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 ‘어록’5-4

조회 수 1279 추천 수 1 2008.06.15 23:21:33
2008년 6월16일 ‘어록’5-4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한국교회에는 심판자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자이신 예수님을 마치 염라대왕쯤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태만한 자들을 유황불이 뜨겁게 타고 있는 지옥으로 보내는 것처럼 겁을 주기도 합니다. 성서에는 그런 그림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종교적 메타포이지 실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심판자라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진리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곧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 참된 생명과 거짓 생명을 가르시는 분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것처럼, 양과 염소를 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참된 생명에서 제외된다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겠지요. 그런 두려움을 성서는 유황불 등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 참된 생명과 거짓 생명을 가르시는 예수님의 심판은 오늘 현재의 삶에서도 일어납니다. 초기 기독교는 바로 그것을 실존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예수와 하나 되는 것이 바로 현재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며, 예수와 갈리는 것이 바로 생명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런 상태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결실을 맺고 떨어지면 말라 비틀어져 죽는다고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심판은 미래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어떤 생명의 현실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교리문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명의 깊이를 알고 체험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대답의 깊이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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