 역사로 우리를 이끌어 주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연일 날씨가 덥네요.
그런대로
여름을 무덥게 지낼 수 밖에 없네요.
오늘도 더위 가운데 우리에게 늘 시원한 생수를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생각하며..

[레벨:4]알고파

2008.07.10 09:22:33

목사님, 저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나 비유들을 비롯한 공생애 기간의 여러 가르침보다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훨씬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그리스도교의 일반적인 교리가 좀 불만입니다.
사도들이나 초기 기독교공동체에서 수난사화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고 자세히 기록되기는 했지만
예수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은 미리 '말씀'으로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예수께서도 짜여진 각본이 아닌 부활의 신비로 들어간 사건이 더 중요할 것 같기도 하지만...
예수께서 '하나님나라'를 '말씀'으로 강조하시고 나중에 '사건'으로 보여주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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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7.10 10:35:02

알고파 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한국교회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약화되고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케리그마에 확대되었다는 지적이지요?
알고파 님,
잘 들으세요.
이 대목이 정말 중요한 거에요.
알고파 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무리가 아니에요.
한국교회가 케리그마를 지나치게 교리문답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철학은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것처럼
신학의 중심인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거지요.
형이상학은 자칫 관념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현실적인 것(reality)이랍니다.
문제는 십자가와 부활을 현실적인 것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데에 있지요.
제가 너무 신학적인 방식으로 말씀드려서 미안한데요.
십자가는 '무죄한 자의 고난'이라는 현실을 담고 있구요,
부활은 우주론적 생명의 완성이라는 현실을 담고 있어요.
그것은 단지 교리문답이 아니라 이 인간, 세계, 역사를 해석하는
기독교적 형이상학이에요.
즉 이것이 없으면 기독교가 세워질 수 없는 토대라는 거지요.
물론 공생애가 무의미한 것 아니지만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토대에서만 의미가 있는 거지요.
공생애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는 분명히 훌륭한 랍비나 예언자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존경을 받기에는 충분하지만
존경심과 신앙심은 완전히 다른 거에요.
요즘 기독교의 어떤 단체는 "예수살기"를 실천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부만 옳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기독교가 예수를 '믿기'만 했지
'살기'를 못했기에 이제 살기로 하자는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위대한 스승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이에요.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즉 하나님으로,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자로 고백한 거지요.
다시 앞의 문제로 돌아가서
오늘 한국교회에서 이 십자가와 부활이
개인의 실존이나 주술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게 문제이지
케리그마를 기독교의 중심으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에요.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이를 위해서는 개론적인 차원이나마 신학 공부가 필요하겠군요.
더운 여름에 건강하세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7.10 10:37:05

달팽이 님, 잘 지내지요?
늘 보면,
삶과 신앙에서 제 길을 잘 가고 있네요.
한국에 달팽이 님 같은 평신도들이 늘어야
교회가 건강해질 텐데요.
토요일에 봅시다.
수고.

[레벨:4]알고파

2008.07.10 12:14:30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에게는 현재 한국개신교에 대한 반동이 많이 있어서
모든 교리의 토대를 일단 허물어 트리고
믿음의 본질에 대한 근거를 나름대로 새로 세워보려는 중에 있습니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러한 쪽에 치우치다 보니
모든 교리의 근거를 흔들고 의심해 보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의 친언에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나 봅니다.
새로운 존재로서 참 인간이자 참 하나님인 예수보다
스승으로서의 예수에 저도 모르게 더 무게를 두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야

2008.07.11 22:33:57

목사님. 윗글에 질문이 있어서요. 저도 알고파님처럼 그런 마음이 많이 있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목사님 말씀중에 '예수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위대한 스승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이에요'
왜 믿어야할 대상인지요?
그렇다면 예수가 신입니까? 마태와 누가복음에 써있는것처럼요.
1세기공동체의 고백이라는 심중이 많습니다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중에 하나가
어쩌면 목사라는 위치에 있고 그렇게 수십년을 믿어왔기 때문에 이런 전통을 허물기가 뭣해서, 혹은 거대한 전통적인 교리에 대항이라면 그렇지만 그러해서 예수가 신이라고 하는 것인지요? 아님 바울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기에 그러는 것인지요? 의문입니다.
오히려 제생각에는 예수살기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분이 살았던 대로 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

목사님. 왜 예수를 믿어야할 대상인지요?
인간의 우주적인 생명의 완성이기 때문입니까?
저는 이런 말은 좀 사변적, 비현실적으로 들려서요.
제가 발을 딛고 사는 이땅은 피부로 와닿아야 느끼는것 아닙니까?
요즘와서 마커스보그나 크로산,스퐁같은 분들의 책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아주 중대한 기로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의 부활을 초대기독교인들의 고백이요, 따진다면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이천년의 기독교를 다시 조명하는 것이 옳지않습니까?
그동안 만들어지고 굳어지고 사실로 받아들였던 교리들이
여느 종교의 생성과 다르지 않다면
예수의 가르침에 좀더 가까이가는 것이 옳다고 느껴집니다.

목사님의 말씀중에 현재의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문제인듯싶습니다.
그렇다면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기독교를 봐야하는 게 이닌지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다보니 질문의 핵심이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사하시구요.
불쌍한 중생좀 도와주십시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7.11 22:56:46

친구야 님,
정말 중요한 질문을 주셨군요.
제가 적절한 대답을 드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 내용의 대답은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과 같아서
양쪽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예수가 신이냐 인간이냐,
신아의 대상이냐 삶의 모범자냐 하는 게 아니라
도대 신 경험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전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는 존재, 시간, 생명, 영, 하나님 통치 등등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삼위일체론을 단지 기독교 신론의 사변화라고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신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기독교 교리의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무엇을 계시라고 생각하시나요?
계시가 곧 하나님 자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나요?
아니 그 신학의 세계를 알고 계시나요?
미안합니다.
제가 선생 처럼 굴어서요.
오늘 한국교회와 신학의 문제는
지난 2천년 기독교 신학이 걸어온 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의 관점으로만 재단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세미나' 유의 연구는
제가 보기에는 이미 한물 간 연구입니다.
역사적 예수는 19세기에 독일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어요.
종교사학파로 그 한 유파겠지요.
그런 많은 검증을 거치면서도 기독교 신학은 중심을 놓치지 않고 생존해왔답니다.
허황되거나 독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신학이 진리 앞에서 솔직했기 때문이랍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겠네요.
내일 속리산 산행이 계획 되어 있어서
일찍 자리에 누어야겠네요.
종종 말씀을 주세요.
잊지는 마세요.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깊이는 오늘의 예수 세미나가 전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심층적이고 다층적이랍니다.
저는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를 믿고 살 뿐입니다.
좋은 주말!

[레벨:0]청개구리

2008.07.12 10:24:12

형이상학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말씀이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적 부활과 형이하학적 부활의 차이는 어떻게 다른건지 궁금해지는군요(철학적 용어선택이 서투른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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