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조회 수 2142 추천 수 10 2008.04.09 23:27:35
2008년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저주 받은 운명이 구원의 길로 인식된 이 맥락에 바로 기독교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걸 놓치면 기독교의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걸 잃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십자가가 축복의 비법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흔합니다. 예수 믿고 범사에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기복적인 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승리의 길로 생각합니다. 릭 워렌과 존 오스틴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시민종교에서 십자가의 근본 의미는 퇴색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까,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보수적이고, 기복적인 입장의 사람들과 달리 진보적이고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도 이런 점에서는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사회 개혁의 단초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태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 변혁을 위한 연대는 정말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십자가 신앙이 그것과 다르다는 것만은 일단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진보적인 인사들을 중심으로 ‘예수 살기’ 모임이 조직되었더군요. 거기에 참여한 분들의 신학적 경향은 저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 운동이 잘 되기를 속으로 바랍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예수를 믿는 데만 머물렀다고 비판하면서, 이제는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예수 살기’가 말이 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사건입니다. 예수와 그에게 일어난 사건은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이지 우리가 살아내야 할 그 어떤 삶의 모범은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레벨:2]솔나무

2008.04.10 01:56:25

"가능하면...그 운동이 잘 되기를 속으로 바랍니다."

'예수살기'...또 무언가를 하게되면 되어질 가치(열매)를 말하게 되는가 봅니다.
살아있다면 열리게 될 열매보다는 열매가있어야 살아있음을 논하는 듯하여서 조금 걱정스럽네요.
정말로 '예수살기' 운동이 잘 되어지기를 기도해야 겠습니다.
그 운동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언지를 보여줄 수 있을지...
본을보여 스스로하면 될 것인데 남을 하게 만드는 그 힘은 무엇인지...

모임 당일에 아래층에서 다비아로, 윗층에는 '예수살기'모임으로...
다비아 강의시간에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에 엄청나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모임중이여서 조용히 해 주시기를 많이 부탁했지만, 민감히 생각하지 아니하더군요.
그래서 첫느낌에 남을 힘들게 하더라구요. 인쇄물을 아래층에 방치하는 것등...
우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운동이 좋을텐데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그 '예수살기'로 삶을 살아내다가 믿어야 할 대상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기를 바랍니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오는 시간에도 하루 종일을 빗님이 오네요.

항상 글을 통해서 물음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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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김동현

2008.04.10 11:34:12

우리는 예수처럼 살 수 없다는 절망감, 무력감 속에서만 결국 구원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 예수처럼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무력감을 인정할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스며들 자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깨달음을 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레벨:6]月光

2008.04.10 13:20:49

김동현님!
항상 좋은 글로서만 만나고 있습니다.(하루 속히 면대면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처럼 살 수 없다는 절망감, 무력감 속에서 결국 구원을 기다리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다 예수처럼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우리더러 예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언급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많은 가르침 들은 진정 말로만 가르치는 것인가요?(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 는 등)
그럼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사실 수 있고, 우리는 한계를 지닌 인간에 불과하기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일까요?
저는 성서를 통해서 예수의 인간적인 한계를 분명이 인식할 수 있으며, 저도 저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날마다 내 자리를 비워내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지 어렵고 힘들기에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신 그 분을 사모하며, 저도 완전히 일치될 수 있기를 기도하지요. 하지만 수시로 솟아오르는 에고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더군요.

우리의 무력감을 인정할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스며들 자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그 분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구원의 여부가 아니라 이미 그 분 자신이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했다고 믿으며, 그랬기에 그 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 불가능할 지언정 그를 믿는 다다고 고백하는 제자라면 끊임없이 도전을 해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불가능한 사람이니 그 분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신앙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물론 그 자리에 머무른다고 구원을 얻지 못한다거나 그런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아시겠지요.
저는 '예수살기'가 바로 예수가 우리에게 그렇게 원하던 바로 그런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일 뿐입니다.

그럼 이 사회 질서 속에서 적으나마 '공의'가 살아있게 노력하시는 김동현님에게 주님의 은총이 언제나 가득하시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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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김동현

2008.04.10 14:12:20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그런 삶을 지향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예수의 제자로서 옳은 태도이겠지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것은, 가끔 예수처럼 산다는 지향성이 어떤 자부함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자부는 또한 자기의로 드러날 염려가 있겠지요. 바리새인의 삶 역시 객관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 아니었나요? 그러나 주님 앞에 인정받은 삶의 자세는 역시 죄인과 세리의 통회하는 모습이었으니까요.

