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9일 베드로의 항변(2)

조회 수 2065 추천 수 10 2008.05.19 08:30:11
2008년 5월19일 베드로의 항변(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막 8:32)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고난, 죽임, 부활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항변한 이유는 그 당시의 메시아 상이 이것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무래도  ‘부활’에 관해서 한 마디 더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아무리 고난과 죽임이 예고되었다고 하더라도 부활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예수의 운명을 마다할 까닭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명시적으로 그 모든 것을 거부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실 이런 문제를 자세하게 살피려면 헬라어 원어와 구약신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한데, 저에게는 부족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조직신학의 관점에서 약간의 생각할 방향을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부활, 즉 사람이 다시 산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것과는 의미가 달랐을지 모릅니다. 별로 큰 사건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고대시대에는 이렇게 죽었다가 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미 복음서에도 이런 사건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나사로,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구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시대에는 실제로는 죽지 않은 사람도 무덤에 묻힌 경우가 없지 않았을 겁니다. 다시 살아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베드로는 고대시대에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어쨌든지 베드로의 이 항변은 단지 베드로에게만 국한 되는 게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다는 건 아주 거북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논란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겠지요. 오늘도 실제로는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와 그의 통치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344 6월24일 ‘어록’6-3 [3] 2008-06-23 2491
1343 6월23일 ‘어록’6-2 [2] 2008-06-22 1620
1342 6월22일 ‘어록’6-1 [3] 2008-06-21 1965
1341 6월21일 ‘어록’5-9 [4] 2008-06-21 1487
1340 6월20일 ‘어록’5-8 2008-06-19 1411
1339 6월19일 ‘어록’5-7 [4] 2008-06-18 1868
1338 6월18일 ‘어록’5-6 [2] 2008-06-17 1475
1337 6월17일 ‘어록’5-5 [2] 2008-06-16 1398
1336 6월16일 ‘어록’5-4 2008-06-15 1280
1335 6월15일 ‘어록’5-3 [6] 2008-06-14 1673
1334 6월14일 ‘어록’5-2 2008-06-13 1397
1333 6월13일 ‘어록’5-1 2008-06-12 1553
1332 6월12일 ‘어록’4 2008-06-11 1380
1331 6월11일 ‘어록’3(5) 2008-06-10 1827
1330 6월10일 ‘어록’3(4) [4] 2008-06-09 1585
1329 6월9일 ‘어록’3(3) [1] 2008-06-08 1379
1328 6월8일 ‘어록’3(2) [1] 2008-06-07 2461
1327 6월7일 ‘어록’3(1) [3] 2008-06-06 1586
1326 6월6일 ‘어록’2(5) [1] 2008-06-05 1199
1325 6월5일 ‘어록’2(4) 2008-06-04 1688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