세상에는 스스로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넘쳐납니다. 그 옳음이 하늘나라의 차원에서도 옳은 것인가는,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의 지향성이 '자기의'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예수따라삶'이 인간의 노력으로 됨이 아니라, 이곳 다비아에서 말하듯 '존재론적 변화'에 의해서임을 고백하고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올리브님의 말씀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그 삶의 자리는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삶을 따라 살기 위해 더 진취적으로 나서는 것도 너무나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무력감과 절망감 같은 단어가 정말로 무력해 보이지만, 때론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은 하늘나라를 지향하되,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늘’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내 영혼을 끊임없이 비워내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앞서가려고 하는 자신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의 실상이니까요.

말씀만 많이 듣고 정작 한 번 뵙지도 못하였군요. 언젠가 기회가 닿겠지요. 관심과 나눔 감사합니다.

[레벨:6]月光

2008.04.10 15:12:07

아마 첨으로 님의 댓글을 받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그런 면에서는 저 자신에게는 한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삽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주님의 은총과 도우심을 갈구하지요.
아마 저나 님이나 같은 얘기를 다르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엊그제 총선 전날 저녁 7시부터 시작된 토론이 저녁식사와 한 잔을 곁들여서 새벽 2시까지 이어졌는데 그 때 결론이 바로 우린 서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토론자 들은 모두 현직 목사이고, 저만 돌팔이 크리스챤) (사실 정용섭목사님과도 다른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은데 좀 더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한다고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았습니다.)
하여간 제가 그 분께 철저한 무력함을 고백하고, 그 분이 온전히 저를 다스릴 수 있을 때에야 참으로 예수의 삶을 살 수 있겠지요.
그것이 제가 소망하는 참 구원(구원을 이룬다는 의미)이며, 바로 해탈이라 생각하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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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김동현

2008.04.10 17:45:49

저도 올리브님과 저의 지향이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대화를 통해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관계는 오늘날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화를 통해 상처받는 경우가 오히려 많으니까요. 열려 있는 대화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도 좀더 열심을 내어 살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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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8.04.10 20:25:24

약간 주제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올리브 님의 "돌팔이 크리스찬"이란 표현에..
bob dylan이 부른 rainy day woman #12 & 35 노래입니다. 마리화나 사건과 관계된 노래라고 하더군요.
everybody must get stoned.. 라는 가사가 문득 생각나서.. 돌팔이.. 돌팔매질.. 누가.. 누구에게..

[레벨:1]산수유

2008.04.22 05:23:24

자신의 것이 소중하다면 남의 것도 소중한 법입니다. 왜 예수살기를 영문으로 living with Jesus로 표기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 역시 기독교 역사에 다양하게 등장했었고 그 해석이 나름의 일리를 갖는 것들이라면 내가 붙잡은 일리만이 진리라여겨 다른 일리를 배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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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4.22 10:20:16

산수유 님, 안녕하세요?
요즘도 김영민 선생님에게 사사하고 계시지요?
김영민 선생님은 어찌 지내시는지,
개인적인 알음은 없지만
평소 존경하는 학자로 여겨
궁금하군요.
그건 그렇고,
위의 꼭지 묵상글을 산수유 님이 조금 우해하신 것 같군요.
진리, 일리, 무리 ... 김영민 선생에게 배운 거지요?
나는 예수 살기를 배격하는 게 아니라
예수 믿기 안에 그게 들어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거에요.
예수 믿기에 참여한 분들은 평소에 저와 가까운 분들이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적인 문제까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요즘 다비아에 올라온 뮌처와 루터를 중심으로 말한다면
저는 여전히 루터의 입장이래서
뮌처 식의 기독교에 대해서 조금 염려하는 것뿐이에요.
living with Jesus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요.
제가 보기에는 결국 그런 운동이 사회적 '성화'에 속한다는 겁니다.
보수적인 분들,
예컨데 남포교회, 사랑의교회, 종교교회 등등,
보수적이면서 건전한 많은 교회의 담임 목사님들고
바로 그 성화를 말합니다.
너무 칭의에 머물지 말고 성화로 나가자고요.
예수쟁이들이 사회적으로 쪽 팔리는 일 그만 두고,
삶을 보여주자고 말이지요.
심지어 도덕적 주체성까지 말한답니다.
다만 진보 쪽과의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개인적 '성화'를 말한다는 거지요.
산수유 님,
제가 예수 살기를 배척하는 게 아니랍니다.
예수 믿기에 이르는 것조차 힘들며,
그 예수 믿기에 살기도 포함된다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진리, 일리, ....등을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진리의 차원이 아니라
단지 차이의 철학을 말한 거에 불과해요.
좋은 하루.

[레벨:1]산수유

2008.04.22 13:07:56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지난 달 향린교회에서 스치듯 인사를 여쭙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선생님은 밀양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끼리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차이의 철학을 말씀하셨다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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